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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Aug 15. 2023

1년 동안 베트남에서 3번의 이사를 했다.

첫 자취를 베트남에서 시작하다.

23살 국문학도 여자의 베트남 1년 살이 프로젝트

첫번째 이야기



나는 태어난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주변 이웃들과 친구들 모두 최소 10년지기이고,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친구들의 이야기가 나의 일상과 닮아있을 정도로, 한 동네 토박이었다. 그랬던 내가 베트남에 혼자 떨어진 이후 무려 3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베트남에 도착했지만 숙소는 알아서 구해야했다. 1년 동안 머무를 집을 구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어려운 퀘스트였다. 인생의 첫 자취일 뿐만 아니라,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 집을 구해야한다니.. 산너머 산이었다. 동시에 베트남에 딸을 혼자 보낸 부모님의 걱정도 컸다. 그런 걱정 덕분에(?) 나는 감사하게도 호치민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인생 첫 자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 입주한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없었겠지만... 제목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여러 문제들로 인해 집을 세번이나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이사 썰을 풀어보려 한다.




첫번째 집
특: 4시간 거주



첫 자취의 큰 꿈을 안고 내 몸만한 캐리어를 혼자 낑낑 옮기면서 첫번째 집에 입주했다. 완벽한 햇살과 잘 정리되어 있는 침구류를 보니 앞으로의 베트남 생활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에어비엔비 장기투숙으로 예약을 한 집이었기 때문에 호텔같은 느낌도 들었다. 집주인에게 키를 건네받고,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받았다. 내가 입주하기 직전, 이미 하우스 키퍼가 깨끗하게 청소를 했으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오케이. 이 깨끗한 화이트톤 집에서 나의 첫 자취 시작이다! 


그러나 모든 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짐을 다 풀고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누군가가 방금 샤워를 마친것 같은 흔적이 있던 것이다. 냉장고를 여니 누군가가 마시던 물이 들어있었다. (심지어 그건 나의 웰컴 드링크였다!) 내가 입주하기 직전에 하우스 키퍼가 치웠다는데... 그럼 도대체 누가 방에 들어와서 물도 마시고, 샤워를 했다는 것인가... 불현듯 엄청난 공포감이 들었다. 집안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이 타인의 침입이 쉽다는 증거같았다. 이 집에서는 단 하루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집주인에게 연락해 문제를 설명했고, 결국 나는 4시간만에 다시 이사를 해야했다.



두번째 집
특 : 두달간 거주



에어비엔비에 대한 신뢰도가 완전 떨어진 나는, 현지 부동산을 이용해 집을 구했다. 두번째 집은 첫번째 집의 옆옆옆 동이었다. 부동산 직원과 미팅도 하고, 입주 전 미리 집도 보며 나름 꼼꼼하게 집을 확인했다. 첫번째 집의 트라우마로 꽤나 예민하게 골랐던 두번째 집은 가구나 위치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2가지만 빼면 말이다.



바로 집안 곳곳에 개미가 넘쳐났다는 것이다. 집의 컨디션은 미리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주 작은 개미들은 미쳐 신경쓰지 못했다. 사실 베트남은 개미가 없는 곳이 드물다. 그렇지만 없는 집도 분명 있다. 그러나 두번째 집은 개미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에어비엔비와 다르게 이미 계약까지 마친 이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개미 박멸에 힘쓰는 것이었다. 개미 업체를 불러서 소독도 하고, 한인 커뮤니티를 털어 개미잡이 약도 깔고, 한국에서 개미 약도 받아서 설치했다. 요리하면 바로 설거지는 기본,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음식은 먹지도 않았다. 꾸준한 노력끝에 결국 개미를 우리집에서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집세가 너무 비쌌다.



현지 부동산을 통해 계약했기 때문에 기존 집값에 추가되는 부가세 생각보다 컸다. 월세가 대략 800불이라면, 여기에 전기세, 관리비, 하우스키핑비, 부동산 수수료까지 포함되니 한달에 집값으로만 나가는 비용이 1000불이 넘었다.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베트남 물가에도, 1000불이나 집세로 지불하니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였다. 호갱이 된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두 달 뒤에 또 이사를 했다.




세번재 집
특 : 가장 오래 산 집



드디어 마지막 집이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집. 마지막 집은 첫번째 집 바로 앞동이다. 운이 좋게도 한국인 집주인을 만나 현지 부동산에서 부르는 집값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입주할 수 있었다. 거쳐온 두번의 이사를 통해, 세상에 완벽한 집은 없다 라는 걸 깨달아버렸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사소한 트집을 잡기보다는, 내가 먼저 집을 사랑해보기로했다. 어두웠던 조명을 갈고, 꽃을 사오고, 사진을 붙이고, 디퓨져를 놓았다. 개미와 바퀴벌레 박멸하는데에는 이미 전문가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엇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늘 잔잔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나의 여가시간을 채워줄 피아노와 기타도 하나씩 가져다 채웠다.



그러자 이 집을 '우리집'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집'이 되자, 집이 가지고 있던 단점들은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북쪽이라 아침에 해가 잘 들지 않는 단점은 오후 3-4시에는 따뜻한 햇살을 볼 수 있는 장점으로. 후문 바로 앞이라 집 주변이 시끄러운 단점은 단지 안 교통체증을 겪을 필요없다는 장점으로. 더이상 집의 나쁜 점을 찾을 필요가 없게되었다. '우리집'이기 때문에.


세 번의 이사 끝에, 나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우리집' 태그를 붙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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