육아휴직 중이지만,
나를 먼저 돌봅니다

아빠는 육아휴직 중

by gt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침 9시까지 아이들 등교를 시키고 나면 태권도를 하는 월, 수, 금요일은 4시까지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했다. 독서, 좋아하는 영화 감상, 글쓰기, 출판 관련 작업, 운동 등을 계획했고 조금씩 실천해가고 있다. (사실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하려 한다. 어제 샤워를 하다가 배에 王자 모양의 복근이 아니라 주름이 있는 것을 보고 심한 좌절을 경험했다.)

이 모든 계획을 진행하며 한 가지 생각으로 수렴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나에 대한 생각이다. 아이를 위한 휴직 즉, 육아 휴직을 하며 나에 대한 생각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엔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의 정리가 필요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마음에 접어 두고 살아가다 보면 생각과 행동이 별개인 삶을 마주해야 했고 결국엔 접어둔 생각을 다시 펼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1

내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바로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방식의 일관됨을 위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행복한 일도 많지만 아빠가 개입해야 할 수많은 갈등 상황, 문제 해결 상황, 고도의 정신 수양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는 일관된 양육방식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상태, 육체적 피로감의 정도에 따라 비슷한 문제 상황에서 전혀 다른 태도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육아 휴직을 시작하며 내가 지난 몇 년간 교사로서 아이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학부모님께 편지로 쓴 글을 출판하려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방학 동안 출판 기획서를 작성하고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했는데 답변이 없거나 거절 메일을 받았다. 첫 출판이라 잘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이 안 되더라도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설레었고 그 기분 좋은 설렘을 가지고 계속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이미 무너져있었나 보다. 아이들의 사소한 갈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용서하고 넘어갈 일도 붙잡아 놓고 훈계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게 내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출판 계약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평온해진 나를 마주했다.

#2

언제부터인가 아들 녀석은 나에게 ‘예스맨’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아주머님이 나에게 부탁한 것이 있는데 할 수 없는 상황인 것도 잊고 “네”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그 말을 들은 아주머님이 나에게 ‘예스맨이시네요.’라고 얘기하신 것을 듣고 나서인 것 같다. 며칠 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항상 내가 물을 가져다주는데 그 날은 귀찮아서 “너네 들이 떠다 먹으면 안 돼?”라고 얘기했다. 그때 아이들이 한 말이 내 마음을 찔렀다.

“아빤, 예스맨이잖아.”

결국 난 물을 떠서 아이들에게 주었고 한 동안 아이들을 그 말을 곱씹으며 이젠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살아왔던 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난 어쩌다가 예스맨이 되었을까?’

그 후로 오랫동안 나에게 ‘왜 그리도 바보 같이 살고 있냐?’고 채찍질을 했었다. 그 말로 나를 얼마나 때렸을까? 가끔씩 아이들의 부탁에 이유 없이 짜증이 났고 이런 사소한 것에도 화가 나는 내가 싫어졌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더듬었다. 형이 말을 더듬는 걸 따라 하던 행위가 내 정신까지 지배했고 그 이후부터 나도 말을 더듬게 되었다. 말을 더듬고 나서부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웠고, 내 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었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한참을 헤매고 머뭇거리는 상황을 겪으며 표현하지 못한 감정이 쌓여갔다. 이따금씩 어쩔 수 없이 진심을 얘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을 간신히 꺼낼 때면 나는 목이 메었다. 그것이 부끄러워 나는 최대한 말을 짧게 하기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말을 길게 해야 하는 상황 중에 하나가 바로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이었다. 부탁에 대한 거절을 하려면 그에 따른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나는 말을 길게 하는 상황이 싫어 그 부탁을 수용하는 편을 택했을 것이다. 수용하는 것은 “네” 한 마디면 되니까.

‘내가 예스맨이 된 이유는 결국 말을 더듬는 나를 다른 사람의 놀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또 부탁을 받아줬다.’고 자책했던 말들을 걷어내니 말 더듬는 게 부끄러워 자기를 너무 보호하고 싶은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 마음을 몰랐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넌 최선의 선택을 한 거야’


이 말을 쓰는데 갑자기 내 속에 뭔가가 꿈틀꿈틀 하더니

아침부터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유로운 시간, 갑작스레 찾아온 울컥임이 내가 나에게 했던 모진 말들을 걷어내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들을 위해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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