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예전에, 짧지만 깊은 사랑이 되어 지나간 내 첫째 고양이, 수박씨를 대신해 이 녀석을 보조석 앞 자리에 앉혔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와 함께 하자고...
이제 언니랑 같이 따땃한 햇볕도 쬐고 여기저기 놀러다니자?
그저 인형같이 생겼지만 사실,
얘한텐 숨겨진 비밀이 있다.
뭐더라, 습기를 흡수 뭐시기 한댔는데...
아무튼 무익하게 생겼지만 제법 멋진 기능을 갖춘 제품이 이 녀석의 정체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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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꽤나 무더웠던 여름날, 수박씨를 만났고 금새 떠나 보냈다.
시간은 내 슬픔과 상관 없이 흘러갔고
이 친구의 크기가 흐릿해졌다고 여길 무렵이었나.
꽤 시간이 흘렀을 때.
대형 문구 서점을 구경가는 게 취미인지라 이날도 어느 서점을 놀러갔고, 얘를 보았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귀여운데 기능도 좋으니 사야겠다~ 하고 샀지만
사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얘를 보자마자, 내 첫째 고양이의 애칭인 '갓난이 수박씨' 라고 이름 붙여주며 데려왔다.
우리 수박씨의 분신같은 생김새를 보고 어떻게 안 살 수 있었겠어.
그렇게 쏙 빼닮은 이 친구를 데려왔고, 데려온 그날은 수 백 번 정도 미간 사이를 쓰다듬으며 수박씨를 떠올리고 못 다 해준 일들을 곱씹었다.
그 뒤엔 눈에 잘 띄고 손이 잘 가는 곳에 올려두고서 지나갈 때마다 수박씨야~ 하며 머리를 쓰다듬곤 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본가 방구석에 방치되었다.
가끔 눈에 띄면 머리를 매만져 주었지만
갈수록 얘가 있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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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이번 어버이날에 본가에 들렀는데 이 친구가 보였고, 덥석 데리고 왔다.
음~ 이 친구에 대한 추억을 곧 다뤄볼까 한다.
글로 옮기는데 시간이 필요할 뿐, 이 친구에 대해 말해달라면
녹음 버튼을 on off 하듯이 그대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래서 이미 녹음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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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겨우 5일이었다.
학교를 가려고 매일 지나가던 길가 저먼치에 길게 자란 풀밭 구석에서
이어폰을 낀 귀에까지 들리도록
애처롭게 울던 너를 들었고
며칠을 비를 맞으며 어미에게 돌아와 달라고 힘껏 울고 있는 너는
얼굴과 눈가에 깨알같은 구더기들을 얹고 있었고
그 모습에 아무런 준비 없이 구조했고
분유를 제 때 제 때 먹이기 위해 너를 학교에도 데려갔었지.
원래의 일상을 오가며 너를 돌보았고
겨우 다섯 번의 날을 함께 하다가
갑작스레 이별했을 뿐인데
평생 내 마음속 첫째가 되어버렸어.
앞으로 내가 미래에 어떤 고양이와 함께 살게 되어도
부은 눈이 수박씨같던 네가 내 첫째라고 이미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걸
이번에 인형을 내 차에 올려두며 깨닫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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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어째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왜이리도 큰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동정일까.
버림받은 너희들이 내 결핍을 자극했을까.
그래. 맞다.
그렇지만 동시에 너희를 사랑해.
내가 품는 사랑에
의문을 품다가도 이내 그럴 필요가 없구나 하고 웃음 짓게 하는 존재들이 몇 있는데
너희도 그 중 하나이며
그래서 그저 사랑이라고 답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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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다시 만난 이 친구를 쓰다듬으며 이젠 캣러버가 된 엄마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얘가 살아있었으면 내 고양이가 되었을 텐데... 지금쯤 궁디 고남이랑 비슷한 나이일 텐데. 다 큰 모습은 어땠을까?"
안 부은 눈은 얼마나 커보였을까.
귀는?
귀는 어떻게 커졌을까...
알 수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는 걸 아는데
그래도 네가 나와 함께 자랐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곤 해.
이 친구 이야기를 쓰다가 또 펑펑 울지 않을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을 때에도 속으로는 오열 중인 사람이라...하핫...
그래도 써야지.
머릿속에 생생하지만 아직 생생할 때 이 친구의 이야기를 글에다가 쏟아내야지.
그리고 두고 두고 힘껏 추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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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이 수박씨야
새로운 고양이로 살고 있다면
아주아주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사랑을 듬뿍 받고 있기를
천수를 누리기를...
수박씨야 사실,
네게 더 예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
네가 내 곁에 오래 함께 했더라면 새 이름으로 함께 했을텐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슬퍼서 새 이름을 지어줄 수가 없네.
하지만 고양이별에서든 돌아온 이승에서든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어.
구래. 잘 지내고.
... 우리 언젠가 또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