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온 미래> AI가 바꾸는 건 미래일까, 나일까

<먼저 온 미래>를 읽고

by 장샛별

책을 처음 펼쳐보기 전에는 그간 인상적인 소설을 많이 발표했던 장강명 작가이기에, 허구로 그려낸 AI 이후의 세계의 이야기를 상상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책은 르포르타주였다. 제목 그대로 AI가 가장 먼저 상륙한, 아니 단순히 상륙이 아니라 점령을 목적으로 침탈한 땅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연다.


지금의 세대에게 AI가 준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한 사건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이 아닐까. 인류 모두에게 패배감을 줄 만큼 강렬하던 그즈음의 일들은 까마득하고 어렴풋하게 기억이 난다. 장강명 작가는 이세돌 9단을 포함한 많은 프로 기사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듣고, 그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엮었다. AI가 바둑의 세계에 온 것을 비극이자 이 세계의 종말로 느끼는 기사도, 반대로 재미없었던 바둑에서 다시 재미를 느낀 계기로 느낀 기사도 있는데 그 파편화된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듣는 재미가 있다.




AI가 가장 먼저 선택했기에 (물론 그 선택은 알파고를 개발한 인간들이 했지만) 바둑계의 사람들은 피치 못하게 먼저 온 미래를 경험하고 말았다. 바둑 기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개발된 알파고가 충격을 가한 것처럼 어딘가에서 소설가들이 모르는 사이 소설 쓰는 인공지능이 등장할지 모른다는 예상은 합리적인 전망의 영역으로 보여 두렵다. 어쩌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거나, 또는 최소한 가짜 저자를 내세운 채 성공적인 작품을 수차례 발표한 이후에 그 작가가 AI였다는 것을 밝힐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 이후 10년, 이제는 소설 창작만큼은 AI가 인간만큼 해내기 불가능할 거라는 믿음을 갖기가 좀처럼 어렵지 않은가.


'인간의 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라는 반론에 작가는 냉정하게, 바로 그 말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프로기사들이 했던 말이라고 언급한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회고한 당시의 충격은 '다음 날 중계가 있음에도 매일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또는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공황 상태를 느낄' 정도로 심각했다. 고도의 지능을 가진 외계 문명이 지구에 상륙한다면 당시 바둑세계가 느낀 충격과 비교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이 만든 것이라는 점 때문에 외계 문명보다 당시 AI에 대한 충격이 더 컸을 수 있다고 느낀다.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많은 기계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대표적 기계장치인 자동차와 비교하며 AI가 그간의 기계와 다른 점을 지적한다. 자동차가 사람이 달리는 방식을 바꾸진 않았으며, 사람이 자동차에게 달리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 반대로 말해 AI는 기존의 다른 기계와 달리, 인간의 방식을 바꾸고 있고 인간이 AI에게 배우고 있다. 최소한 바둑에서는 이미 그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것이 바둑계에만 먼저 온 미래라면 우리는 조만간 각자의 영역에서 AI가 우리의 방식을 바꾸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알파고는 몇 차례의 진화를 거듭한 버전을 선보인 이후 바둑계를 떠났다. 물론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긴 인간으로 남게 된 이세돌 9단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에 대해 그는 예술이자 두 기사가 만드는 작품으로 여기고 배웠던 바둑이 게임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알파고 이전에는 판세를 해석하기 어려웠던 바둑은 이제 실시간으로 승률을 알 수 있고, 매 수를 둘 때마다 확률이 업데이트된다. 문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질까 질문하며 저자가 예시로 든 '안나 카레니나가 오만과 편견보다 4.7% 문학성이 높다는 주장'은 아찔하다. 독자에서 완성되는 문학 작품의 영역이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이제 바둑 기사들의 실력은 얼마나 인공지능처럼 두는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AI 일치율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AI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AI에 가까워진 인간이 더 뛰어난 인간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계산할 수 없었던 숫자와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 마냥 두렵고 지양해야 할 일일까. 야구 중계에서 이제는 매 순간마다 (바둑으로 따진다면 하나의 포석마다) 업데이트되는 승리 확률과, 그 확률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뒤집은 순간을 모은 영상을 떠올려 본다. 그것이 야구에 대한 재미를 전달하는데 기존 인간들이 해왔던 어떤 노력보다 직관적이지 않았던가.


바둑에 먼저 찾아온 미래를 살펴보면, 그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AI의 영향은 동일하지 않았다. 그동안 인간이 만들어 온 모든 기술들이 시장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과 닮았다. 바둑에서도 최고 수준의 기사들은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았다. 하지만 스타 기사가 아닌 기사들에게는 생계의 위협이 되었다. AI보다 부족한 인간 기사의 지도를 받을 이유가 없어졌다. 1930년에 케인스는 노동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들에게 훨씬 적게 일하고 고상하게 여가를 즐기는 삶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그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며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되는 삶을 예측했다. 하지만 그런 미래를 맞이한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그는 조금 맞았고, 동시에 아주 크게 틀렸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의 기술 발전이 그랬던 것처럼 이 물결에 개인이 저항하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이득을, 최소한 적은 피해를 가져다줄 것이니 모두가 동시에 NO를 외칠 수도 없다. 다가오는 미래에 나의 일에 AI는 어떤 변화를 만들게 될까. 그리고 그 미래가 현실이 되기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할까. 이 책을 통해서 AI라는 미래를 향한 고민을 이어가기 전에, 과거를 먼저 바라보고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 어느 시점에는 분명 먼 미래였기 때문이다. 장밋빛 미래를 보여줄 것 같았던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얼마나 더 행복해졌을까. 그리고 AI 시대 이후의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그 삶을 바꾸는 주체는 AI일까, 아니 AI여도 되는 걸까.


AI는 기술에 불과하며, 그것을 어떻게 써서 활용하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는지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은 과연 타당할까. 책의 마지막에 서서 장강명 작가는 우리에게 고민할 거리들을 던진다.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려보며, 기술이 늘 인간의 세계를 진보시켜 왔다는 뿌리 깊은 믿음에 의문을 품어본다.

image.png <먼저 온 미래> 중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원자폭탄을 개발한 과학자들이 정작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는 정치인과 군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는 지적이 무겁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건 이미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를 함께 만드는 것이 아닐까. 자동차가 단지 마차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물건을 생산하는 방식과 속도는 물론 도로와 도시, 살아가는 방식 (출퇴근에 시달리는 것이 자동차 때문에 다가온 고통이라니, 왜 그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까)까지 바꿨다는 걸 생각해 보면 AI가 바꿀 우리의 미래가 행복하고 평온해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 전 오랜만에 찾은 대형서점에서 나는 온라인 세계를 여행할 때 내내 나를 따라다니는 리타겟팅 광고를 현실에서 보는 느낌이었다. 입구부터 온갖 곳에 'AI'가 제목에 들어있는 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마치 AI 테마의 서점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AI 시대에 어떤 인간이 성공할 수 있으며,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하고, 어떻게 AI를 활용해야 뒤처지지 않는지를 조언하는 책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바둑 세계에 먼저 열렸던 미래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일상이 되면서 우리의 현실에도 발을 걸쳤다.


많은 부분이 편해졌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 귀찮고 시간이 필요했던 일들에 종종 나를 조금은 알게 된 에이전트를 이용한다. 하지만 마이클 이스터가 <편안함의 습격>에서 경고한 것들, 편안함이 우리에게서 뺏어가는 것들이 다가온 미래의 장을 덮으면서 떠올랐다. AI가 나의 일을 뺏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내 일을 단조롭게 만들거나, 내가 시간을 쓰는 일의 가치를 바꾸거나, 내가 해야 하는 행동과 생각의 방식을 바꿀 수는 있다. 내 일을 가치 없게 느껴지게 해서 하기 싫게 만드는 일은 '일을 뺏는 것인가, 아닌가'.


AI가 어떻게 말하는지, 내가 어떻게 하기를 추천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말하고 싶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더 많은 시간을 학습에 보내야 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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