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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Aug 28. 2023

삼 년째 스물 세살로 살고 있습니다.

23살 타임루프

23살 국문학도 여자의 베트남 1년 살이 프로젝트  

네 번째 이야기



한국에서 새로운 나이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들었다. 모두가 두살이 어려졌단다. 99년생인 나는 2023년을 기준으로 원래 25살이 맞지만, 갑자기 2살이 어려진 덕분에 23살이 되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현재의 난, 3년째 스물 세살로 살고 있는 중이다.


3년째 스물 세살로 산다는게 무슨 말이냐고. 우선 2021년, 한국에서 한국 나이로 23살을 살았다. 그리고 2022년, 베트남에서 살았기 때문에 23살이었다. 그리고 현재 2023년 다시 난 23살이 되었다.


2021년, 스물 세살 기념 케이크


3년째 스물 세살로 살고 있으니 웃긴 부분들이 꽤 많다. 일단 '송지은-예쁜 나이 25살'을 카톡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하고 싶은데, 그 꿈(?)이 잡힐듯 말듯 하다 또 멀어져버렸다. 개인적으로는 20대의 중간인 25살이 되기만을 기다려왔었기에 살짝 아쉬운 느낌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에게 주어진 물리적인 시간이 늘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게 정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을 텐데, 소개하는 나이가 몇살 어려졌다는 것만으로도 내게 그만큼의 여유가 생겨버렸다.


2021년, 스물 세살의 나이로 한국에서 있을 때 나이에 대한 얘기를 참 많이 들었다. 학교에서도 (이미 졸업을 했어야 한) 막학년이었고, 교회, 학회, 동아리 등에서도 동생들이 계속 올라왔기 때문에 속한 그룹에서 ‘언니 라인’ 이미지로 굳어져버렸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 나는 이제 ‘언니’ 인데…” 라는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내 머릿속을 종종 헤집어 놓았던 것 같다. 일종의 부담감이었다.


그래서 베트남에 갈 때에도 걱정반 기대반이었다.

'공부를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그냥 즐기자.' 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졸업 하고 취업하는 친구들 혹은 동생들도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으로 교환학생을 가는게 맞는 걸까'.

'이 중요한 1년의 시간을 베트남에서 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들은 베트남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내게 겁을 주었다. '만약 누군가 왜 졸업 안했냐고 물어본다면'... '왜 스물 세살에 취업도 안하고, 베트남까지 왔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얘기해야하지? 나를 위한 물음에 정답을 찾기 보단, 남에게 보여질 내 모습을 위한 정답을 만들었다.



교환학생 기간에 함께 공부한 한국인 학생들 모임


그러나 베트남에 도착해 학교에 가고 여러 모임에 참여해보니, 나는 아주-아주-아주 막내였다. 한국에서 정년 퇴임하고 새로운 꿈을 찾아온 선생님들부터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입학한 언니 오빠들 그리고 한참 밑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후 들어간 회사에서 역시 나는 막내였다. 어딜 가든지 막내라는 걸 깨달은 뒤, 처음 자기소개에서 '나이가 어리진 않아요 ^^' 라는 실언을 했다는 사실이 참 부끄러워졌다.


어딜가든 막내가 되어보니, 행동과 생각에 여유가 생겼다. 시간에 쫓겨 빠르게 결정을 내릴 필요도 없었고, 당장의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를 몰아세울 필요도 없었다.


참 웃기지 않은가. 내가 살아온 물리적인 시간은 변하지 않았는데, 나이라고 소개하는 숫자가 어려지고 주변환경이 바뀌니 시간이 더 생긴 것만 같았다. 내가 연연해왔던 것이 새삼 별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고작 그 숫자에 불과한 것에 나를 가두고 세상을 좁게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쁘게 어디론가 떠나는 베트남 사람들


이번 1년의 베트남 생활을 통해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각자만의 정원을 가꿔가기 바쁘지, 서로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변의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스물에는 대학에, 서른에는 직장에, 마흔에는 가정에.... 이런 기준들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저 모든 것이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게 되는 호치민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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