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길목마다 전해지는 이야기거리"
이전 게시물에서는 임정화 시민 순성관님을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후, 직접 시민 순성관님과 함께 한양도성을 걸으며 가이드 투어를 받고 인터뷰도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에 한 분을 더 만나뵙게 되었다. 오늘 게시물의 주인공이신 왕완근 시민 순성관님 이다. 시민순성관 초창기부터 활동하신 분으로, 가이드 투어와 인터뷰에서 한양도성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셨다. 왕완근 시민순성관님과는 대면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여 서면으로는 궁금한 점에 대한 답변을 주셨고, 대면으로 뵈었을 때는 직접 한양도성 투어를 진행해주셨다. 한양도성의 역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왕완근 시민순성관님의 경우, 대면 인터뷰가 가이드 투어 형식으로 진행되었기에 서면 인터뷰만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서면 인터뷰의 특성상 편집을 크게 가하지는 않았으나, 가독성을 위해 일부분을 수정하였다는 점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Q1. 시민순성관으로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에 산은 대략 4000 여 개, 성은 2100여 개가 넘는다고 하죠. 그래서 산과 성이 들어간 지명이 유난히 많은데 제가 태어난 곳이 예산의 산성리예요. 살던 마을 뒷산에 김유신 장군의 아들 원술랑이 쌓았다고 전해지던 백제시대 토성이 있던 마을입니다. 그 산성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가서 놀던 기억과 여름방학이 되면 산 아래로 흐르는 무한천 건너 마을 친구들과 돌팔매 싸움, 산에서 내려오다 굴러서 크게 다쳤던 고향의 추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첫 직장을 1974년에 공주에서 시작했는데 거기서 하숙했던 집도 어쩌다 보니 또 산성동이었습니다. 바로 백제 무왕의 공산성이 맞닿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서울에는 1982년에 올라와 강남에 살다가 1999년 12월말에 이곳 종로의 무악동 재개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하게 되었는데 추첨결과 맨 위쪽에 있는 동이 당첨되어 한양도성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어릴 적부터 성과는 꽤 깊은 인연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눈만 뜨면 사계절 행촌동 구간 도성의 변화를 바라보며 살다가 2015년 정년을 맞으면서 때마침 시민순성관 모집 기사를 보고서 주말이면 늘상 오르던 인왕산을 좀 더 의미 있게 다니면서 자원봉사 활동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한양도성 4구간 중 특히 인왕산 구간은 워낙 뛰어난 풍광과 생태적으로도 의미있는 환경에 매료되면서도 2015년에 숲해설가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곽의 보수정비 공사가 시행되면서 건축적으로만 접근이 되는 느낌이 있어서 토목 기술자로서 관심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에 미력하지만 나름대로 더욱 즐겁고 보람이 있는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문헌상으로 남한에만 2,100여 개의 성곽이 존재하고, 그 중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것만 420여 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514년이라는, 가장 오랫동안 도성 기능을 유지해오면서 가장 길고 멋있는 도성이 한양도성입니다. 18.627km 성곽의 주출입문이 국보 제 1호 숭례문이고, 두 번이나 옮겨지었어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유일하게 사라진 문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던 돈의문입니다. 도성 중에서도 인왕산 구간(숭례문~창의문, 4.8km)은 도심 조망이 최고이지만, 짧디짧은 구간마다 이야기거리가 너무 많아서 저는 걸어서 하늘까지 올라갈 수 있는 천국의 돌계단이 있는 곳이 바로 인왕산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또한 시민으로서 도성과 이웃하며 살면서 생태적 관심도 많아 인왕산의 나무들을 보살피고 도성 주변의 풀꽃들을 나름대로 가꿔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와 운은 한두 번씩 주어진다고 하는데, 저 또한 우연찮게 인왕산자락 무악동에 1999년 12월에 이사를 오게 되면서 인왕산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2015년 퇴직을 하면서 도성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지금은 2008년에 조성된 월암공원 아랫자락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기회라고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했었는데, 산성에서 태어나고 산성 밑에서 살다가 다시 도성자락에서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한양도성을 사랑하게 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기회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양도성의 역사적 의미는 물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주변의 오래된 나무와 식생을 조사 관찰하고, 아울러 주요 문화유적과 기이한 바위 등을 코스별로 상세하고 흥미 있게 안내할 수 있는 한양도성 순성과 나무 지도를 포함한 숲 생태도감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현장 해설 없이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 <한양도성 한 바퀴, 각자와 나무 이야기(가칭)>를 만들어 보려고 준비하는 데까지 와 있습니다.
Q2. 현장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요?
순성 탐방로에서 통행에 불편을 주는 나뭇가지는 주로 아까시나무, 산딸기가 많은 데, 수시로 전지가위를 갖고 다니면서 잘라주고 있고, 인왕구간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서양등골나물, 돼지풀, 미국쑥부쟁이, 환삼덩굴 등 생태교란식물 제거작업을 꾸준히 하면서 단체 순성 시에는 해설을 곁들여 순성활동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만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활동이 중지되어 현재는 진행을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2015년 10월에 시민순성관 제2기로 처음 참여해서 교육을 이수하고 현장 활동으로 첫 번재 모니터링일지(2015.11.3)을 작성하여 제출했는데, 그 첫 번째 일지가 한양도성에 대한 서울시민의 첫 모니터링 일지가 되었고, 이것을 2016년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에 첨부된 기록물로 제출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제 모니터링 활동에 대해서 나름 자부심도 갖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열정을 다해서 순성활동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016년에 숲 해설가가 되면서 숲길은 물론 많은 걸음을 걸으면서 많이 보아야 제대로 알게 된다는 신념으로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걸을 수 있는 그날까지 한양도성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특히 인왕산을 돌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닏. 그래서 팀 활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어쩌면 즐겁기만 합니다.
2019년 5월 11일, 시민 순성관 전체를 시청 서소문 청사 강당에 모아놓고 ‘모니터링 기법에 대한 설명’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ppt 자료를 만들어 모니터링 기법에 대한 교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는 한양도성 모니터링에 대해서 제가 특별히 뭘 많이 알고 있어서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그 동안 순성활동을 해오면서 가졌던 여러가지 생각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1시간 정도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그 시간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문화재지킴이 지도사’ 양성과정에서 모니터링 기법에 대한 강의활동도 하게 계기가 되어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2020년에는 5월 16일부터 7월 5일의 기간 중 주말에 연인원 250명의 순성관들이 참여하여 인왕산 정상에서의 성곽오름 예방화동, 정화작업, 홍보 등 캠페인 활동을 열심히 펼쳤던 것을 들 수 있겠고, 또 신규 순성관들을 조별로 그룹을 만들어서 전 구간에 걸쳐 모니터링 기법과 주요 지점 해설 등의 팜플릿 자료를 만들어서 보다 충실한 안내를 위해 노력했던 점, 그리고 인왕팀장으로서의 역할로 팀순성 활동을 활성화하였고, 동아리 활동으로 ‘도성생태모니터링단(*도생단)’을 구성하여 인왕산에 자생하는 뻐꾹채, 원추리, 참나리 등의 씨앗을 채취하여 여러 곳에 뿌려주면서 자생식물이 계절별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자연정원을 꾸며보는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왕산은 암산으로 바위가 많고 나무 식생이 100여 종으로 다양해서 주요 순성 길목에 서있는 나무에 간단한 해설명패를 달아주는 활동으로 인왕산을 찾는 시민들에게 작은 이야기거리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많은 사진들을 찍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2000년부터 성곽 주요 지점의 성체와 각자성석은 물론 인왕산 정상의 바위 파임 등 여러 바위나 나무 식생들의 변화모습을 비교 관찰할 수 있는 자료가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습니다. 인왕산은 늘상 자연적인 인왕제색을 감상하면서 더불어 리기다-소나무 등 나홀로 나무도 많아서 더욱 값진 순성나들이가 가능한 귀한 곳이기에 더욱 애착이 갑니다. 특히 인왕산에는 매바위나 삿갓바위, 너럭바위 등에 한줌의 흙을 밑천 삼아 뿌리를 내려 오랜 세월을 홀로 살아가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고군분투하는 나홀로 소나무가 많아서 인왕산과 한양도성을 찾는 여러분들을 오늘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서 반겨줄 것입니다. 이런 소나무들과 한양도성이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Q3. 한양도성이 앞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한양도성은 자연상태로 야외에 자연물을 이용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600년이 넘은 조선시대 최대의 문화재입니다. 그렇게 매일 햇빛과 바람과 때로는 눈과 비를 맞으며 날마다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관리청에서는 적은 에산으로 현상 유지를 위한 관리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체에 틈이 벌어지고 기울거나 균열이 가고, 성석이 파편화되어 깨져 나가도 문화재의 한 조각이 아닌 돌조각으로 여기는 듯한 모습으로 느껴질 때 안타까움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조금만 눈 여겨 들여다보면 그 많은 성돌 하나하나에 600년의 풍파를 겪은 세월 흐름은 물론 돌마다 새겨진 깊은 상처들을 오롯이 품고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느낌들이 많이 배어 있습니다. 성돌 크기가 기껏해야 가로세로 40~60cm 밖에 안 되는 크기지만 그 사각 방형면마다 어머니의 얼굴, 기도하는 간절함, 온화한 희망의 모습, 그리고 풍파에 찌들은 애환까지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벅차오름을 느껴보실 수 있습니다. 300여 개의 각자성석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풍화되어 흐릿해지고 깨져나가기도 하면서 심하게 마모되어 가고 있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찾는 이들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성체와 성돌은 더욱 빠르게 아파오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현재의 모습을 유지만 한다는 노력을 체계있게 열심히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또 앞으로는 현재 모습을 유지 분만 아니라 도성 전 구간에 걸쳐 있는 모든 옛 이야기와 주변의 생태적 모습까지 어우러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스토리들이 더해져서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기억되고 관리되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리청의 많은 관심과 친절한 예산투입은 물론 시민들의 진정어린 한양도성 사랑과 함께 문화유산의 바람직한 관람과 보호노력이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 도성 4구간 중에서도 특히 인왕산 구간은 설악산처럼 내인왕과 외인왕으로 나누어보면, 내인왕도 현재로서는 상당히 개방이 진전되어서 몇 개의 탐방로가 새로 열려져서 좋습니다만 군부대 주둔으로 아직도 덜 자유스러운 부분은 좀 더 개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왕산을 오르게 되면 도심에서 복잡하게 살아가는 시간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인왕제색을 보면서 범바위를 지나 코끼리 바위를 타고 걸어올라 하늘까지 천국의 돌계단을 올라서게 되면 세계 어느 명승보다 뛰어난 풍광이 펼쳐지고, 치마바위가 사선으로 펼쳐지면서 서울을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멋은 천하제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탐방 길목마다 기묘한 바위 모습과 전해지는 이야기거리가 가득해서 ‘책바위는 공부하라고, 기차바위는 세계를 여행하라고 인도해주는 느낌에 다양한 나무들과 풀꽃 생태, 더불어 소나무 등 나홀로 나무의 의미는 스스로 일어나서 진취적으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서울시내에서 어디든 30분이면 충분히 내사산 등산을 시작할 수 있고 도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만, 한양도성을 일부러 찾아서 인왕산-백악-낙산-목멱산을 오르는 분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서울사적 제 10호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내부적으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실상 시민들은 보존의식도 그리 높지 않아서 여장을 오르거나 총안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하는 이러한 의식 수준이 걱정입니다. 한양도성 성체 모니터링은 같은 곳을 꾸준하게 계속해서 관찰 및 기록하고 비교분석해서 변화를 체크해보는 것인데, 실상 일부 순성관들은 그러한 관점을 잘 찾지 못하고 있고, 교육 시에도 안내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안타깝습니다. 그저 자원봉사자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주어진 채로 운영되고 있음이 아쉬워서 인왕팀 만큼은 그래도 팀순성 활동을 벗어나 보다 실질적인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적극적인 순성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 두 권의 한양도성 가이드북도 제가 볼 때는 참 잘 만들어진 안내 책자(*한글 가이드북 2017년 9월 개정판 발행)입니다. 이제는 새로 개방된 곳도 있고, 또 새로 발굴, 보수 정비한 구간도 많아서 내년쯤에는 가이드북도 개정판을 다시 내고, 충분하게 공급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대면과 서면 인터뷰를 동시 진행했기 때문에 서면 인터뷰의 질문은 짧게 준비하였다. 그러나 왕완근 시민 순성관님 지니신 한양도성에 대한 애정을 꾹꾹 눌러담아 보내준 내용들은 기대 이상이었고, 설국도성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시민 순성관님 한분한분이 우리의 문화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시는 영웅같다고 생각했다. 이 분들의 노고를 가슴 속에 새기고, 우리 또한 한양도성을 보존하기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