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고 있음을 언제 가장 크게 만질 수 있느냐 하면
아무래도 해진 일기장의 마지막 장을 남겨둔
지금 이 무렵이다.
지나온 시간을 유순한 회고의 물에 담근다.
그새 내 품에 안긴 것들을 내려다본다.
어느 순간부터 펜대 대신 철봉을 쥔 적이 많아졌던
내 손의 거칠한 굳은살을 어루만진다.
몇년 전엔
문득 떠오른 생각을 정제된 언어로 내뱉고자 애쓰며
미완의 문장을 가다듬고자 수십번 반추했으나,
요즈음엔 하고자 하는 말을 수시로 삼키며
들뜬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는 순간이 많아졌구나.
이게 성숙의 과정이라면 꽤나 반갑지는 않구나.
잃은 것이 용기일까.
얻은 것이 겸양일까.
치기어린 내 젊음은 찰나의 바람에도 쉽게도 휘청거려
칠흑같은 어둠이 가득한 새벽이슬에 흠뻑 젖기도 하였으나,
내 발자국 옆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을 보아하니
감읍할 시간들도 정말 많았네.
올해는 내 마음에 나를 담기 지나치게 인색했었구나.
내년에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리.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아껴 마시려던 따뜻한 커피를 바지에 쏟아도,
출근길에 이어폰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을 깨닫는 순간에도,
원망보다는
사랑 가득한 한숨을 쉴 수 있는 시간으로 가득하길.
존경하는 내 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더 자주 나누고는,
애정하는 아몬드 서랍을 꽉 채워주어야지.
소녀같은 내 어머니가 구워주는
진한 초콜릿칩 쿠키를 먹고는
이거 참 맛있다는 말을 더 자주 건네야지.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고는
사랑한다고 자주 말해주어야지.
이렇게 보니
또 기대되는 나의 스물하고도 아홉번째 시간이다.
홀로 뒤척이는 늦은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