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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치 Aug 30. 2023

제3의 장소:우리에겐 도보 10분 내에 아지트가 필요해

나만의 아지트로 삼는 가게, 당신은 갖고 계십니까?



“마스터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해”



 칵테일을 접하고 언젠가 꼭 해보고 싶지만 왠지 부끄러워서 아직까지 뱉어본 적 없는 말이다. “늘 마시던 거로 부탁해”라는 말을 할 정도면 얼마나 가야 “항상 마시는 나만의 메뉴”가 생기는 걸까? 순수하게 생긴 생긴 질문에 제3의 공간 저자 레이 올든버그는 말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는 늘 가는 동네 가게가 있었고 가게 사장님은 물론이고 손님들끼리도 잘 어울리던 제3의 장소가 있었다고.



단골은 적게는 1주일에 1번, 보통 주에 4번 이상을 방문하고 보통 1-2시간 머문다고 한다. 그들이 돈이 많은가?라는 질문에는 결코 아니라고 한다. 가게에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했다. 대신 가게는 인테리어는 신경을 덜 쓰는 대신 고객에게 물 타지 않은 맥주 그리고 동네 커뮤니티 역할을 다한다. 미국에서 교외로 이전시키는 도시계획이 진행되기 전에는 태번에 항상 사람이 많았고, 대공황 시대인 1920년대에는 재즈바에는 어떻게 사람이 많았을까? 이러한 궁금증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도대체 제3의 장소가 뭐길래.


저자인 레이 올든버그는 제1의 장소인 집, 제2의 장소인 일터 외에 우리가 기존의 커뮤니티에서 받고 있던 책임감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떤 의미로는 현대 사회의 사이드 프로젝트나, 취미 생활이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지금의 사이드 프로젝트와 취미 배우기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이 그 안에서 점주, 나아가서는 단골과 새로운 손님, 고객들이 서로가 가볍게 교류를 할 수 있냐는 점이다. 앞서 말한 사이드 프로젝트와 취미 배우기는 ‘나의 스펙을 만들고’, ‘내가 원하는 서비스를 받기’ 같은 생산성이 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목적으로 한다.



말 그대로 3달 정도 가게 방문을 안 했다가 방문하면 가게 사장님은 물론이고 가게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도 “오랜만에 오네요! 어서 와요” 하고 반겨주는 그런 곳인 것이다.



망원 아퀴노, 햄치즈 플레이트


도쿄 신바시 문샤인
도쿄 신바시 문샤인 / 토가우치, 다테, 아카시 우메슈 캐스크


 제3의 장소를 읽으면서 좋아하는 바가 두 곳이 생각났다. 1달에 1번은 꼭 가려고 하는 망원에 위치한 싱글몰트 위스키 전문 바 아퀴노, 도쿄 출장 1주일 동안 격일로 2번이나 들렀던 싱글몰트 바 문샤인이 이었다. 다른 바 들과 차이점을 생각해 본다. 이 두 곳에선 사장님과 나, 가게 손님들과 나, 이 두 가지 상호 작용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두 바에 모두 혼자서 갔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왠지 아쉬웠던 날이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시고 싶던 날 밤이었다. 두 곳 모두 짙은 밤색 나무로 인테리어 되어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물수건으로 사장님들이 나의 방문을 반겨 주셨다. 처음 가본 바에서 추천을 받고 새로운 술을 알아가며 술에 대한 이야기를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바 석에 앉은 분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던 가볍고 편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별한 통성명 없이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위스키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술을 통해서 내가 그 바의 일원이 되었던 신비로운 경험을 했던 시간이었다. 마치 ‘마스터 항상 먹던 거로 한 잔 부탁해’라고 말하는 단골이 된 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두 곳 모두 코로나 팬데믹 시기라는 어려운 시기를 견뎌 주었음에 큰 고마움을 느낀다.


그 이유는 나는 단순히 아퀴노나 문샤인이 ‘위스키 만을 마시는 곳’ 이 아니라 공간의 일원이 되면서 사람들과, 공간과 연결된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혼자서 술 마시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평소에 어울리던 사람들과는 하지 않는 이야기가 고립감을 해소해 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혼술도 나 자신의 혼자만의 시간에 몰두하는 맛이 있지만, 단골 가게에서 놀던 시간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며, 내가 확장되는 느낌이기도 했던 것 같다. 혼자였다면 고립감을 느꼈겠지만 두 바에서는 즐거움과 연결감을 느꼈다.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라고 할까.



제3의 장소에서는 태번 이외에도 영국의 펍, 독일의 비어가르텐, 프랑스의 비스트로를 예시로 든다. 손님이 가게의 일원이 되었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대항해시대 2에서 인심 좋은 주인, 술집을 겸한 숙박업소 태번에서 선원을 구하는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항해시대 주인공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태번에 갔었던 것처럼 나도 좋아하는 바에 지금 보다 더 자주 가고 싶다. 나는 위스키를 좋아하니까 바에서 많은 종류를 마셔보고 싶다. 하지만 위스키를 마시겠다는 서비스를 즐기겠다는 마음 속에는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나의 진심인 것 같다. 집 앞에 있었으면 더 자주 들러서 일상을 더 보내러 갔을 텐데. 나의 집 근처에도 나 만의 제3의 장소를 만들 만한 곳이 있을까? 지도 앱을 켜서 위스키 바가 있는지 찾아봤다. 걸어서 30분 정도 가면 위스키 바가 하나 나온다. 하지만 발걸음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는다. 평소에 가던 바가 아니기 때문에 생경한 낯선 분위기 일 것이라고 괜히 겁을 먹은 것에 분명하다. 대개 이런 건 한 번이 어렵다. 한번 가보면 별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사실 직접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 장소의 일원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인지, 그냥 술만 마시고 와야 하는 곳인지.


제3의 장소에서는 새로 가게에 온 손님이 느끼는 분위기는 호스트 역할을 하는 사장이 중요 하지만, 새로운 사람이 가게에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단골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연결자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바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자가 과연 적당한 선을 지킬까? 아니 그전에 생판 모르는 남에게 예의를 지켜가며 가볍게 말을 걸고 가볍게 교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만약에라도 그렇게나 가게에 자주 가는 단골이 있고 새로운 손님까지 가게의 일원으로 맞아 준다면 가게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새로 온 고객을 맞이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우리가 사는 근처의 가게들은 동네 사람들이 고객이 되고, 동네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가게를 키워 나간다는 점에서 이전에도 팬덤마케팅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명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없었을 뿐.


망원 아퀴노 / 독립병입 CS 5년산 제품이었는데 이름을 까먹음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혼자서 바에 가는 분이 계실까 궁금하다. 혼술이라는 개념이 이미 단단하게 자리 잡은 시점에서 너무 새삼스러운 질문인가? 아니야, 그래도 나는 집에서 마시는 혼술 말고 집 근처의 편안한 바를 나의 아지트로 삼고 싶다. 마음은 있었지만 지도앱으로 집 근처에 바가 있어도 쉽사리 발걸음은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새로운 공간과 연결감을 느끼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이다. 4차 산업 시대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 연결되는 초연결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을 모르고 눈팅하는 걸 편해하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타인에 대한 위험도가 높아진 사회이고 사회적 신뢰도가 깨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왕 발전한 디지털 기술을 잘 활용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디지털 기기, 디지털 서비스가 이러한 동네 바, 동네 가게들과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그들의 단골을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근처와 연결되는 경험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처음 방문해 보는 경험’을 제공하고 단골을 찾는 가게에는 ‘나의 단골이 되어줄 사람들에게 처음 구매해 보는 경험’을 통해서 고객과 우리 동네 가게가 함께 상생하는 그런 관계. 인스타에서 멋들어진 가고 가게에 가서 특별한 경험을 하는 것 이상으로 나의 일상을 다채롭게 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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