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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Aug 12. 2023

자산 2조의 아내님이 계시면 생기는 일

헨릭 피스커의 역작 피스커의 슈퍼 GT 지향 컨버터블 로닌 공개


멋들어진 자동차 브랜드 홈페이지를 꼽으라면 피스커 오토모티브(Fisker Automotive)의 것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브랜드 비전을 설명하는 페이지는 패션 브랜드의 홈페이지의 특집 꼭지를 연상케 한다. 피스커 오토모티브의 실체와 실적에 비하면 더욱 그러하다.


피스커 로닌



그런 피스커가 2023년 1월 오션(Ocean) SUV의 양산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꿈꿔왔던 슈퍼카 로닌(Rōnin)의 구체적 사양들을 공개했다. 1회 완충 시 거리가 600마일(965km)에 달하는 슈퍼 GT 성향의 컨버터블 전기차다. 가격도 5억이 넘는다. 일론 머스크의 마음이 이미 화성 테라포밍에 성공해서 로드스터 따위는 까맣게 잊었다고 판단한 걸까? 피스커는 이미 예치금을 받고 로닌의 예약에 들어갔다.



서부 부자들에게 어필하는 전기 GT, 

38만 5,000달러, 999대 한정 생산


원래 GT(Grand Tourer)는 자동차 역사 초창기,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고성능(당시 기준) 럭셔리카를 가리킨다. 극한의 속도감을 지향하는 스포츠카와는 결이 다른 것이 GT다. 헨릭 피스커의 이력은 바로 GT 디자인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 GT를 전기차로 해석한 피스커 로닌


그는 로닌을 소개하며 슈퍼 GT의 이상을 이야기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나파 밸리까지 즐겁게 운전할 수 있는 전기차 시대의 클래식 GT”가 로닌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나파 밸리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미 와인의 명산지다. LA에서 나파 밸리까지는 대략 413마일(665km)가 넘는 거리. 참고로 피스커의 본사도 LA 국제공항에서 멀지 않은 맨해튼 비치에 있다.



럭셔리한 서부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피스커 로닌


이 메시지는 미국 서부 자유롭고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차를 만들어 부가가치로 승부하겠다는 계획이다. 생산 대수도 999대다. 예상 가격은 38만 5,000 달러로 한화 환산 시 약 5억 1,000만 원 이상이다. 이미 2,000달러 예치금을 넣고 1,000달러가 즉시 환불 가능한 예약에 돌입했다.



0→100km/h 2초대 근접, 최고 속력 275km


그렇다면 역시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관건이다. 피스커 측이 제시하는 목표 주행거리는 약 600마일(965km). 어느 정도의 고성능 차량임을 가능할 때 최소한 100kWh 이상의 배터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760ps대 최고 출력과 280km대 1회 완충 거리를 보이는 포르쉐 타이칸 4S의 경우 93.4kWh의 배터리팩이 장착된다. 피스커 측은 가벼운 알루미늄을 사용한 배터리 패키징으로 퍼포먼스와 효율 모두를 다 잡겠다는 계산이다.


피스커 로닌의 도어 구조와 인테리어


일단 외관은 근사하다. 2+2인승 컨버터블인데 2열 좌석을 위한 도어가 있는 구조다. 1열은 버터플라이, 2열은 코치 도어 타입이다. 페라리가 GT 타입의 베를리네타인 푸로산게에 2열 코치 도어를 적용했지만 컨버터블에 이런 구조를 채용한 선례는, 양산차 기준으로는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목표하는 퍼포먼스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 가속 시간은 2초대에 근접하도록 하겠다는 것. 2열 공간도 좁아 보이지 않는데 그렇다면 전후 도어의 무게만 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차체를 이 정도 빠르기로 움직이려면 최대 토크가 적어도 80kg∙m, 최고 출력이 600ps는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0→100km/h 3.5초대인 기아 EV6 GT의 경우가 585ps에 76kg∙m다. 기술적 과제가 만만치 않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다면 혁신적이긴 하겠지만 생산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믿는 구석이 있다? 사람이 꿈을 이루려면 역시…


테슬라의 모델 3 인도가 본격화된 2019년, IT 친화적 매체들은 기존 내연기관 공룡들을 단숨에 압살할 것처럼 떠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규모와 자금을 기반으로 착실하게 전동화 이행을 준비 중이었던 폭스바겐, 볼보 등이 대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전기차 전문 브랜드들은 테슬라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여 준 제조사는 전무하다.


헨릭 피스커는 BMW Z8 콘셉트카를 비롯해 애스턴 마틴 DB9 등을 디자인한 덴마크 출신 디자이너다. 물론 그의 비전과 디자인 능력은 출중하지만 카르마 이후 한참이나 어둠의 세월을 보냈고, 2022년에서도 겨우 SUV인 오션(Ocean)의 양산을 발표하면서 재기를 알렸다.


피스커의 오랜 잠을 깨운 전기 SUV 피스커 오션



사실 여기에는 지금의 아내이자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인 기타 굽타 피스커(Geeta Gupta Fisker)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공학 박사이자 수년간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며 탁월한 투자 감각을 자랑한 굽타 피스커는 16억 달러(약 2조 원) 대의 자산가로 포브스가 집계하는 ‘빌리어네어’ 반열에 등재돼 있다. 12억 달러인 NC 소프트의 김택진 회장보다 많다. 참고로 현대차그룹의 총수인 정의선 회장이 31억 달러(약 4조 원)다. 또한 굽타 피스커는 지분 20%를 소유한 바이오기업의 최고 재무 책임자이기도 하다.



감각적인 디자인을 자랑하는 피스커 로닌. 본업에 뛰어난 이에게 행운도 돌아온다


다소 저급한 마무리이긴 하지만 역시 사람이 꿈을 이루는 데는 믿을 구석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인연도 헨릭 피스커가 그런 행운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일이란 건 자명한 사실. 전기차 시장의 무조건적인 고성능 붐이 걷혀 가고 내연기관 공룡들이 합리적인 전기차를 통해 과거와 같은 지배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와 별개로 헨릭 피스커의 실력과 아이디어는 자동차 역사에서 분명히 한 줄 이상의 평가를 받아야 할 사안이다.



로닌이란 일본어 로닌(낭인, 浪人)의 발음을 사용한 것이다. 주인이 없는 무사를 뜻하는데, 문학이나 영화 작품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으나 이러저러한 사정상 의탁할 주인이 없어 떠도는 이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영화에서는 이들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높이 사려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이 차는 헨릭 피스커가, 이제 더 이상 없을 자신의 ‘로닌’ 시절을 낭만적으로 추억하는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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