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새학기 첫날. 3학년 2반 교실 앞문을 열고, 나는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2반, 안녕!”
그런데 문 틈 사이로 보이는 광경.
한 명의 여자아이는 울고 있고 한 명의 남자아이는 씩씩거리고 있다. 그리고 분홍색 가방 한 개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그 안에 있었던 것 같은 갖가지 필통과 알림장, 공책, 책들은 누군가가 집어던진 것 같이 온통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어머, 너희들은 왜 지금 서있니? 너는 왜 울고 있고, 너는 왜 씩씩거리고?”
새학기 첫날, 1교시도 시작하기 전부터 사건발생이라니... 올 한해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빡! 왔다.
“선생님, 얘들이 등교하자마자 싸웠어요. 이예서랑 김민석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맨날 싸워서 선생님한테 혼났어요.”
아이들이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울고있는 여학생은 이예서, 씩씩거리고 있는 남학생은 김민석.
김민석?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2학년 때부터 말썽꾸러기로 유명했던 김민석이란 이름을 들어봤던 것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2월에 명부를 받았을 때는 왜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텐데...
“2반, 일단 아침자습 시간이니까 학급문고 책으로 독서하고 있으세요. 민석이와 예서는 교실 밖으로 잠시 나와서 선생님하고 어떻게 된거지 이야기를 좀 나눠야겠어요. 밖으로 나오세요.”
예서도 울먹이며 천천히 교실 밖으로 나오려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싫어요. 전 할 말 없는데요”
민석이가 싫다고 말하며 밖으로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
‘와. 요놈 보통아닌데? 첫날부터 이렇게 본모습을 보이기가 쉽지않은데, 물건이야, 물건. 오늘 이 기싸움에서 지면 올 한 해가 괴로워지겠다. 정신차려, 최민지.'
"얼른 나오세요. 선생님이 나오라고 했습니다. 10초 주겠습니다. 10...9...8..."
타임어택 작전 발동. 다행히 민석이가 몸을 움직였다.
(역시 남자애들은 숫자 세야 반응함.)
복도에 멀찍이 간격을 두고 선 두 아이에게 묻기로했다.
"예서,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말해주겠니?"
"선생님, 제가 교실에 와서 제 자리에 앉아있었는데요. 김민석이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이예서가 이 반에 있어서 존나 싫다‘고 했어요. 같이 있는게 기분 더럽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하지말라고 했는데요... ’뭐, 닥쳐 시*년아.‘라고 하면서 ’냄새나니까 꺼져.‘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소리지르면서 김민석 등을 때렸어요. 그랬더니 김민석이 제 가방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바닥에 다 집어 던지고요. 가방도 던졌어요."
듣다보니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거 잘못하면 학폭위까지 가는 건데...?
"민석야, 이번에는 네가 상황을 이야기해볼래? 예서가 말한게 맞아?"
"아뇨. 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가방 던진 건 맞아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돌린 채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민석이였다.
"그래?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교실 안에 있는 친구들이 다 지켜봤을 것 같은데. 애들한테 물어봐도 되겠니?"
"네, 물어보든지요."
호오.. 물어보든지 말든지 알아서하라는건가? 삐딱한 말투에 속에서 화가 점점 나고있었다. 감정을 억지로 누르며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민석아. 그런데 ’물어보든지요.‘ 하는 말투는 어른한테 할 수 있는 말투가 아닌 것 같네. 선생님한테 예의를 갖추어서 말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한동안 민석이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아무 대꾸가 없는 민석이였다.
"예서야. 교실안에서 지켜봤던 친구들 중에 2명 정도 이름을 알려줄래? "
"강다은이랑 박서진이요. 걔들이 우리를 말렸어요."
"알겠어."
교실 뒷문을 열자, 조용히 책 읽는 아이들 사이로 후다닥 자리로 뛰어드는 아이들 몇 명. 바르게 앉으라는 무언의 눈빛을 잠시 보낸 뒤 말했다.
"강다은, 박서진 학생 밖으로 나오세요. "
두 아이가 밖으로 쭈뼛쭈뼛 나왔다. 두 아이들도 옆에 세운 뒤 물었다.
"다은아, 서진아. 아까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선생님이 말해볼테니까 맞는지 얘기해볼래? 민석이가 예서한테 '같이 있는게 존나 싫다, 기분더럽다'등의 말을 하면서 욕을 한 게 맞니? "
"네, 엄청 심한 욕도 했었어요."
"그래, 그래서 예서가 민석이를 때렸고?"
"네, 예서가 민석이 등짝을 세게 때리는 거 봤어요. "
"그랬구나. 그리고선 민석이가 예서 가방에 있는 물건이랑 가방 던지고? "
"네. 맞아요. 저희가 하지말라고 말렸는데 소용없었어요."
"친구가 싸울 때 말리는 건 참 잘한 일이네. 알려줘서 고마워. 2명은 교실로 들어가도 될 것 같아."
"네."
다시 민석이와 예서만 남았다.
"민석아, 친구들이 욕을 한게 맞다고 하네.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다."
"..."
"민석이가 욕을 한 게 맞니?"
"......................네... "
"그런데 왜 처음에는 왜 안했다고 했지?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나는 깊은 한숨을 삼켰다.
" 누가 먼저 사과해볼까? 용기 있는 사람이 먼저 사과해보자. "
"선생님, 제가 먼저 사과할게요. 민석아, 내가 너 등 때린 거 미안해. "
"그래, 예서가 민석이에게 사과를 했구나. 민석이도 예서에게 사과해볼까?"
"..."
"민석아, 네가 잘못한 부분은 사과를 해야할 것 같은데?"
"뫈"
...뭐? 미안하다는 말을 속사포처럼 뭉개면서 내뱉는 민석이었다.이런 사과라면 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을 것 같은 사과... 마음 속에서 분노게이지가 차오르지만...
'참자 참자 첫날이다. 성질같아서는 확 소리라도 지르면서 혼내고싶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아동학대로 신고라도 당하려나. 최민지 성질 많이 죽었다. 아오.'
"그래. 일단 서로 사과를 했지만 이 사실을 부모님께는 알려야할 것 같다. 수업 마치면 부모님께 전화로 말씀드릴거야. 그리고 너희들이 방금 있었던 일들과 잘못한 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a4용지에 써서 선생님한테 가져오렴. a4용지는 들어가서 줄게. 교실로 들어가."
두 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냈다. 그리곤 나는 뒤를 돌아 크게 한숨을 쉬었다. 진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아직 1교시도 시작을 안 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내 이름도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못했는데... 나는 아이들의 잘못을 판결해주는 판사인가, 교사인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내려고 했는지의 계획들은 생각나지않고 머리가 멍해졌다. 내 멘탈은 3월 2일 아침자습시간부터 바사삭대고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