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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람 Aug 19. 2023

인터스텔라 영감의 원천을 방문하다

멕시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과 노숙자, 여섯 번째 날

1. 숙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새소리에 눈을 뜨니 8시. 오늘은 일정이 하나도 없다. 배가 고파서 어제 편의점에서 사온 일본식 삼각김밥을 먹었다. 쌀이 씹히는 느낌이 약간 달랐다.


2. 멕시코시티가 이젠 익숙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배운 스페인어로 알아듣는 단어 몇 개와 맥락을 조합해서 직원과 대화도 할 수 있다...! La casa de toño에서 능숙하게 주문하고 아점을 먹었다. 벌써 4번째 방문! 이번에는 멕시코 국물요리를 시도했는데 제법 맛있었다. 메뉴 이름은 'Pozole Grande'였다. 나는 사실 멕시코 음식이 살짝 물렸는데, 친구는 입에 맞았는데 아주 잘 먹었다.



3. 멕시코 로컬처럼 하루를 살아보자는 생각이었다. 아점을 먹고 대로변에 있는 스타벅스를 갔다. Chocolate Mexicana를 주문하고 과일도 샀다. 숙소 주변이 퀴어마을인 것 같았다. 직원 분도 무지개 프린팅된 옷을 입고 있었고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있었다.



4. 날씨가 너무 좋아서 야외 의자에 앉아 여유를 만끽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구경하니 금새 오후였다. 오늘은 세계 10대 도서관이라고 하는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5. 스벅에서 일어나 도서관으로 가려 하는데 한 남성(?)분이 말을 걸었다. (퀴어 거리라서 성별을 알기가 쉽지 않았다) 외모는 한국인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파라과이와 한국 혼혈이라며 한국어로 대화를 시작하셨다! 우리에게 길을 물어봤는데 우리도 몰라서 별로 도움은 안 되셨겠지만 신기했다.


6. 빨간색 메트로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다. 지하철은 현금(일회용 교통카드 구매)과 카드 둘 다 가능하지만 버스는 교통카드만 가능하다. 경찰관의 도움으로 우리는 옆 자판기에서 카드를 사고 버스를 탔다. 지하철은 거의 1분마다 오지만 버스의 배차간격은 일정하지 않아서 하염없이 기다렸다.



7. 버스도 여성/아이 전용 칸이 있더라! 여성 전용 칸이 있는 나라는 여성 인권이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은데, 여행자 입장에서는 참 마음이 놓이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기준이 학생까지인지, 가방 멘 청소년도 이 칸에 탔다. 이제 대중교통 정도는 익숙하게 탄다!


8.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은 인터스텔라 감독이 영감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정보를 모르고 가도 인터스텔라가 떠오를 정도로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웅장했다. 이게 전부 책이라니! 삼각대를 맡기고 여권도 확인 받은 후 입장했다. 돈을 요구하진 않았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9. 우리는 도서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는 이북리더기를 가져와서 한 시간 정도 읽은 것 같다. 사람이 적은 편이었고 조용해서 참 좋았다. 곳곳에 경찰관이 있어서 그런지 그냥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운 사람도 보였고, 전공책을 가지고 와서 공부하는 학생도 보였다.



10. 바스콘셀로스의 상징 같은 거대한 고래 뼈를 구경하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Zona rosa는 동양인이 많이 거주해서 그런지 동양음식점이 많았다. 라멘과 롤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오늘따라 노숙자가 좀 많아서 무서웠다. 밤이면 그들이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데, 그래서 8시 전에는 실내로 들어가는게 안전하다.



11. 여행이 무조건 빡빡하고 알차지 않아도 된다. 오늘처럼 계획없이 느긋하게 나와서 목적지를 정하고 여유롭게 책을 읽어도 좋다. ‘해야하는 일‘ 없이 마음 가는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약간의 강박과 불안함이 있는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되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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