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에 새긴 2인자로서의 경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사업의 지속성과 성장을 생각하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행하는 기업만이 최소한 생존과 성장을 기대할 수 있죠.
하지만 상당수의 오너들은 당장 안정적이 수입을 주는 클라이언트로부터 명시적인 요구가 없는데 먼저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유는 있습니다. 고객의 보이지 않는 니즈 변화를 캐치해서 먼저 새로운 시도를 진행하고 성공한 기업의 경우에도 그 사이에 진통이 상당히 클 수 있기 때문이죠.
일단 매출이 일시적으로 대폭 감소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의 구조조정이 필요할 수도 있죠. 기존 직원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함께 갈 의지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도 가려야 합니다. 의지가 있는데 새 사업방향에 대한 직무 능력이 없다면 보수 교육이 필요하죠. 퇴직금이 당장 크게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표 자신이 가져가는 수입에 직접 영향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단 현금부터 쌓고 난 후에, 닥칠 일들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는 생각으로 현재에 집중하자고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대표 개인 입장에서 보면 틀린 판단만은 아닐 겁니다. 사업이란 게 자기 돈 벌려고 하는 게 가장 일차적인 동기고 그것을 탓할 수는 없죠.
그럼에도 지속과 성장을 생각하면 한 번은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포기하고 다시 선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외면하면, 결국 지속과 성장은 고사하고 손에 쥔 것조차 모래알처럼 부스스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전 매체 기자이기도 하지만 컨텐츠 제작 대행의 팀장이기도 했습니다. 애드버토리얼을 브랜드 자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고 이는 네이버 포스트로 운영됐습니다. 단가 자체는 높았습니다. 다만 실무 담당자들이 이에 대해 점점 부담감을 느낀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 가격을 조정해 클라이언트의 부담을 덜어주고 대신 거기서 생긴 여유 예산으로 새로운 형태의 컨텐츠를 개발하고 파일럿 진행을 해보자고 회사와 클라이언트 실무자를 조금씩 설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실패했습니다. 클라이언트에게 제안하는 시점이 조금 늦었고 소속 회사 대표를 설득할 자료는 많지 않았습니다. 팀의 역량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회사에 실망한 팀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정도의 역량은 못 됐으니까요. 저의 퇴사 후 사세는 크게 위축됐습니다. 물론 요즘 다시 의지 있는 직원의 노력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거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당 회사가 새로운 선택을 쉽게 할 수 없었던 데는 너무 큰 고정 비용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세법은 물리적으로 뭔가를 만드는 제조업이 아니면 공제에 너무 박합니다.
사실 어느 회사든 일단 고정비를 줄여야 새로운 도전을 할 여유가 생깁니다. 차나 사무실이 대표적이죠.
물론 겉으로 보이는 것을 아예 무시할 순 없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반지하 사무실만 고수하고 시동도 제대로 안 걸리는 회사 차를 덜덜거리며 미팅 자리에 나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일 겁니다. 다만 적당선을 지켜야 한다는 거죠. 5~10인 정도 사업체 운영하면서 대표 개인차량으로 E 클래스 정도 한 대, 회사 차량으로 스포티지 한 대 정도가 크게 문제라 할 수는 없겠죠.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비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기존 직원들이 직무 능력을 새로이 개발 및 계발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 드는 비용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우선해선 안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구와 개발을 위한 비용의 공제를, 5인 미만 사업장, 비제조 컨텐츠 기업에도 좀 확대한다면, 대표들이 좀 더 시대 변화와 고객 니즈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기회를 제안하는 게 더 용이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점 대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여나가는데 결국 고용을 담당하고 풀뿌리 경제를 안정시키는데는 작은 기업들의 역할이 큽니다.
사실 사장님들이 이런 결정을 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그 회사 직급상 2인자입니다. 저는 직전 회사에서 바로 그런 사람이었는데요. 저는 아직도 그 사장님과 좋은 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 부분에서 그 사장님이 더 나은 변화와 결정을 향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성격이 수용적인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임을 오너에게만 돌린 그냥 잘 하는 상급 실무자였던 거죠.
사장님들이 내일의 생존을 위해 내는 용기가 당장의 끼니를 비용으로 치러야 할 만큼 비싼 게 아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