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기도 종소리)
3월 2일, 1교시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민석과 예서는 A4용지에 사건을 기록하고 있고 나머지 학생들과 나는 인사를 나누었다.
"2반. 인사가 늦었네. 선생님은 이름은 최민지입니다. 선생님은 예의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학생을 좋아해요. 여러분들이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예의를 꼭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의 규칙들을 잘 지키는 것도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이겠죠.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시다."
아이들은 조용했다. 역시 그래도 첫날이라 긴장하는 모습인지 잘 듣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업이 마치는 종이 치자 아이들은 감옥에서 해방된 죄수들처럼 교실밖으로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 허탈했다.
'내 수업이 그렇게 지루했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3월 한 달간은 재미가 좀 없더라도 진지하게 가는 거야. 그래야 분위기가 잘 잡히지.'
예서가 A4용지를 가지고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다 썼어요."
"그래, 아까 말한 대로 잘 썼구나. 다음부터는~ "
툭-
예서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훅하고 다가오더니 A4용지를 내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고 교실뒷문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민석아! 민석아!"
큰 소리로 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민석이는 내 시야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 요놈....'
종이에 적은 내용을 보니 대략 난감이다.
「이예서가 나를 때려서 내가 가방을 던졌다. 앞으로 안 할 거다. 끝.」
글자크기는 72포인트쯤 되듯이 크고 글자는 하늘로 승천 중... 그것도 그런데 종이를 던져놓고 도망가다니...
'민석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참 쉽지 않네...'
"선생님~ 저 이제 쉬어도 될까요?"
"아, 그래그래. 예서야.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민석이랑은 서로 잘 아는 사이니?"
"네, 같은 유치원도 나왔어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요."
"그렇구나. 민석이가 왜 예서에게 보자마자 욕을 했는지 이유를 알아?"
"아뇨. 잘 모르겠어요. 김민석은 저만 보면 그래요."
"알겠어, 예서야. 이제 편하게 쉬는 시간 보내."
예서를 보내고 화장실을 가고 싶었는데, 칠판을 지우고 다음 수업 활동지를 준비하고 물 한 모금 마셨더니 다시 2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드디어 4교시까지 마치고 점심시간! 오늘은 첫날이라 아이들이 점심만 먹고 하교한다. 점심시간만 잘 버티면 된다.
"2반. 급식소로 이동할 때에는 뛰어서 이동하면 위험합니다. 따라 해볼까요? 계단에서는! 천천히!"
"계단에서는! 천천히!"
"좋습니다. 출발!"
번호순대로 한 줄을 맞추어 급식소로 천천히 걸어간다. 내 학교생활의 가장 큰 낙. 맛있는 점심! 영양사님과 조리사님 음식솜씨가 좋으신지 매일 너무너무 맛있어서 행복하다. 콧노래가 나오려고 하지만 표정은 포커페이스를 유지. 무서운 선생님 표정을 하고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가 급식소 앞에서 멈춰 서서 아이들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한다.
급식소안으로 들어왔더니 저기 먼저 급식지도를 하고 계신 서현우선생님이 보인다.
'와.. 서 선생님. 수트핏 대박이네. 이렇게 멋있었나? 자.. 잠깐? 나 서현우선생님한테 관심 있나? 자꾸 눈길이 가네. 나참.. 5살이나 어린 서 선생님을?'
순간 멍하니 생각에 빠진 나였다. 서현우 선생님이 식판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며 싱긋-하고 웃으며 말했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뭐야 뭐야! 왜 웃는 거지? 서 선생님도 나한테 관심 있나? 근데 서현우 선생님 가만 보니 내 최애 닮은 것 같아. 아이돌그룹 이클립스에 류선재 닮았잖아.'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알아주는 금사빠였다. 혼자 금방 사랑에 빠져서 짝사랑하는 것에 익숙한 나였다. 짝사랑이 좋았다. 혼자서 사랑을 시작하고 아닌 것 같으면 혼자서 마음을 접을 수 있어서 마음이 덜 아프다. 그리고 상상은 즐거운 법이니까. 5살이나 어린 남자가 좋아졌다고 하면 내 친구들이 뭐라고 할까.
"선생님, 바.. 밥 받아도 돼요?"
"어...? 어.. 그래 우리 반 차례네. 얼른 밥 받자!"
차례차례 아이들이 다 급식을 받고 우리 반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한다. 나도 식판에 밥을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메뉴는 3월 첫 급식이라 생일밥메뉴였다. 콩밥에 미역국, 잡채, 불고기 그리고 후식은 떠먹는 요거트. 떠먹는 요거트??? 숟가락으로 밥과 국을 한 번 떠먹을 때마다 반 아이들이 나를 찾아왔다. 요거트 껍질 뜯어달라고... 이제 막 3학년이 된 이 아이들은 사실 아직 2학년이다. 아직 손에 힘이 없어서 요거트 껍질을 잘 뜯지 못한다. 아마 힘이 센 2~3명 빼고는 다 나에게 뜯어달라고 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들이 방문을 한다.
"선생님, 뜯어주세요."
"자 여기 있어~ 다음 학생"
"저도요!"
"자 여기, 다음."
20개의 요거트 껍질을 중간중간 뜯어주다 보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없는 점심시간이 지났다. 떠먹는 요거트는 제발 메뉴로 안 나왔으면 좋겠다. 짜 먹는 요거트도 마찬가지. 그건 더 안 뜯겨서 너무 힘들어... 요거트 지옥이다.
아이들은 하교시키고 오늘 하루 너무 기운이 빠져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띵동!
쪽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학교 교실에 깔린 교육청 메신저. 이 메신저로 학교 안에서는 연락을 주고받는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없어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쪽지만 30개. 3월 첫날이라 제출해야 할 것도, 확인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마지막에 도착한 쪽지를 확인해 보니 학년 부장 선생님이 보내신 쪽지다.
「10분 뒤에 연구실에서 모임을 가졌으면 합니다. 1학기 교육과정에 관해서 의논할 것이 있어서요. 티타임 하면서 이야기 나눠요.」
'오... 힘이 없어서 쉬고 싶은데... 가만가만 회의 가면 서현우 선생님 만날 수 있겠네?'
밥 먹는 게 학교에서의 큰 즐거움이었는데 새로운 낙이 생겨서 그래도 기분이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