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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휠로그 Feb 23. 2023

"PR, 그기 돈이 됩니까?"라고 묻는 이들에게

가격 저항선 부딪친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3.6 가솔린 시승기

자동차 가격의 전반적 상승이 일반적인 상황이라지만 그래도 1억 원은 심리적 저항선이다. 오히려 여기서부터는 감성을 공략해야 한다. 1억이 넘는 돈을 쓰는 고객들에게, '당신은 이러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보이게 될 것이다'라는 상상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에 가성비란 말은 못 쓴다. 상위 트림인 서밋 리저브는 9,780만 원, 2022년 상반기 출시 당시보다 8% 정도 오른 가격이기 때문이다. 1억 넘는 차를 할인과 판촉만으로 판다는 건 전체 브랜드 가치를 깎아먹는 짓이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시승기는 많이 나왔고, 특히 파워트레인과 주행 감각에 대해서는 모두 훌륭한 리뷰라 참고가 됐다. 여기서는 내가 만약 이 돈을 내고 이 차를 산다면, 무엇 때문에 이 차를 선택하고, 감수해야 하는 아쉬움이 무엇인지를 상상해보았다. 




장단점 뚜렷한 주행 감각


일단 3.6리터(3,604cc) V6 펜타스타는 다소 오래 된 엔진이다. 물론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3.3~3.8리터급 자연흡기 엔진들이 ‘사골’ 경향을 보이긴 하지만, 구동 감각 면에서 스텔란티스의 3.6리터만큼 오래된 느낌을 주는 엔진은 드물다. 2022년 공개된 3.0리터 트윈터보 엔진이 차후 페이스리프트 차종에 적용된다면 차의 가치가 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가격도 오를 것이다.


최대 토크가 35.1kg∙m(4,000rpm) 정도로, 자연흡기 엔진 중에서도 배기량 대비 토크가 조금 약하다. 실린더 내경 96㎜, 스트로크 83㎜인데다 10.2:1의 낮은 압축비 때문. 실용 영역인 2,000rpm대부터 전체 토크의 80%가 나오긴 하지만 2,325kg의 육중한 무게를 끌고 나가기에는 다소 버겁게 느껴졌다. 다만 이 영역대에서는 엔진 구동음이 부드러운 편인데다 댐퍼 세팅, 시트 감각 등도 부드러워 정숙성에 초점을 뒀다면 합격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6리터 자연흡기 엔진답지 않게 고속 영역에서 힘 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풍절음이 큰 편인데도 불구하고. 물론 소리 대비 진동이 적은 것은 숏 스트로크 엔진의 장점이지만 배기량이 큰 차량다운 여유가 다소 부족해 보였다. 


많은 리뷰어들이 이 차에 적용된 8단 자동변속기의 변속 충격을 꼽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았을 때, 엔진은 도는데 체결이 늦는 바람에 나중에 한꺼번에 토크가 몰리면서 생기는 현상에 가까웠다. 패들 쉬프트 오른쪽(+) 레버를 길게 당기면 수동 모드가 활성화되는데 드라마틱하진 않다. 스포츠 모드 역시 마찬가지. 다만 자연흡기 엔진 치고는 최대 토크의 90%까지 구현되는 영역이 넓은 편이어서 고속에서의 지속적인 가속은 잘 이뤄진다. 



최고 출력은 286ps. 사실 엔진들의 동력 사양은 대략 구간을 나눠 평준화돼 있다. 3.5, 3.6리터급 엔진에서 286ps는 평균적인 수치로, 혼다의 3.5리터 i-VTEC, 현대기아의 3.5리터와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3.6리터로 310ps 이상을 발휘하는 트래버스의 존재가 신경쓰인다. 트래버스는 공차중량도 가볍다. 


사실 일을 하러 가다 보면 빨리 가야 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차가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줬으면 할 때가 있다. 차량 안에 고가의 촬영 장비들이 실려 있을 때 그렇다. 아무리 하드케이스에 넣었다지만 차량 내에서 이리저리 쏠리기라도 하면 신경이 쓰인다.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만족했다. 조향은 상시 4륜 구동의 특성을 감안하면 적정 수준. 지프 쿼드라트랙 4X4 시스템은 오프로드 면에서 조명되는 경우가 많지만, 좌우 바퀴 회전수 조절 능력도 발군이다. 다만 디자인적인 장점을 제외하고 굳이 21인치 휠과 단면폭 275㎜, 편평비 45% 타이어가 필요한지는 의문. 고속 주행 정속 주행시에도 12km/L로 잘 올라오지 않는 연비와 구동 소음은 다소 아쉬웠다. 하위 트림인 오버랜드는 20인치 265 ㎜, 50% 편평비의 컨티넨탈 크로스컨택트 UHP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0km/h 이하의 저속에서는 스티어링휠의 조향 반응이 둔했다. 가변으로 제어되는 스티어링휠 기어비 때문으로 보이는데, 다소 적응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다. 차장이나 골목에서 주행이 생각보다 힘들어서 전방 카메라를 활성화했다. 



ADAS는 A, 조작계 전반은 B+


최근 주행보조 시스템의 정확도는 평준화돼가고 있다. 어차피 센서나 카메라, 전장 시스템을 공급하는 업체들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사의 차량 구조에 맞게 안정화시키는 것이 역량이지만 향후에는 이 부분에서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게 될 것이다. 


스탑 앤 고가 적용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선행 차량과의 거리를 4단계로 조절할 수 있고, 액티브 드라이빙 어시스트는 차로 중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작동에 외화감이 없으며 특히 드라이빙 어시스트의 차로 검출 능력은 터널이나 야간 도로 등 광량이 부족한 곳에서도 정확성을 자랑한다. 조작 자체는 스티어링휠 오른쪽 스포크에서 쉽게 가능한데, 속력 조절 버튼의 경우, 손끝이 다소 뭉툭하거나 엄지 손톱이 길면 누를 때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조금 든다. 네일 시술을 받은 여성분이라면 엄지를 뉘어 부드럽게 눌러주면 된다. 


            




            


전반적으로 조작계를 길게 눌러 활성화하거나 모드를 바꾸는 기능이 많다.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도 스티어링휠 왼쪽 스포크에서 버튼을 길게 눌러 활성화 가능하다. 현대, 기아처럼 대시보드를 통해 들어가지 않고도 조작이 가능하다. 


조작 계통의 레이어를 최소화한 점은 매우 칭찬할 만하다. ESP 오프, 비상등처럼 긴급하게 사용해야 하는 기능은 상단에 물리 버튼으로 배치했다. 


변속 다이얼은 지연 동작 없이 각 단의 위치가 정해져 있다. 주행 모드와 차고 조절은 전자식 토글 레버다. 손이 닿는 부분이 넓고 저항감은 딱 기분 좋을 만큼이다. 


터치 스크린을 통해서는 각 좌석을 확대해볼 수 있다. 짐이 실려 있는 뒷칸도 크게 확대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표 몸값보다 비싼 장비가 실릴 때도 있어서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는 신경이 쓰일 때가 있다. 





            


이런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조작계 점수에서 A를 줄 수 없는 이유는 내비게이션 작동 때문. 전체적으로 네트워크와의 연결성이 좋지 않았고 중간에 통신이 끊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목적지 재설정 시 로딩 시간도 조금 긴 편. 화질이나 그래픽은 흠잡을 데 없지만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참고로 매킨토시 오디오의 경우 평가를 다소 보류한다. MX950, 즉 950W 출력으로 19 채널의 스피커를 밀어주는데, 매킨토시 특유의 VU 미터 그래픽이 아직 지원되지는 않는다. 야간의 활주로에서 영감받았다는 특유의 그린 컬러와 미터기를 빨리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동차 오디오는 브랜드에 따라 과대평가될 사안은 아니다.

            



적절히 빼고 더한 미국의 맛


그랜드 체로키는 미국 SUV 중에서 ‘미국적이지 않은’ 이미지를 제법 일찍 받아들였다. 3세대부터 눈을 가늘게 뜨고 낮게 엎드린 모습을 갖췄다. 직선을 강조하되 투박함이 아닌 날카로움을 지향했고 오버행의 비율을 줄여 스포티한 측면 비례를 적용했다. 4세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디자인 경향은 더욱 강조됐다. 높이가 낮은 그릴과 샤프한 등화류가 연결된 전면 윤곽, 가늘고도 시인성 높은 후미등 디자인 등은 지프의 여러 라인업 중에서도 독특한 것이었다. 2022년, 국내 출시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데는 이 디자인도 한 몫 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는 미국적인 분위기가 덜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특유의 우드 트림이라든가 시트 디자인의 감성은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다만 그 마감이 정교해져 '기존의 미국차답지 않다'고 한다면 동의한다. 현재의 SUV DNA에는 두 갈래의 계통이 있는데, 1950년대 윌리스 MB에 기반한 다목적 4륜 구동차량의 것과, 개척시대의 스테이션 왜건이다. 스테이션 왜건이란 말 그대로 역에서 목재나 화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개조한 차량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데 사용됐던 것이 주로 목재였다고 한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에 SUV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전에는 이 유형의 차종들도 왜건으로 불렸고 이를 완성차 제조사가 만들어낸 것이 왜건 타입의 차량이었다. 물론 이 왜건의 역사에서도 지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1940년대의 지프 윌리스 스테이션 왜건


이 차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완벽하지 않고 아쉬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일수록 개성이 강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 세단을 타는 부자, 컨버터블을 타는 부자, 체로키 오너의 저택 출입구를 대비해서 보여 준 1990년대의 광고는 결국 이 차를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과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스포츠 선수라도 좋고 영상연출가도 괜찮다. 나오기만 하면 대박인 OTT 드라마들은 PPL에 호의적이다. 지금이야말로 지프 브랜드의 플래그십을 위한 PR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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