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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리더

실패한 팀장의 후일담

by 휠로그

나는 전 직장에서 팀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실패한 팀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짧지 않은 세월 그 회사에 머무르면서 대표는 내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해 볼 만한 도전이라고 생각해 받아들였습니다. 7년 정도 몸담은 기간 동안 그 반을 팀장으로 지냈습니다.


나는 작은 잡지사나 언론사 혹은 컨텐츠 제작사에서 나는 에이스라는 소릴 들었습니다. 전 직장에서도 입사하자마자 그랬죠. 하지만 나는 내 일만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내 일을 끝내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A4 3장짜리 장통 기획을 9시부터 6시까지 3~4편 마감하고도 30분이 남음)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대표는 관리자로서의 역량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image_fx_ (11).jpg 구글 이미지fx로 생성한 작은 회사의 심각한 분위기 음... 팀장 아재보다는 젊어요

돌이켜 생각해볼 때 내가 팀장으로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동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 수익원은, 다른 언론사도 그러하듯 광고주가 되는 회사의 온드 미디어 컨텐츠 제작이었습니다. 함께 운영되고 있던 매체의 기사 작성 업무가 이것과 함께 컨텐츠팀의 주 업무였죠. 내 업무는 이 두 가지의 업무를 분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적어도 5:5 비율을 맞춰주고 싶었죠. 회사는 돈을 벌어야 월급이 나오는 것도 맞지만, 직원은 회사에 있을 동기가 있어야 하니까요. 막말로 어차피 원하는 일을 못 하면 조금이라도 급여를 더 주는 곳으로 가든가, 아니면 급여가 비슷하지만 최소한 입사 시에 제시한 업무와 같은 것을 하는 쪽으로 이동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이탈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죠.


저는 온드 미디어 영업을 잘 하기 위해서라도 매체의 브랜드력을 키우고 그러기 위해서 직원들의 역량을 그 쪽으로 더 투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는 이미 매체를 비용으로만 보고 있었어요. 광고 단가란 게 갈수록 줄어가는 환경, 온드 미디어의 경우도 결제를 3~6개월씩 묵혀서 주는 클라이언트 특성상 직원들의 급여가 큰 부담이었을 것이었을 겁니다. 그 공백 기간에 돈을 줄 새로운 온드 미디어 거래처를 발굴하는 것이 최선이었죠.


나는 직원들에도, 대표에게도 이런 사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서로 각자의 논리로 거부했다. 변명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모두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나는 팀이 진행한 대행 업무의 7할을 내가 맡는 것으로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다. 대신 그만큼 팀원들이 운신의 폭을 넓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내 몸은 무쇠가 아니더군요.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마라톤 하프 코스를 뛸 수 있는 나였지만 이상 증세는 계속 나타났습니다. 목 디스크가 심해지고 손목이 아렸으며 천식과 위장병은 심해졌다. 대표는 대표대로 직원을 뽑아줬는데 왜 너만 바쁘고 야근을 하느냐며 팀 매니지먼트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지적했습니다.


'입사 때 들었던 것과 업무 조건이 다르다'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전할 순 없었습니다. 작은 회사이지만 업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있는 회사가 속으로 곪아가는 것이, 내가 가장 오래 몸담은 회사가 비전을 잃어가는 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을 갖고, 분사를 희망했습니다. 진짜 소수정예 조직으로 사내 벤처처럼 움직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보고 싶다고 대표와는 자주 나눴던 이야기여서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변해서인지 대표는 거부했다 자기 곁에 있는 내가 필요하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나는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아쉽지만 더는 미련이 없었습니다.


조직에서 에이스와 리더는 구분 운용돼야 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정리해서 일련의 시리즈로 써 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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