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프랑스적인 것 중 하나.
내 주변에는 카페에서 혼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심지어 하루에 카페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친구들도 있다.
이와 달리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카페에 가는걸 그리 즐기지 않았다.
나에게 카페란, 식사 후 친구들과 이야기를 좀 더 하기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
커피나 차에 대해 특별한 흥미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파리에 와서 살면서 카페를 좋아하게 되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파리와 서울에 있는 카페는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야외 테이블
서울에 있는 카페라 하면 보통 실내에서 마주보고 앉는 테이블을 쉽사리 떠올린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카페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카페가 생겨났지만, 내게 카페라 하면 "실내에서" 누군가와 만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장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파리의 경우 카페 밖에도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야외에 있는 테이블의 경우, 의자를 마주보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보통은 두 의자를 길거리 방향으로 맞추어 둔다. 그러다보니 혼자서 또는 다른 사람과 커피를 마시면서 길거리를 자연스레 보게 된다. 책을 읽다가, 이야기하다가 종종 길거리를 내다볼 수 있어 좋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보는게 일상이 되다보니 프랑스가 패션으로 유명한가 싶기도 했다.
게다가 한국에 비해 파리의 날씨는 대체로 좋지 않다. 해가 쨍쨍 뜨는 날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화창한 날,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햇살을 쬐며 커피를 마시면서 혼자서 또는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게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야외 테이블에 앉는게 별로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한여름에 날씨가 무더운 경우 차양막을 펴서 햇빛을 어느 정도 가려주기도 한다. 어떤 카페는 위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흩날리게 해서 온도를 낮추기도 한다. 드문 일이지만 비나 눈이 많이 오는 경우에도 차양막을 편다.
겨울에는 야외 테이블에도 천장에 히터가 있어서 밖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가격
파리의 카페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나와 함께 공부했던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파리에 있는 카페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참 많으신거 같아"
생각해보면 그렇다.
한국에서는 보통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가시는 곳이 맥도날드였던 것 같다.
값싼 커피 한 잔 시키고서 여름의 더위나 겨울의 추위를 피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카페에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보이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카페는 스타벅스가 아니다. 파리의 스타벅스는 다른 카페에 비해 많이 비싼 편이다.)
한 예로, 파리의 중심가에 있는 한 카페 메뉴판을 찍어봤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아메리카노(caé allongé)가 테이블에서 먹으면 2.8유로, 그러니까 대략 3000원대 초중반이 된다. 게다가 테이블이 아닌 바(bar)에서 먹으면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진다.
사실 한국의 커피가격이 심하게 비싼건 이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오슬로에 잠깐 살았을 때 노르웨이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물가로 악명이 높지만 한 가지 가격만큼은 한국과 비슷해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 바로 커피였다. 2012년 기준으로 커피 한 잔에 6000-7000원 정도, 심지어 그것보다 더 비싸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국에서 나이드신 분들이 맥도날드를 더 자주 가시는 이유 중 하나는 가격이 아닐까 한다. 한국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려하면 어떤 때는 밥값보다 더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제활동을 했던 나조차도 식당에 가는 것보다 카페에 가는게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달리 파리에서는 식당에서 먹는 점심, 저녁과 비교했을 때 커피 가격은 30% 이하이다. 그러다보니 나이드신 분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 맥도날드가 아닌 카페가 아닌까 싶었다.
커피 문화
나는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원두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한국에 있을때만 해도 보통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 정도만 시켰지 다른 것들은 별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커피만은 딱 한 번 먹고서 다시는 먹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바로 에스프레소이다.
중학교 때 친구와 처음 카페에 갔을 때, 처음 카페에 온걸 티내고 싶지 않아서 마치 카페에 와봤다는 듯 행동했다. 친구는 이미 와봤기에 어떤 커피를 먹을지 무난히 정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커피가 꽤 비싸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가장 싼 커피, 그러니까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그러자 내 친구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너 정말 에스프레소 먹어?"라 물었고, 난 "응, 나 에스프레소 좋아해"라고 태연히 말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을 때 나는 적지 않이 실망했다. 너무도 작은 컵에 커피가 담겨져 있었던 것이다. 양이 너무 적어서 한 번에 마셨는데, 정말이지 너무도 썼다. 하지만 이미 카페에 와봤다는 척을 했고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고까지 말한 상황에서 차마 티를 내진 못했다.
이렇게 단 한 번 마시고서 절대로 마시지 않았던 에스프레소를 여기 파리에서는 참 많이 마신다.
보통 카페에 가서 커피(café) 한 잔 달라고 하면 보통 에스프레소를 내온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을 봐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봐도 에스프레소를 꽤 많이 먹는다.
덩달아 나도 에스프레소를 다시 먹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도 강렬한 쓴맛을 싫어하곤 했지만, 이제는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입가심을 하기에도 좋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데도 효과적이다.
커피 문화에 대해 두 가지 또 다른 특징들이 있다.
하나는 어떤 커피를 시키든 보통 물, 조그마한 비스킷이나 초콜릿을 내오는 카페가 많다.
에스프레소의 쓴맛에 적응하기 힘들었을 때, 프랑스 친구가 "초콜릿을 입에 넣고 커피를 마셔봐"라고 했다.
그 달콤쌉싸름한 맛에 한동안 푹 빠졌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아이스 커피가 없다는 것이다.
즉, 여기 카페에서는 차가운 커피를 팔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름철만 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곤 나로서는 얼음이 들어간 커피를 더욱 먹고 싶어한다.
이런 커피는 보통 스타벅스에서 판다는 것을 알고서부터는 여름철에 종종 스타벅스를 가곤 한다.
파리, 그리고 카페
누군가 파리생활이 어땠는지 물어보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 중 하나는 카페이다.
화창한 날,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길가를 내다보는 모습.
이 이미지는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