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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모데 Aug 03. 2020

위로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몸과 마음이 불편한 이웃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근무했던 파출소 유리문

 의무경찰로서 군 복무를 할 때 있었던 이야기다.

나는 무더운 여름, 바다 근처에 있는 시골 파출소에서 근무를 했었다. 변두리에 있는 우리 파출소는 주로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오셨다. 여느 날처럼 근무를 서던 중 어르신 한분이 유리문을 힘겹게 열고 들어오셨다. 덜컹! 어르신은 손잡이를 사용하지 않으셨다. 대신 어깨와 등을 이용해 간신히 문을 밀고 들어오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그분의 손을 확인했다. 역시나, 장갑을 낀 손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의수였다. 바다 주변에 있는 우리 파출소를 찾아오는 민원인은 주로 뱃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불의의 사고로 작게는 손가락 두어 개, 심한 경우에는 팔의 일부가 절단된 분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익숙했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할아버지의 민원을 처리해드리고, 집으로 돌아가실 때를 기다렸다. 할아버지께서 일어나셨다. 나는 먼저 문쪽으로 달려가 유리문을 당겨서 열어드렸다. 안쪽에서 당겨야만 열 수 있었던 유리문, 손이 불편한 할아버지께는 무리였다. 출입문을 잡은 채 파출소를 떠나는 어르신께 인사를 하려는 찰나 할아버지께서 먼저 입을 여셨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수고해요" 나는 민원인의 감사인사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래도 파출소 문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는 나를 뒤로하고 할아버지께서는 집으로 돌아가셨다. 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니 대학생 때 교양으로 들었던 사회학 수업이 떠올랐다. 수업 내용 중 사람의 장애에 대한 사회학 연구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연구는 장애에 대한 나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법을 알려주었다.



"장애의 문제는 기능의 상실과 그것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사람들과의 관계 영역에도 있다" - 폴 헌트



 장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신체의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손상'은 신체의 일부가 없거나 기능상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험 속 할아버지께서는 팔이 손상되어 의수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는 무엇이며 손상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장애'는 사회 조직에서 야기된 불리함 또는 활동의 제약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문을 여는 일에 있어서 할아버지를 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할아버지의 신체 손상이 아니다. 잘못은 할아버지의 신체 손상을 고려하지 못한 문에 있었고, 그런 문을 관공서에 떡하니 달아놓은 파출소에 있었다.

 나는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일원으로서 손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고려하지 못한 과실을 범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할아버지께서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그 순간, 할아버지를 장애인으로 만든 것은 나였던 것이다. 이후 나는 할아버지의 신체 손상을 고려하고 미리 문을 열어 드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문을 열고 파출소를 나서는 일에 있어서 할아버지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었다. 내 행동의 차이가 할아버지의 장애를 결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 제목에서 밝혔듯이 나는 신체 손상자들을 그저 위로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어설픈 공감과 이해보다 가치 있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바로 신체 손상자들이 장애인이 되는 것은 그들의 개인적 사정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금, 우리 스스로의 다양성을 인정받고 싶은 만큼 우리와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감정적 위로는 그들의 순간을 바꾸어 놓을지 모르지만, '손상''장애'의 차이를 알고 각자의 영역에서 장애를 범하지 않으려는 모든 노력은 누군가의 일상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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