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대학교는 제 성적이 딱히 좋은 편은 아니어서 수시로 원서를 넣어야 했어요. 면접도 보고 기다리며 수능도 보면서요. 별로 붙은 곳은 없었는데, 그나마 수도권에 하나가 있었지만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방대에서 그나마 나아 보이는 학과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멀다는 게 솔직히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집에서 나가고 싶었거든요.
어머니는 불안해했지만 저는 설레었어요. 그렇게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남자 친구도 사귀어 행복하게 지냈지만, 부모님 그림자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받은 육아 무관심이 십수 년 이어지면서 히스테릭해지셨거든요.
당신 생일을 그냥 지나가면 정말 불같이 화내셨어요. 뭐, 제가 불효녀라고 질타받아도 할 말은 없지만 정도가 좀 심했죠. 일주일 내내 수시로 전화해서 당신이 하고픈 말만 하다가 끊기 일쑤여서 핸드폰에 '엄마'라는 글자만 떠도 심하게 심장이 뛰었어요. 전화벨의 노이로제는 이미 학생 때 생겨서 더 했던 것 같아요.
남자 친구 얘기에 데려와 보라고 하셔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첫마디가 두 분 다 그냥 친구처럼만 지내 달라는 말이었어요. 친오빠처럼만 지내라고. 애인인데도 불구하고요. 세게 저항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대했더니, 남편이 정말 속상해했어요. 제 부모님에 대한 반감이 더해졌던 사건 중 하나였어요.
그리고 제 불만이 최고조로 터진 건 휴학 후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간다는 사건이었죠. 남자 친구와 같이 가고 싶다고 하니 당연히 말리셨는데, 저는 그것도 경험에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무조건 남자 친구 따라가는 어리숙한 애로만 보시더라고요.
조용히 잘 지내다가 편지 써놓고 폰을 꺼놓고 가출을 했더니, 무례하게도 제 네이트온에 떠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위 연락해서 다짜고짜 저 어디 있냐고 그러셨대요. 저도 어린 행동을 하긴 했지만. 아무튼 기회가 잘 오질 않아서 아주 최근에 그때 휘말린 분께 사과드렸습니다.
어쨌든 그날 부득불 찾아내셔서 늦은 저녁에 남자 친구와 집에 같이 갔어요. 이모와 이모부도 오시고 무릎 꿇리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어봤네요. 등짝은 많이 맞아 괜찮았는데, 양아치 같은 남자 친구 만나서 그런 거라는 둥 창피한 언사만 하시길래 그만하라고 처음으로 소리쳐봤어요.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남자 친구는 화가 나서 나가겠다고 하니 아버지는 몽둥이를 들고나가면 두들겨 패겠다는 얘기를 하기에 제가 그냥 보내달라고 얘기해서 가까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왜 그랬냐고 호통치길래 집이 싫고 엄마가 제일 싫다고 소리치면서 울었더니 또 충격 먹으셨더라고요. 덜덜 떨면서 여태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하냐면서.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 어이가 없었죠. 여태까지 나한테 이렇게 죄책감을 씌웠구나. 난 아프고 아파서 이유모를 자해까지 했는데. 이 시점을 계기로 저는 빠른 독립을 하기 위해 남자 친구와 결혼 계획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실제로도 결혼은 빨리했어요.
어쨌든, 남편은 먼저 호주에 갔고 저는 아르바이트를 좀 더 해서 한 달 뒤에 갔습니다. 반년 뒤 돌아와도 저는 환영받지 못했어요. 고생했다는 말보다는 허송세월 보낸 거라고 핀잔 듣고 다른 애들은 공부하느라 시간 보낸 걸 어떻게 따라잡을 거냐며 비난만 들었죠.
마음에 상처는 남았지만 그냥 제 마음대로 하기 시작했어요. 집에도 잘 안 갔고, 전화도 성의 없이 받았고. 다른 과로 전과해서 옷도 제 마음대로 입고 다니고. 어머니는 남자 친구와 침대에서 낮잠 자던 제가 순결하지 못하다며 비난하시기도 했어요. 그걸 본 날은 앓아 누우 시기까지. 그래도 상관 안 했어요. 그러던가 말던가.
그렇게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추천한 현장학습으로 나갔던 회사에서 취업하라는 얘기에 상황 설명을 위해 어머니와 통화를 했죠. '네가 어딜 가서 그만큼 받을 수 있을 것 같냐, 무조건 다녀라' 하는 어머니 말에 반박할 수 없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는 더 가관이었죠. 저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사택에 인턴은 저뿐인데, 다니던 어떤 사원 언니가 룸메이트였던 제일 나이 많은 언니와 극도로 사이가 안 좋아져서 아무것도 모르던 저와 바꿔달라고 했죠. 그게 비극의 시작인 줄 모르고 저는 흔쾌히 바꿔줬습니다.
-다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