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기자의 연예수첩 68
관찰 예능의 범람 내진 모든 예능의 '관찰화'가 다소 불편하다. 대중의 엿보기 심리를 부추기는 걸로 모자라, 조작과 설정이란 양념까지 과하게 치기 때문이다. 마치 CCTV로 연예인의 은밀한 일거수일투족을 여과 없이 담아내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가공하는 제작 방식이 이제는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관찰 예능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날 것'의 추구다. 연출되지 않은, 실제에 가까운 상황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려 애쓴다. 이를테면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자랑하는 미남 미녀가 아침 일찍 퉁퉁 부은 얼굴로 일어나거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야무지게 생긴 연예인의 허당기 가득한 일상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며 '저들도 실은 당신과 다르지 않아'라고 얘기할 때 장점은 극대화된다.
그러나 유명인이 보여줄 수 있는 혹은 보여주고 싶어 하는 '날 것'은 적은 숫자로 제한돼 있다. 반면 시청자들이 원하는 '날 것'의 개수는 회가 거듭될수록 늘어난다. 출연진과 제작진이 최소한의 개입이란 미명 하에 설정과 가공의 유혹에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이유다.
관찰 예능에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상황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하면 십중팔구 '날 것'이 고갈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제작진의 본격적인 개입이 잦아졌다는 걸 뜻한다. 고정 출연자들과 사적으로 아무 관계없는 초대손님들이 일회성으로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관찰 예능이 반드시 리얼하지만은 않다는 걸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다. 매체를 잠시 떠나 드라마 제작사의 홍보팀장으로 일할 때였다. 우리가 만들던 드라마에 관찰 예능으로 뜬 유명인의 어린 자녀들이 카메오로 출연하게 됐다. 관찰 예능 제작진은 이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따로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문제는 홍보 과정에서 벌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촬영이 조금 지연되면서 유명인의 어린 자녀들 가운데 막내 사내아이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고, 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배포했다. 그런데 관찰 예능 제작진이 화들짝 놀라 배포한 사진을 회수해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유인즉슨 막내 사내아이는 관찰 예능 속에서 울지 않는 순둥이로 이미지가 굳어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으므로, 우는 모습이 대중에게 공개되선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관찰 예능은 말 그대로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일 뿐이란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겪고 보니 뒷맛이 씁쓸했다.
관찰 예능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일부 출연자들의 황당한 언행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얼마 전 방송됐던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에서 "출연료를 받아 (전처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려 나왔다"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빙상 스타 김동성이 대표적이다. 관찰 예능이 출연자의 진심을 담보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는 반드시 바뀌기 마련이다. 관찰 예능의 인기가 지금처럼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원할 줄 알았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한순간에 막을 내리면서, 대표주자였던 '1박2일'이 어느새 한물 간 구닥다리 예능으로 전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조금 걱정스럽다. 비대면에 비교적 적은 제작 인원으로도 얼마든지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관찰 예능의 수명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바로 코로나19 여파 탓인데, 제작 과정에서 대면 접촉 횟수를 최대한 줄여 확진 위험을 낮춰야만 하고, 줄어든 광고 수입에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방송사 제작진으로서는 관찰 예능 말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 해결의 열쇠는 시청자들에게 있다. 안 보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진리를 되새길 때다. 질 낮은 관찰 예능의 퇴출을 위해 보는 이들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은 자신의 세상이 거대한 스튜디오에 불과했단 사실을 뒤늦게 알고 탈출을 시도한다. 시청자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아무 생각 없는 관찰자로만 머물길 거부하게 된 것이다. 넘쳐나는 관찰 예능에 조금씩 질려하고 있는 우리 대중의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