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육아휴직 중
3월 5일 화요일,
이제 두 아들과 나 밖에 없다.
아빠 혼자 남겨진 채 육아를 하는 프로그램에서 아내가 외출하는 것을 보는 아빠 출연자의 마음이 이랬을까?
하지만 난 초등학생 아들의 아빠다.
그리고 초등학교 교사다. 휴직 중이긴 하지만.
한 두 살 먹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하는 분들과는 차원이 다른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참 감사하다.
아침을 간단히 차려주려고 했는데 글은 밤에 써야 감성이 묻어난다며 새벽까지 글과 씨름을 한 통에 아침에 간신히 일어났다.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 빵을 먹고 책상에 앉아있다며 아내가 대견해했다.
첫째는 캐릭터 그리기를 하고 있고 둘째는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아이들은 왜 아침에 책상에 앉아있었던 걸까?
3월 3일 자 가족회의 결과를 공개해야 할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중요한 사항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결정한다.
가족회의를 통해 일방적이지 않은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아이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게 되면
그만큼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도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겨울 방학 전 가족회의를 통해서 TV 보는 시간과 스마트폰 하는 시간을 정했는데
우리가 너무 아이들 의견에 맞춰준 것 같았다.
TV는 하루 5시간, 스마트폰은 1시간, 문제집 풀기는 2장(둘째는 한글 공부를 했는데 그 마저 짜증을 내는 순간 그만둔다.)
아이들과 함께 정한 거라(사실 우리가 편했기 때문이었다.) 바꾸지 못했다.
그 꼴을 더 이상 보지 못했던 나와 아내는 가족회의 전 입을 맞췄고(키스 아니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다시 긴급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회의는 긴급하게 소집해야 생각할 틈을 주지 못해 반론을 준비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소집한 측의 입장대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노린 나의 선택이었다.
갑작스레 가족회의에 참석한 예담이는 엄마, 아빠의 화려한(?) 말솜씨에 논점을 잃고 이리저리 헤매다 “하루에 문제집은 2장만”이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모든 안건에 동의했다.
예섬이는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유치원생이랑 달라야 한다는 말에 속아 넘어가 “주말에도 TV 2시간까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아군인 형을 설득하기까지 했다.
결국 가족회의에서 정해진 규칙은 다음과 같다.
TV는 평일엔 금지, 주말엔 아이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위해 3시간(사실 엄마, 아빠 시간 포함이다.)
스마트폰은 평일엔 금지, 주말엔 1시간 10분~20분
어길 시 벌칙은 TV, 스마트폰 1주일간 금지
이와 같은 가족회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TV를 보지 않으니 아이들은 심심했고 아침잠이 없는 아이들은 심심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형인 예담이가 그림을 그리니 형을 본보기로 삼는 예섬이도 만들기를 하며 아침을 보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심심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 맞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아들들을 달래서 학교로 향했다.
오늘은 예섬이가 아빠랑 손을 잡지 않고 형의 손을 꼭 잡고 간다.
학교에선 형이 아빠를 대신한다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형도 그 마음을 아는지 동생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도 건너고 교문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혹시나 몰라 예섬이 교실까지 가보려 했는데 어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1학년이라 많이 걱정되신 것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마음 알고 있고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 가르치고 돌보겠습니다. 그런데, 1학년이지만 지켜보시면 자기들이 금방 알아서 해요. 부모님들이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부모님이 해주시려고 하면 그만큼 아이들이 자라기 힘듭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가 제대로 들었던 말씀은 이 것이었다. 선생님이 힘주어서 두 번이나 강조하셨다.
담임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로 한 나는 멀리서 교실로 들어가는 것만 보고 돌아왔다.
다른 반은 부모님들이 들어가서 가방도 걸어주고 하던데 유독 예섬이 반 앞에는 부모님들이 아무도 없었다.
나만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밀렸던 빨래와 설거지, 집안 청소를 하다 보니 벌써 점심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긴 무슨...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데리고 육아 휴직하면서 집안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검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이 위로가 되어준다.
“단, 집안일은 열심히 안 해도 되니까 아이들과의 관계만 안 좋아지지 않게 잘해!”
(이 말을 현수막으로 만들어서 거실 천장에 붙여놓고 누워서 보고 싶다.)
나도 행복하기 위해서 휴직한 거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행복하면 주변 사람을 둘러보게 되더라.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