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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책 Aug 06. 2020

나는 아동폭력의 생존자입니다.

     - 에필로그  '나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동폭력의 생존자다.    

스스로를 생존자라 칭하고 나니 마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짐짓 그런 일이 있었지만 무사히 어른이 됐고, 가정도 이루어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게 대견하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이 편치않다. 나는 여전히 그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많이 못나고 또 많이 아픈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자기는 왜 부모님 얘기는 안 해?”     

종종 있는 일이라 이제는 장난처럼 넘겨버릴 여유도 생겨났다.      

  “나에게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데, 감당이 되겠어?”     

물론 살아오면서 몇 번은 내 속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던 적도 있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많이 때리셨어.”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꺼낼 때마다 저릿저릿 아파오는 기억이

한 번도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된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갑.분.싸.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버리거나,

간혹은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 나도 많이 맞았어. 우리 때는 다 그렇게 크지 않았나?”     


나는 어렵게 꺼내려던 마음을 서둘러 집어넣었다. 물론 상대방을 탓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그저 가벼운 관심일 뿐, 나의 상처를 바라보고, 공감하고, 위로해 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조차도 그 기억들을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그것들을 토막토막 되새김질하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아파오면 서둘러 더 깊은 곳으로 묻어 버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만약 할 수 있다면 이제는 소리 내서 외치고 싶다. 

이발사가 대나무숲을 찾은 것처럼 누군가에게 털어놓다 보면 단단히 맺혀있는 그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누군가의 위로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대견하다 인정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엄마에게 맞으면서 자랐다.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젖먹이 시절부터 마흔네 살이었던 해까지.      

누군가는 그 나이에도 부모에게 맞을 수 있냐며 놀라겠지만, 나의 엄마에게는 확고한 지론이 있었다. 자식은 환갑이 넘어도 부모가 때리고 싶으면 언제든 때릴 수 있는 존재이며, 부모가 때리면 자식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맞아야 한다고. 

그걸 심리학에서 ‘가스라이팅’이라 부른다는 걸 나는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자라온 시간만큼 수없이 맞았지만 가장 먼저 털어놓고 싶은 기억은 마지막(부디 마지막이 되길 바라는) 그날의 일이다.      


그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오랜만에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나도 차례 준비를 마치고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갔었다. 모처럼 얼굴을 마주한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올케들과 조카들. 다시 생각해도 부족함 하나 없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고 몇몇은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쳤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나도 아들과 함께 거실 한켠에서 장난을 치면서 그 행복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누군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미친년 지랄하네” 

엄마였다. 그러곤 더 이상의 말도 없이 유유히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버렸다. 순간 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내 아이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까이서 남편도 그 장면을 목격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퓨즈 하나가 끊어졌다. 그래도 참았다. 혹시나 내가 한 마디라도 내뱉었다가 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봐. 아이의 놀란 눈을 다독이기 위해 애써 아무 일도 아닌 듯, 괜찮다는 듯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랫동안 그 순간을 되짚으면서 그때의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아마 엄마도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인 게 너무 행복했었나 보다. 장성한 자식들이 각자의 식솔들을 데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이는 그 쉽지 않은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고 즐거웠었나 보다. 그 기분에 취해서 자신이 아직도 자식들 위에 당당하게 군림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으셨나보다. 나는 언제든 엄마가 때리면 맞아야 하는 딸이었으니까.     


그날 나는 엄마에게 단 한 대를 맞았을 뿐이다. 아마 지금까지 있었던 폭력 중에서 가장 가벼운 경우에 속할 것이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전혀 기억에도 남지 않을 한 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엄마를 만나지 않고 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나에게 물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까 할머니한테 왜 맞았어?”      


나는 아무 때나 어떤 이유에서건 맞아도 되는 딸로 컸지만, 

내 남편과 내 아이 앞에서는 더 이상 맞을 수 없다. 

그게 단 한 대라 해도.

그 사람이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엄마라고 해도. 

나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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