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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Sep 06. 2023

호치민 일상 = 개미와의 전쟁

[Quest 1] 개미와의 전쟁

23살 국문학도 여자의 베트남 1년 살이 프로젝트  

다섯 번째 이야기


호치민에 적응하려는 자, 퀘스트를 통과해라.

첫 번째 퀘스트, 개미와의 전쟁



기후가 하나인 곳에서는, 모든 동생물들이 잘 자란다. 예를 들어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계절마다 동식물의 특징이 있고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동시에 버틸 수 있는 강인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반면 무더운 여름만 있는 베트남의 경우,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벌레들의 크기도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바퀴벌레가 사는 곳에는 개미가 없고, 개미가 사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없다던데... 베트남은 둘이 오손도손 행복하게 공존한다. 어딜 가나 함께다.


나는 아파트 고층에 거주했기 때문에 바퀴벌레 그리고 이름 모를 벌레들은 종종 등장했다. '종종'.


그러나 개미는 다르다. 개미는 늘,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다. 우리 집에.




일단 베트남 사람들은 개미, 바퀴벌레, 도마뱀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아온 생명(?)이기 때문에 그들을 완전히 박멸해야 하는 이유도, 그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에 거주하는 한인들과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개미 소독 업체


그러나 평생을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 생활만 해본 사람으로서, 개미와 함께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집 밖에 있는 건 괜찮다. 그렇지만 내 침대 머리맡, 싱크대와 인덕션, 식탁, 화장실 벽 등 정말 눈만 돌리면 개미 무리를 발견하게 되는 집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다. 호치민 살이의 첫 번째 퀘스트를 만난 거다.


부동산을 통해 개미 소독 업체를 불렀다. 떨떠름한 얼굴로 온 아저씨는, 정말 '개미' 때문이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개미가 보이는 곳에 몇 번 소독약을 뿌리더니 이게 최선이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나 이 소독은 효과가 없었다.



집 안 온 사방에 개미가 있고, 심지어 주방에 제일 많으니, 식욕이 사라졌다. 살이 계속 빠져 영상통화를 할 때마다 부모님의 걱정은 커져갔다. 생필품을 보내면서, 한국에서 유용한 개미 퇴치제도 함께 보내주셨지만 베트남 개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치민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거주해 왔다는 것.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각자 집 '개미' 근황을 물었다. 이미 대부분의 한인들은 개미 박사였다. 우리가 오랜 토론 끝에 결론 내린 개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개미는 염탐꾼을 한 마리를 보내고, 그 염탐꾼의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그 염탐꾼을 잘 살펴야 한다.

2. 개미는 물에서도 살아남는다. 벽도 탄다. 어쩔 땐 서로를 이어서 공중에 매달리기도 한다.

3. 설거지, 쓰레기 정리도 바로바로 해야 하지만 꽃 (식물) 도 키우면 안 된다.


그중에는 개미와의 동거를 순응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한인들은 한인 마트인 K-마트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개미약을 구매하고 있었다! 결국 난 그 약 덕분에 베트남에서 개미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호치민 살이 초반부터 만난 개미 덕분에, 나는 아주 좋은 습관을 갖게 되었다. 먹은 것은 바로 설거지, 음식물은 꺼내놓지 않기, 냉장고 청소 잘하기 등 매일매일 집을 쓸고 닦고 청결을 유지했다.




그리고 개미에 관한 책을 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자취 초반, 엄마는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개미>를 꼭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개미가 꼭 나쁜, 해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책을 보고 나면 개미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뜬 구름 같은 해결책이었다. 당장의 내 상황 (눈 뜨면 베개 옆에 개미가 있는)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 책을 읽고 난 뒤, 개미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완전히 변했다. 단순히 익숙해진 것뿐만 아니라, 개미를 하나의 존재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되었다.


때때로 내 팔을 기어갈 때도, 다리 어딘가 붙어있을 때도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이 친구들, 길을 잘 못 찾았군'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끔 안경에 올라타 내 눈앞을 왔다 갔다 할 때도 덤덤하게 맨손으로 치울 줄 알게 되었다.



겁이 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주방도 이제는 마음껏 사용한다. 요리는 물론, 달달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과일도 편하게 먹는다.



개미가 생길까 겁이 나 사 오지 못했던 꽃들도 어느새 우리 집에 자리를 잡았다.




베트남 살아남기, 첫 번째 퀘스트 <개미와의 전쟁>은 완벽하게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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