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의 부고

by 루카형아

친구 아버지의 부고소식을 접했다.

마침 광주에 가는 일정이 있어 틈내서 들르리라 다짐했다. 두명의 친구와 동행했지만 혼자였어도 그곳을 향한 걸음엔 두려움이 없었으리라.

이미 식어버린 낯선 이의 영정 앞에서 감히 조화를 올리고 기도를 올린다.


유족의 곁에 애정어린 위로를 건넸던 시간은 어쩌면 나에게도 닥칠 그 상황에 대한 예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내 아버지가 머리를 다쳐 러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세상에서 홀로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텅 빈 집에 들어왔다.

탁자에 그대로 놓여 있던

물이 가득히 채워진 컵을 바라본다.


내 아버지가 쓰던 녹슨 컵이다.


허물처럼 벗어둔 잠옷과 미처 며칠동안 돌보지 않은 정원의 너저분한 나뭇가지들이 눈에 띈다.

이는 언제나 내 아버지의 몫이었으리라.

응급실에서 주삿바늘이 꽂힌 내 아버지의 팔을 어루만졌다. 이제는 주름이 깊게 패인 아버지의 얼굴에 내 이마를 애써 맞대본다.


그러고서는 낯뜨거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냈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행하는 비슷한 종류의 회한 섞인 행위를 나 역시도 되풀이했던 것 같다.

그토록 절망스러웠던 응급실에서의 그날을 내 가슴에 묻는다.



나는 곧 내 아버지의 분신이다.


나는 당신의 2세로서 육체와 영혼을 이어받았으며

당신이 주신 두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고

당신이 주신 뜨거운 심장으로 번민의 시간을 움켜쥔다.


더불어 당신이 평생에 걸쳐 나에게 건네왔던 뜨거운 온기를 바탕으로 조악한 내 삶의 설계를 시작했음은 당연했다.



부모와 자식은 운명이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며 동시에 살아서도 죽어서도 평생을 함께하는 지독한 우연이자 필연이다.

어느덧 나는 아버지가 나를 처음 만났던 그때의 나이로 가고 있다. 아버지가 나에게 세상을 처음 보여줬던 것처럼 이제 나는 내 몸 속에 아버지를 새기며 하루를 거닌다.

먼 훗날

아버지가 죽는다면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나 역시 죽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 했던 나 역시 없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가 없는 나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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