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치사? 고문치사.
지난주 군기훈련을 받던 도중 쓰러져 이틀 만에 숨진 육군 훈련병이 올해 첫 열사병 추정 사망자로 분류됐다. 알고 보니 그는 열사병 사망이 아니라 고문(법을 아득히 초과한 군기 훈련을 고문이라 표현함)으로 인한 횡문근융해증과 신부전, 패혈성 쇼크로 사망한 것이었다.
나는 논산훈련소 29 연대를 나왔다. 사망한 훈련병은 사단 훈련소의 훈련병이다. 보통 논산이 가장 힘들다는 말이 있기에,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엥? 얼차려로 어떻게 숨지지? 이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도 얼차려(군기교육)를 받았고 간부들이 얼마나 처벌을 무서워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군기교육은 명백히 규정이 정해져 있고, 그것을 넘어가면 간부들도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다들 쫄아있기 때문에 훈련병을 마음대로 굴릴 수 없다. (그래도 괜찮다 법을 따라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죽기 직전까지 끌고 갈 수 있다.)
규정은 다음과 같다.
1회 1시간 1일 2시간 이내로 실시해야 하며 1시간 초과 시 중간 휴식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괴롭히는 군기교육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푸시업, 스쾃, 걷기(with 단독, 완전군장), 뜀걸음(단독군장), 청소 등이다.
뜀걸음의 경우 상병이상부터 완전군장을 할 수 있으며 일, 이병 때는 단독군장을 해야 한다. 단독군장은 사실상 매우 가벼운 편이며 무게 차이를 크게 느낄 수 없다. 그에 비해 완전군장은 +20kg가 추가되므로 발목에 부담부터 느껴진다.
참고로 훈련병은 아직 이등병보다 아래이다... 사망한 훈련병은 입대한 지 일주일이다.. 이때는 훈련이고 뭐고 제식교육할 때이고 전혀 군인이 아니다... 그냥 민간인이고 체력을 전혀 기르지 못한다... 나 훈련소 때를 생각해 보면 혈압이 200이 넘어서 혈압 측정을 15번을 넘게 하다가 팔에 멍이 들고 피부가 까매져서 더 이상 못한 친구가 있다.(그 친구의 몸무게는 110? 120kg 언저리였다) 아니 왜 그럴 때까지 혈압을 측정하냐고? 낮게 나와야 하니까. 근데 자꾸 높게 나오니까. 어차피 정답은 정해져 있다. 어쨌든 이런 애도 그냥 올 정도로 우리나라 신검은.. 답이 없다 근데 이게 옛날이고 지금은 한층 더 답이 없어졌다. 정말 웬만한 몸에 문제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죄다 현역이다! 몸무게가 130kg가 넘어가고 물리적으로 활동이 힘든 애들을 보며 정신력이 나약하다고 욕하는 곳이 훈련소이다. 징집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무나 다 데려와놓고 군기교육은 저렇게 시킨다고? 진짜.. 하.. 그냥 죽으라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죽은 것이다.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훈련소에서 시끄럽게 했고( 아니 ㅅㅂ 개인정비 시간에 시끄럽게 했다고 완전군장 얼차려 주는 거부터 이해가 안된다) 그것에 화가 난 중대장이 다음날 완전군장에 그것도 모자라 책을 박은 채 연병장 뜀걸음, 선착순 달리기와 푸시업을 시켰다. (애초에 훈련병에게 중대장이 얼차려를 주는 위치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분대장들이 관리하는데 이거도 이해가 안 됨)
사망한 훈련병은 이러한 얼차려를 받으면서 이상 증세를 보였으며, 같이 얼차려를 받는 동료들이 이를 간부에게 보고했으나 간부는 꾀병 부리지 말라며 무시했다. (진짜 ㅅㅂ 훈련소에서 너무 흔한 일이라서 너무 화가 난다.)
결국 해당 훈련병은 16시 30분, 시작한 지 40분 뒤 기절했고 수십 분간 방치되었다가 발견되어 다른 군인들이 의무실로 이송 후 군의관 지시로 수액을 맞았다고 한다.
이후에 6시 50분경에 의무실에서 속초의료원으로 응급 이송을 했다고 한다. 호흡수가 분당 50회에 체온은 40.5도.. 횡문근융해증 진단을 받았다.
그러다 신부전이 왔고, 근육이 녹아내려 신장 투석을 진행했으나 결국 이틀 뒤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한다.
훈련병은, 입대한지 1주일 된, 민간인과 다름없는 훈련병은, 완전군장을 한 후 걷기만 가능하다. 나는 훈련소 거의 마지막 주차쯤에 완전군장을 메고 걷는 훈련을 했는데, 1시간인가 걸었나? 몸이 매우 마른 친구가 기절했다. 훈련소에 가면 체력이 강제로 상승하는데, 마지막 주차의 훈련병이 기절할 정도로 빡세다는 것이다. 근데 숨진 훈련병은 완전 군장을 한 채 연병장 2바퀴를 보행한 뒤, 지시에 따라 군장 상태에서 뛰다 쓰러졌으며, 이 당시 보행과 구보를 합친 거리는 1.5km 정도라고 군 당국이 파악했다. 군 관계자는 "통상 20kg 이상인 군장을 한 채 팔굽혀펴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돌았나? 훈련을 제대로 하지도 않은 훈련병한테 완전군장 메고 방탄모까지 쓰고 저 짓을 시킨다는게 이해가 도저히 안간다. 제발 역지사지를 해봤으면.
하필이면 중대장이 여자이다. 여자고 남자고 할 것 없이 그냥 인성 나쁘고 능력 없는 사람이 저런 짓을 하는 것이다. 굳이 여자라서 더 욕 먹을 이유는 없다... 근데 사람들은 왜 중대장이 여자임에 분노했을까. 그것은 ROTC의 구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여군들을 싸잡아서 욕할 생각이 없다. 애초에 여군 남군으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그냥 모두 군인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이유를 굳이 분석하자면, "자기는 똑같이 차이를 인정받아서 이익을 얻더니 왜 남한테는 그러지 않지?"의 심정으로 추정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자를 디스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실 관계를 나열할 뿐이다. 병장보다 훈련병이 체력이 안좋다고 한다고 훈련병을 디스하는 게 아닌 것처럼. 실제로 경찰이나 군대에서 남자와 여자의 체력 기준이 다르고 훈련 기준이 다르다. 마치 병장은 좀 굴려도 되고 훈련병이라고 봐주는 것처럼, 남자는 좀 굴려도 되고 여자는 좀 봐주는 것이다. 왜? 체력의 차이가 있으니까. 전자는 짬으로부터 유발된 차이. 후자는 DNA로부터 유발된 차이. (절대적으로 여자가 더 쉽다는 게 아니다 ! 체력의 차이가 있으니, 훈련의 강도를 조절해도 비슷한 정도의 힘듦을 느낄 것이다! 절대적으로 훈련병이 더 쉽다는 게 아니다 ! 병장은 익숙하고 체력도 좋으니 훈련 강도를 병장에게 높게해도 훈련병과 병장이 동일하게 힘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나도 중대장이 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반감을 가질까? 그렇지 않다. 그냥 멍청함과 무능력함이 싫다. 왜, 왜 , 왜, 너는 왜, 훈련병의 체력 수준을 모르고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고문을 한건지. 왜 저런 수준의 사람이 한 중대의 장이 된 건지. 어쩌다 대한민국 육군의 수준이 이정도까지 됐는지. 슬프고 화난다.
내가 이렇게 화나는 건 아마 공감이 되서겠지. 훈련소에 가서, 무능력한 사람들에게 명령받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미친놈이 되는 군대라는 사회에 환멸이 나서겠지.
어쨌든 이 사건이 여자 vs 남자로 이상한 논점으로 이동하는 거 같아 화난다. 이것은 중대장과 훈련병의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 고문치사 사건이라고 봐야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적인 관점에서 많은 논의들이 이루어져야한다. 남녀갈등이 낄 자리가 없는데 대체.. 참..
나는 이 사건의 원인과 문제점을 이렇게 본다
출산률 급감으로 인한 병력 자원 급감
병력 자원 급감에 따른 징집률 상승 필요
징집률 상승 필요에 따른 신체검사 기준 완화
신체검사 기준 완화에 따른 병력 수준 하강
ROTC에 대한 사회적 불호 (ROTC의 선호도는 갈수록 내려간다는 것은 모두 알 것이다. 선호도가 내려간다는 것은 경쟁률이 적다는 것이고 되기가 쉬움을 의미한다. 되기가 쉬운 것은 장벽이 낮다는 것이고 장벽이 낮다는 것은 나보다 멍청한 사람이 나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력을 쥐게 된다는 것이고 그렇게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군대 그 자체. 합리적인 의사 판단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님. 까라면 까라는 곳. 의견교환을 하는 것이 곧 명령 불복종이 되는 곳.
살인자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대처. 심리상담? 고향으로 내려가? 무슨 피해자세요?.. 훈련병이 힘들다할땐 엄살부리지 말라더니 죽여놓곤 왜.. 장담하는데 횡문근융해증으로 쓰러질 정도면 몸에 엄청난 무리가 와야하고, 전조증상이 매우 심했을 것이다. 그것이 꾀병으로 보일 리가.
정치에 대해서
현재 나는 어떤 목소리를 내는게 전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언가에 대해 분노하고 투표하고 (쥐뿔도 안되는) 영향력을 행사한다해서 무엇이 바뀔까. 그냥 내 능력을 높이고 내 실력을 키우고 내 살 길을 찾고 내 행복을 쫓는 것이 맞다. 그리고 정치와 앞선 가치들은 이항대립적이라고 믿는다. 시간은 한정돼있으니까.
나도 갔다왔지만,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곳이지만 (그리고 가면 당신들은 정말 누구보다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거는게 멋있는 거라며 시급 2천원을 준다 누구보다 가치있는데 내 시간은 시급 2천원이군요) 참 군대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한다. 물론 저렇게 죽는 행위?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근데 군대에서 죽을 위험은 사회에 비해 정말 매우 높다. 총기사고도 있고 자연재해도 있다. 사회인인 우리는 태풍이 온다하면 밖에 나가지 않지만 군인인 나는 태풍이 올 때 산을 올라가서 탄약고를 지켜야했다. 또 탄약들을 관리했는데 큰 충격을 주면 폭발할 수 있는 탄들이 많다.. 폭발했음 이미 죽었겠지.
갑작스럽게 20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남성들이 그냥 불쌍하다. 그래도 어쩔 방도가 없고 이것이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가는 것 같다. 과거의, 현재의, 미래의 군인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