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 끊었습니다

좋아했던 만큼 참 길었던, 세 번째 퇴사

by 장샛별



과거의 내가 쓴 문장을 찾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아주 낯선 곳으로 떠나는 탐험이라기에는 너무 익숙하지만 뻔하지 않을 만큼은 새롭다. 오랜만에 동네의 뒷골목으로 나서는 짧은 산책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 발견한 나의 문장은 쓰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성 짓지 못한 글의 아주 작은 조각이다. 오래 전의 내가 적어둔 이 메모가 지난 시간들을 되살려놓는다.


memo.png 브런치의 저장글에서 발견한 글 조각


2020년 7월 초는 내가 다녔던 세 번째 회사에 입사한 지 딱 한 달이 지난 뒤다. 메모장을 가득 채운 다른 문장들과 다르게 브런치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완결된 글을 생각하고 쓴 첫 문장이라는 뜻이다. 이 문장을 몇 년이나 방치해 두었다가, 2023년 하반기에 오래 지나 바스락거리는 흔적을 발견했었다. 이 한 줄 외에는 아무 문장도 단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았지만, 내가 2020년의 여름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할 때쯤 매일의 출근이 괴로웠는데 새로운 곳에서는 제발 가벼운 마음으로 회사에 들어서고 싶다는 마음이었고 실제로 그 바람은 이뤄졌다, 꽤 오랫동안.


다만 빛바랜 그 문장을 발견한 날의 나로서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때 기분은 한동안 참 많이 사랑했던 연인과의 사진을 다가올 이별을 예감하는 시기에 우연히 발견한 것 같았다. 단지 그 문장은 나에게 '이렇게 좋을 때가 있었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던 날들이 있었구나' 같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변했는지, 회사가 변했는지, 그냥 그렇게 식어버릴 시기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채로, 애정이 넘쳤던 관계를 실망과 냉정한 판단이 대신 채워가던 시기였다.




월요병이 사라진 회사


나의 세 번째 회사는 여러모로 내게 특별했다. 회사를 만나는 과정부터 첫눈에 반해 시작하는 연애처럼 우당탕탕 빠르더니, 첫날은 물론 첫 주, 첫 달, 1년 등 모든 기간의 단위를 기념일처럼 헤아릴 만큼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오죽하면 '회사에 취해있다'는 핀잔을 주위에서 듣고, 회사 장점은 그만 됐으니 단점을 말해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을까. 회사와의 관계가 연애와 꽤 닮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곳에서였다. 입사를 앞둔 시점부터 한참 회사의 매력에 빠져있을 때까지 브런치에서 종종 회사 이야기를 했다. 이제는 헤어진 연인과의 과거 이야기 같아서 나에게는 좀처럼 들춰보기 어려운 일기장 같지만 그 글들은 브런치북 <내일, 내 일>에 담겨있다.



2020년 여름의 내가 쓴 문장이 알려주듯, 나의 전 회사(앞으로 X회사로 하자)는 한 달 만에 월요병을 없애준 신기한 곳이었다. 허니문 기간이라 그럴 수 있다던 친구의 말에 좀 더 오래 지내보고 단언하기로 했는데 2년이 넘어서도록 재발하지 않았다. 직무에 만족하고, 업무에서 즐거움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회사원에게 월요일은 고통스러운 것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나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전까지의 조직에서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이나 시스템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딱히 월요일이 괴롭지 않았다. 물론 주말에 쉬는 것도, 휴가도 좋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월요일이 고통스러워 일요일 오후부터 괴롭거나, 일요일에 잠 못 이루는 일은 없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월요병'은 직장인에게 당연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싫어해도 어김없이 돌아올 월요일을 병으로 빗대어 부른다면 주말의 소중한 시간까지 시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반, 월요병 없는 회사라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 반. 아직 X회사와 행복한 시절이었던 2023년 중반까지는 "월요병이라는 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종종 하곤 했다.



헤어짐을 예감하는 순간은 도둑처럼


애정과 쓴소리는 비례하는 것이 맞을까. 최소한 내 경우에는 그렇다고 믿는다. 오래 볼 사이도 아니고, 어떻게 하든 내 삶과 그렇게 상관없겠다 싶은 (또는 상관없고 싶은) 사람에게 잔소리를 할 만큼 부지런한 인물도 아니다. 듣기 싫을 수 있는 말을 구태여 꺼낸다는 건 최소한 나에게는 그 상대를 좋아한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그건 사람도, 조직도,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돌아보면 연인과의 사이에서도 그랬다. 시기의 길고 짧음은 있지만 머지않아 헤어지겠다고 예감했거나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한 상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가 없다. 미소 지으며 넘어가는 것이 훨씬 편한 일이니까.


내 월요병을 없애버렸던 나의 X회사를 나는 참 많이 좋아했다. 연애 소설 같은 대사지만 정말로 그랬다. 근데 나뿐만 아니라 X회사의 참 많은 구성원들이 X를 좋아했다. 애정의 표현은 다들 다르기에 나처럼 쓴소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믿음과 응원으로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참 많은 사랑을 받았던 흔치 않은 회사였다. 그리고 그랬던 만큼 2023년 하반기에 불시에 진행한 희망퇴직에 얼떨떨한 마음이 컸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는 기쁨을 나에게 준 곳인 만큼 그 행복의 일부를 갑자기 잃어버려야만 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잔류를 선택한 이후에는 말을 조금 잃었다.


앞서 소개한 빛바랜 사진 같은 문장을 발견한 것도 그 시기였다. 원래 쓰려고 했었던 것은 물론, 그 어떤 말도 글로 엮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희망퇴직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회사의 일들이 있었고, 또 구성원들을 잘 다독이며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리더의 역할도 있으니 솔직한 마음을 공공연히 털어놓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원래 대부분의 글은 힘들고 괴롭고 시기에 쓰인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때에 내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냥 참 많이 좋아해서, 그래서 침묵으로만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나의 X회사를 입사할 때 내가 예상한 근속 기간은 2년이었다. 새 회사에서 경험하고 성장하고 싶은 것들을 미리 계획했고, 그 정도의 기간이면 충분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3년이 넘어가도록 떠나야 할 때를 고민하지 않았다. 아직 성장의 기회가 있었고, 어디서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좋은 동료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회사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좋았기에 큰 위험을 부담하며 새로운 출발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도둑처럼 찾아온 동료들과의 헤어짐은, 나에게 X회사를 떠나는 시기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그즈음에 술자리도 참 많았고, 지겹지도 않으며 떨어지지도 않는 안주도 늘 함께 있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길고 긴 헤어짐


상황만 보자면 마치 그 이후 곧 X회사와의 이별을 택했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았다. 2023년 가을을 어수선하게 보낸 이후, 2024년에는 새롭게 맡은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렀다. 예전처럼 앞으로의 행복한 나날들을 마냥 그릴 수는 없었고, '우린 헤어질 사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지금 당장의 결심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권태기가 온 커플 같았달까.


물론 월요일이 괴로운 날들이 다시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회사가 구성원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보여주는 증표로 여겼던 재택근무는 '비상경영'이라는 이유로 절반으로 줄었다. 집에서 일하면 해결되지 않는 비상 상황이 사무실에 나오면 잘 해결되는 것인지, 어떤 인과관계와 가설을 가지고 하는 일인지 물음표가 끝내 가시지 않았던 변화였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은 '회사상황'이라는 네 음절의 단어로 납득되어야만 했다. 연인 사이라면 '이런 나라서 미안해'라는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한마디가 이런 것인가 싶은 일들이 많았다.

나는 할 말은 해야 하는 사람이라 참 많이 말했지만, 반대로 할 말이 없어지는 상황도 많았다. 대화는 물론 메아리도 울리지 않을 곳에서는 소리를 내는 것보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훨씬 편했다. 돌발성 난청과 함께 생긴 이명과 어지럼증에 많은 걸 내려놓았던 시기도 많았다. 평소 잘 아프지도 않았던 내가 1년 내내 각종 병원에서 치료를 받느라 약이 끊길 일이 없던 것도 모두 그 힘든 한 해, 2024년의 일이었다. 몸도 마음도 어느 때보다 건강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좀 더 치열하게 싸웠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었을까.


내가 회사를 떠난 것은 2025년 3월이었다. 지독하게 좋아한 만큼 치열하게 많이 싸우는 애증의 커플처럼, 헤어지는 것조차 꽤 오래 걸렸다. 실제로 퇴직 면담을 하고 회사를 떠난 날짜는 순식간에 정해졌지만, 내 마음이 떠난 진짜 퇴사는 길고 길었던 셈이다.




월요일을 가장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매일 하나의 질문을 올리는 나의 인스타그램 계정 @starishpress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일을 질문한 적이 있다. 내 답을 생각해 보니, 회사를 다닐 때에는 목요일이었다. 금요일만 근무하면 주말이 생기는 날이고, 부담 없는 금요일 저녁부터를 주말이라고 본다면 평일과 주말을 나누는 가장 큰 경계였으니까. 즉 시작을 앞두고 있는 날인 것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은 월요일이 가장 좋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 어떤 다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가 가장 높은 날, 주말에 다소 흐트러질 수 있는 루틴을 다시 바로잡는 날.


꼭 회사를 다니지 않아야만 월요일을 좋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많은 회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돌아오는,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1년을 사는 동안 50번이 넘도록 만날 월요일, 우리가 앞으로 보낼 시간의 1/7이나 되는 그날들을 어떤 이유로든 미워하는 건 너무 슬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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