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곡사의 무청과 무말랭이
늦가을부터 겨울 초입, 절집에서는 채소들을 말립니다. 여름과 달리 부패의 위험이 없기 때문이죠. 게다가 얼고 녹는 과정에서 질긴 부분들이 부드러워집니다. 여기에 햇볕에 마르면서 영양소가 밀도 있게 농축됩니다. 특히 태양의 자외선은 이 무청에 포함된 전구체인 에르고스테롤을 비타민 D로 바꿉니다. 이는 겨울철 면역 기능 향상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엔 먹을 것이 귀해서 이렇게 식량을 갈무리했다지만, 지금은 그 자체의 풍미를 즐기기 위해서 만들기도 합니다. 한층 구수하고 부드러워진 시래기는, 물이 불리거나 데친 다음 거친 껍질을 벗기면 다양한 요리에 쓸 수 있습니다. 절집의 단골 메뉴인 시래기 된장국부터, 조림, 나물 무침, 전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깊은 향을 가진 말린 버섯을 살짝 물에 불린 후 종종 썰어서 볶으면 독특한 풍미가 살아납니다.
말린 무는 무말랭이 무침 외에도, 무말랭이 잡곡밥, 조청과 간장을 이용한 무말랭이 조림, 무말랭이 된장국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무말랭이 잡곡밥은 물을 좀 덜 넣고 그 위에 20분 정도 불린 무말랭이를 얹어 같이 밥을 짓는 것인데, 말린 무 특유의 향이 잡곡밥과 어울리며 깊은 향을 만듭니다.여기에 들기름과 소금 혹은 조선 간장 약간을 더해 비벼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변비에도 좋습니다. 이렇게 찬바람과 겨울 햇볕에 마른 식재료들은, 절집에서 겨울 한 철을 살아내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리, 사실 겨울은 절집에서 생각보다 바쁜 계절입니다. 전통적으로 새해의 시작이라고도 하는 동지가 있습니다. 음력 12월 8일 즉 양력 기준으로 1월에는 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성도재일이 있습니다. 또한 2025년의 경우 12월 4일(양력)부터 내년도 2026년 음력 1월 15일까지 동안거 결제일(시작일)입니다. 안거란 집중 수행 기간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여름과 겨울 90일간 진행됩니다.
말린 채소를 비롯한 저장 식재료는 동안거 기간 스님들의 수행을 돕는 약이기도 합니다. 통상 안거 기간에는 하루 종일 집중적인 명상을 진행하는데요. 가만히 앉아 있는데 무슨 힘들 게 있는가 싶겠지만, 바른 자세로 고도의 집중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초심자들은 무척 어려워하는 신체적인 훈련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영양가 있는 저장 채소로 조리된 음식은 필수적이죠.
무청이 발에 걸려 마르는 곳은 종각 아래입니다. 채쳐진 무는 종각을 바라보는 장독대 위 채반에 담겨 있네요. 이곳은 충남 청양의 장곡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