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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방식

닥쳐올 기쁨만 바라볼 수 있다면

by 엄민정 새벽소리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개와의 인연이 있다. 사람도 아닌 것을 사람의 방식으로 교육시키고 있지만 이게 맞는지는 늘 고민스럽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사람의 방식뿐이라 우리가 아름다운 동거를 하기 위해서 개는 순종을 당연하게 강요받았다. 밥 주는 의무를 특권인양 들고 선 주인 앞에 달콤한 사료 몇 알과 수많은 명령어를 연결하는 개의 눈동자가 뻑뻑해진다. 나는 개의 방법은 알지 못한다. 개통령도 개가 아니기에 백 프로의 확률로 다 알 수는 없을터. 애초부터 완벽한 소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수백날 반복해도 안 되는 개가 있는가 하면 한두 번 만에 잘 배워내는 총명한 개도 있다. 나의 개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도 흡족하게도 했으니, 우리의 동거는 해볼 만 한 것이었다.


게으른 주인에게 매일 산책은 무리였다. 길에서 달고 온 먼지를 씻기고 청소할 번거로움은 오늘도 내가 산책을 가지 않는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가끔은 데리고 나가기도 했는데, 그건 아마도 내 게으름이 불러온 개에 대한 죄책감이 마지못해 한 것이다. 개의 속도에 맞추면 내 걸음은 조급해했고, 내 걸음에 맞추면 개는 충분히 킁킁거리지 못했다. 전봇대에 남겨진 지린내를 탐구하는 동안 개는 목줄이 자주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 날도 또 어쩌는 통에 목줄이 벗겨질 듯한 대치 상태는 계속된다. 하, 나오기 싫다, 인간은 개를 이해하지 못한다.


개는 항상 나의 귀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는 개가 기다릴 집에 빨리 돌아가지 못해 안달했다. 개는 나를 그리워하고 나는 개를 걱정했다. 낮동안 개가 무엇으로 소일하였을까를 궁금해하던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현관에서 얼어붙었다. 갈가리 찢어진 화장지, 모서리가 달아난 책, 뒤축이 나간 구두.. 개가 나를 기다린 흔적과 몸부림이 잔인했다. 자못 나를 지켜주겠다는 일념이 온종일 빈 집에서 대상을 잃었다. 개는 존재의 목적을 잃고 부득부득 애를 쓰며 자신을 증명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려 했다. 나는 개를 지키려 집에 가두었고 개는 지킬 내가 없어 허망했다. 엇박자는 우리 동거에 항시 필연적이었다.


나는 그 후 어찌어찌 가정을 꾸렸고, 개는 그 일을 알지 못한다. 나름의 이유가 생긴 나와 달리 이유를 추측조차 할 수 없던 개는 그 후 친정집으로, 다시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겨가게 된다. 잘 살겠거니, 하고 접은 마음은 나를 지체 없이 살아가게 했다. 개는 그 후에 나와 몇 차례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보여준 무심한 표정에 나는 무척이나 서운했다. 서운한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개의 표정을 알지 못한다. 냉랭한 눈동자가 나에 대한 분노인지, 기력을 잃은 기억력으로 나를 이미 잊었는지, 새 주인의 대우가 나에 비할 수 없이 극진했던 것인지, 개의 표정을 나는 읽지 못했다.


개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개가 올라탄 기차의 기적소리는 오래 공명했다. 무지개다리로 향하는 개의 마지막 순간에 눈의 흰자위는 슬프도록 하얬다. 털은 희어지다 못해 투명해졌고, 흰 몸뚱이는 흰 천에 쌓여 흰 연기가 되었다. 흰 하늘로 돌아가 흰 구름 뒤로 숨어버린 개를 상상하다 눈시울이 뻐근해지고 말았다. 상실 후의 그리움은 몸서리치게 잔인하다. 사진첩에서 진작에 저편으로 밀려난 사진들을 다시 밀어 올린다. 사진 속 개는 그대로인데 지금에 와서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골몰해진다. 내 속에 버글거리는 거품 같은 것이 끓어오르면 사진 속 얼굴은 한없이 애통해진다.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벌컥거린다.




지난해 밤 산책길에 집까지 따라온 개가 있다. 따라오다 말겠거니, 했지만 딴에는 살금살금 비밀스럽게 따라온 듯하다. 집 마당까지 들어온 개를 두고 고민하다 사료를 준비하고 개집에 폭삭한 이불을 깔았다. 개는 은혜를 갚듯, 식구들의 외출과 귀가를 참견하고, 가까이 오는 눈치라도 보이면 금세 드러누워 하얀 배와 젖꼭지를 맘껏 보였다. 나는 온종일 묶인 개가 측은해 학교 운동장에 데려가 끈을 풀어준다. 한걸음 가면 턱 걸리고 또 한걸음 걸으면 켁 걸리던 목줄이 없어 홀가분한 얼굴이다. 개는 웃었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개는 달릴 때 제일 행복했다.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았지만 집에 돌아가자는 주인의 부름에 곧바로 복종하니 나는 그게 기특해 한 바퀴 더 허락해 준다.


걷는 길에 다른 개를 마주친다. 주인의 손에 끌린 개는 길가의 모든 생물체로부터 주인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감추지 못한다. 순한 양 같던 것이 그 순간 목덜미의 털을 부르르 세우고 용사를 자처한다. 개는 늘 주인보다 한걸음 앞섰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늘 대문 밑으로 코를 내밀고 행인을 위협하며 짖어대는 미운 개들이 산다. 나는 이 앞을 지날 때면 미리 심호흡을 하며 소리에 놀랄 준비를 하곤 한다. 순진한 어린아이를 놀라게 하고 느릿한 어르신의 걸음을 재촉하게 하는 이웃 개는 주인에게는 효자일지 몰라도 행인에게는 더 이상 얄궂을 수가 없다. 욕을 염불처럼 중얼대며 속으로는 이미 여러 번 쥐어박아주었다.


털을 세운 우리 개가 멋지게 맞섰다. 소리로 보나 등치로 보나 한참을 밀리는 우리 개는 이웃집 대문을 사이에 두고 굽히지 않는 단단함을 과시했다. 나는 잡고 있던 개줄을 손에 한 바퀴 감아 힘주어 잡았지만, 격분한 우리 개의 힘에 한 걸음 정도 끌려가기도 했다. 흥분한 우리 개가 발톱을 세워 문틈으로 나온 이웃 개의 코를 노린다는 것을 나는 눈치로 알아챈다. 모른척했지만 통쾌한 한방이 기다려졌다.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한발 늦어버린 걸까. 그 나쁜 주둥이가 우리 개의 발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목줄을 당겨 발을 빼내려 할수록 개의 비명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찌르며 동네에 울려 퍼졌다. 실로 한참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끔찍하게 길었다. 뾰족한 송곳니가 뼈와 혈관 속으로 파고든다. 이 억센 것은 피맛을 보고 전율하며 흔들기까지 한다. 나는 개처럼 소리를 질렀다. 가까스로 빼낸 발에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 개를 안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얼굴이 난로를 켠 듯 달아올랐다. 개가 맞서도록 가만 놓아둔 동행자를 질책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분노는 소용될 방향도 모른 채 이어져갔다.


밤사이 아팠을 개가 걱정되어 이른 새벽 개집 안을 들여다본다. 나오지 말고 좀 들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기어이 걸어 나와 아픈 발을 절뚝인다. 어젯밤 운동장을 활보하며 뛰던 개의 모습이 마지막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하다 못해 찢어질 지경이다.

김훈 작가님의 <개>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들은 언제나 지나간 슬픔을 슬퍼하기보다는 닥쳐오는 기쁨을 기뻐한다. 개가 어제의 일을 이미 잊었다. 오늘 아침, 이유 없이 아픈 발에 갸우뚱하고 있다.


개처럼 살고 싶다. 잊을 건 다 잊어버린 단순한 생이 부럽다. 개는 닥쳐오는 기쁨 앞에서 애면글면할 이유를 찾지 않는다. 선형적이지만 제한적인 '시간'의 한계를 거스를 방법은 애초부터 없다. 되새기고 곱씹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른다. 개는 어제의 비명과 붉은 발을 잊었다. 나는 인간의 방식으로 개에게 기억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개는 개의 방식으로 내게 망각을 가르쳐 주고 있다.


동여맨 하얀 붕대가 끝내 답답했나 보다. 풀어헤친 빨간 발에 가슴속이 소금기로 찌르르하다. 누워있는 빨간 발을 바라보다 조용히 일어나려는 차에 개의 귀가 쫑긋해진다. 들어가 쉬라는데도 꼭 마중을 나와 꼬리를 흔드는 통에 저리던 가슴은 장아찌가 될 판이다. 개가 또 웃고 있다. 속없는 놈은 아파도 웃고 있다. 그 얼굴은 평소와 같지만 나는 다시 벌컥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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