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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Aug 18. 2023

인생 첫 사수로 베트남 사람을 만난다는 건

첫 직장생활을 베트남에서 시작하다

23살 국문학도 여자의 베트남 1년 살이 프로젝트

두 번째 이야기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 채운다면, 그리고 그걸 한참 뒤에 깨닫는다면, 단추의 짝을 맞추기 위해 되돌아가는 수고를 겪어야 한다. 사회 생활의 처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 사수로 어떤 사람을 만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직장 생활이 정해진다는 말은 종종 들어왔다. 사수의 사소한 모든 습관은, 분별력이 없는 사회 초년생에게 정답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모든 행동을 따라하듯, 직장 생활에서 사수는 병아리같은 초년생의 부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떠한가. 인생 첫 사수로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베트남 사람을 만나는 경우.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이다.


베트남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교환학생만 계획했던 베트남 살이에 '인턴'이라는 어마어마한 키워드가 추가되었다.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인턴 입사에 큰 메리트가 되었다. 예상치 못한 입사였지만, 너무나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오전에는 교환학생으로 오후에는 인턴으로 근무했다. 그렇게 주 5일 베트남에서의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베트남 사람을 사수로 만났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사수가 만들어준 캐릭터


나의 사수는 우리 팀의 유일한 아이 엄마였다. 어쩌면 이제 막 사회 생활 걸음마를 뗀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포지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베트남어 실력이 부족한 나를 붙잡고, 아이에게 말하듯 아주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건넸다. 내가 이해한게 맞는지, 메신저로 더블체크도 잊지 않고 해줬다. 베트남어 공부와 실전은 다르다는 것을 뼈 저리게 느끼며 의기소침해 있을 때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한번 더 상기시켜줬다.


Zudy, 지금 너는 언어 공부를 1순위로 삼아야해.
당장의 보고서를 완성하는 것보다 많이 말하는게 너에게 더 도움이 될거야.
나 말고도 다른 팀원들과 얘기하면서 많이 듣고, 많이 말하려고 노력해.



귀여운 닉네임 정도로만 생각했던 내 영어 이름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 역시 사수이다. 사수는 나를 Zudy 라고 가장 많이 불러준 사람이다. 한국 이름이 아니라, 영어 이름으로 불리면서 새로운 부캐를 만든 느낌이었다. 매번 내 이름을 불러준 덕분에 베트남에서 적응하고 살아가는 내 삶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의 나와는 다른, 베트남에서의 Zudy 캐릭터를 만들면서 새로운 나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생활 내내 Zudy 불렸다



동시에 사수는 베트남 사람 특유의 “Không sao” (괜찮아, 문제 없어) 마인드를 내게 심어주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특히 호치민 사람들) không sao (콩 싸오)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급하지 않다. 업무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겼을 때, không sao~ 하면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오토바이 접촉 사고나 학교 서류 처리 문제 등에서도 그들은 이 콩 싸오 마인드로 넘어간다. 사수와 나의 베트남 동료들 역시, 업무와 언어가 서툰 나에게 “Zudy, không sao” 라고 말해주며 조급해하지 않게 도와줬다.


업무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적응하느라 마음이 조금했던 나는, 종종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한국에서는 일 잘한다고 자주 들었기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뒤에 의기소침해졌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 베트남 동료들은 không sao 라는 말로 항상 나를 기다려줬다. 심지어 급하게 한국에 들어가야했을 때도, 돌아왔을 때 내 자리가 사라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도, “Zudy, không sao” 라고 말해주며 나를 안심시켰다.


베트남 동료들과 떠난 첫 워크샵


인생 첫 사수로 베트남 사람을 만난 건, 한국에서 조급하게 달리기만 했던 내가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처음하는 일도 잘해야해, 실수하면 안돼 라는 생각에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지레 겁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한국 생활. 23살, 인생 전체로 봤을 땐 아직 1/3도 안되는 어린 나이이지만, 주변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치여 조급하게 뭐라고 이뤄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몰아세웠다. 잘하고 있다는 칭찬에 목을 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늘 방전이 될 때까지 에너지를 썼다. 그런 내가 사수의 ‘không sao’ 라는 말 한마디 덕분에 쉼표를 찍게 되었다. 나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인생 첫 사수로 베트남 사람을 만난 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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