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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모데 Aug 01. 2020

비난 사회 2

훈수꾼의 심리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미드필더~

아~ 좋습니다! 공간을 파고든 공격수에게

빠르게 패스! 골키퍼와 1대 1 상황인데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기회죠! 슛!!!!

아쉽게ㄷ... "


"아오! X친 저기서 저걸 못 넣어"

찬우의 욕설에 중계진의 목소리가 묻혀버렸다. 아직 답답함이 풀리지 않았는지 찬우는 책상을 쾅 내려치더니 이제는 애꿎은 책상을 욕하고 있다.

"아 좀 닥쳐봐..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잖아"

내 이야기가 들리기는 하는지, 찬우는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팔을 부여잡고 계속해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니 쟤는 빼야 된다고 경기 시작부터 이야기했는데... 아니 기회가 생기면 뭐하냐고, 골 결정력이 없는데! 차라리 내가 나가서 뛰는 게 낫겠다. 아오 답답해"


 내 친구 찬우는 키 169cm에 90kg이 넘는 뚱뚱한 체형이다. 평소에 하는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과 집 앞 편의점 다녀오기가 전부인 내 친구.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 친구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가 될 일은 없을뿐더러 조기축구팀 선발도 어려워 보인다. 내 친구는 왜 TV를 보며 한 나라를 대표하는 축구 선수들에게 훈수를 두는 것일까? 분명 훈수는 어떤 일을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 친구는 지금 국가대표를 비난하고 있다. 찬우는 과연 어떤 사실로부터 당위성을 얻고 선수를 비난한 것일까? 두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첫 번째, 찬우가 비난하는 대상은 TV이지 축구선수가 아니다. 그렇다. 아무리 느리고 뚱뚱한 내 친구라도 움직이지 않는 TV보다는 축구를 잘한다. 그것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난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를 가지고 TV에게 훈수를 두고 욕을 한 것이다. 만약 우리 앞에 TV가 아니라 실제 축구 선수가 있었다면 과연 욕을 할 수 있었을까? 골을 넣을 기회를 아쉽게 놓친 공격수를 앞에 두고 대놓고 욕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따뜻한 말로 위로하며 응원해 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코앞에 축구선수가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다른 예를 살펴보자.

 필자의 아버지는 실제로 스포츠 중계를 보시며 훈수를 많이 두시는 편이다.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야구를 즐겨보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야구경기를 직관하러 가자고 하셨다. 내 생애 첫 야구경기 직관. 우리는 야구장에 도착해 간식을 씹으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시끄러운 관중 속에서 나는 작은 위화감을 느꼈다. 훈수꾼 아버지의 비난이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그저 관중들이 응원하는 흐름에 동화되어 크고 작은 탄식을 반복했을 뿐, 훈수는 두지는 않으셨다. 관중석과 야구 선수 사이의 거리가 멀긴 했지만, 어쨌거나 말하는 대상이 TV가 아니라 실제 선수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첫 번째 가설은 조금 억지스럽고 신빙성이 떨어져 보인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한 가설인 것 같았다. 분명 나에게는 이 가설에 어울리는 친구와 아버지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훈수꾼들이 이런 심리를 가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훈수꾼의 심리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훈수꾼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자기가 마치 어느 한 분야의 최고봉에 앉아있는 사람인 듯 이야기한다. 찬우는 축구선수를 비난할 때 자기가 마치 최고의 축구선수가 된 것처럼 이야기했고, 아버지께서 야구경기를 관람하시며 훈수를 두실 때는 마치 스스로가 야구팀 감독에 빙의된 듯했다. 두 사람은 각각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에 자리 잡은 전문가인양 행동했다. 스포츠 경기에 너무 과하게 몰입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누구인지 착각하게 된 것은 아닐까?

  TV에는 바보상자라는 별명이 있다. 영상매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상황을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 준다.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을 여행하게 해 주고, 로맨틱한 드라마의 주인공의 감정을 전달해 준다. 긴박한 상황에 놓인 장면을 볼 때면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맘 졸이며 긴장한다. 이처럼 TV를 보는 그 순간, 우리는 영상매체를 통해 현실을 잊고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된다. 이것이 몰입의 힘이다.

 훈수꾼이 선수를 비난할 수 있는 이유는 TV에 과몰입했기 때문이다. TV를 통해 중계되는 스포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스스로를 훌륭한 선수 또는 감독으로 착각한 것이다. 착각은 그들의 현실을 잊게 하고 비난에 대한 당위성을 얻게 해 준다. 그 덕에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들에게 훈수를 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시끄럽게 훈수를 두며 TV를 보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그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훈수꾼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TV에 대한 과몰입이 현실 자각보다 커지면서 나타나는 TV의 부작용일 뿐이다.




 지금까지 TV를 보며 비난하는 훈수꾼들의 심리를 알아보았다. 필자는 훈수꾼들의 비난이 듣기 싫어서 이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포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고, 나와 다른 그들의 심리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에게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보다 그들의 심리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일이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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