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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곳 Oct 05. 2023

Homesickness, 집에 가고 싶어요

향수병을 앓게 된 유학생

23살 국문학도 여자의 베트남 1년 살이 프로젝트  

여덞 번째 이야기



인생이란게 다 계획대로 되지 않듯이, 그 작은 조각인 유학생활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여러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았지만, 제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건, 나의 향수병이었다.


원하고, 바라던 유학생활 / 해외살이이기에, 환경에서의 문제가 아닌 내 안에 문제가 존재할 거라고는 단 1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러나 향수병을 만났고 꽤 오래 지속되었다.



향수병이 심하게 왔다. 계속 부정해왔지만 이건 향수병이 맞는것 같다. 숨 언니가 그랬지, 도착하고 1개월은 행복하고 2개월째부터 집 가고 싶어 죽겠다고. 마침 오늘이 딱 두달째 되는 날, 나는 이게 향수병이 맞다고 인정했다.



향수병을 앓은 당시, 나의 일기 중 일부분을 가져왔다.  




향수병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아주 서서히 천천히 나를 잠식해간다. 향수병의 기본 전제 조건은, 일단 내가 아주 낯선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놓여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알던 사람이 한명도 없어야 한다. 이런 황무지 같은 곳에서 나의 삶을 새롭게 개척할 때 우리는 향수병을 느끼기 때문이다.


처음 한달은 아주 의지가 넘친다. 물론 타의로 분리된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자의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나 혼자, 나의 의지로 모든 걸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의지가 넘쳤다. 매일의 루틴을 만들고, 일기로 나의 삶을 기록하고, 책도 열심히 읽고, 주어진 일 그 이상의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찾아서 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돌아와 지친 내 모습을 볼 때면 내심 뿌듯함도 느꼈다. 그래 맞아. 나는 이 낯선 곳에서도 잘 적응해서 살고 있는 아주 멋진 사람이야!


.


그런데 서서히 무기력함이 찾아왔다. 그리고 의지가 넘쳤던 것들이 하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는 책이 눈에 안들어오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권씩 읽던 난데, 일주일에 한권을 읽는 것도 힘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한달 동안 열심히 적응한 덕분에 체력적으로 힘이 든다고 생각했었다.


이 무기력함은 점점 나의 삶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음악 듣기를 좋아했는데, 어느순간부터 에어팟을 챙기는 걸 잊어버리기도 했고 앨범에는 최근에 찍은 사진이 아예 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기력함은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 발화점은, 내가 쓴 글이었다. 글쓰는 모임에서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었다. 쓸 땐 몰랐는데, 함께 모여 나누다보니 죽기 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고, 그렇게 쉬운 일을 정작 지금의 나는 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이곳에 뭘 누리려왔나... 라는 생각이 물밀듯 몰려왔다.


같이 해외 타지 생활을 하는 친구에게 이런 상황을 얘기하며 어느정도 위로를 받은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내가 지금 우리 가족 곁에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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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패턴이 일주일 정도 반복되고, 오늘 감기 몸살로 향수병이 증명됐다. 오한에 떨며 자는 내가 한없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에 너무 가고 싶었다. 집에 있어도 이곳은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오늘 하루 나는 온몸으로 향수병을 느끼고 있다.

이게 언제 해결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향수병이 맞다고 인정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다. 마치 우울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제대로 발견하니 해결방법이 보이는 것 같다.

나의 우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조금의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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