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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stlecake Jan 20. 2019

파란만장 달랏

여긴 원래 이렇게 추운 곳이니?

 남쪽의 따듯한 바닷가 마을 무이네에 있다가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아기자기한 고산 도시 달랏으로 간다.

호찌민 - 무이네와 비슷한 5시간 거리지만 이번엔 미니버스다. 출발한 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어떤 주유소에 잠시 섰다. 몇몇 사람들이 화장실을 가길래 나도 따라나섰다가 볼일을 보고 나오니 썰렁한 주유소 앞....
 버스는 내 배낭과 등산화만 싣고 (나는 샌들에 돈과 여권이 든 작은 가방 차림으로 화장실에 갔다), 나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맙소사... 내 옆자리엔 분명 어떤 베트남 남자가 타고 있었는데. 아무도 나의 부재를 알려주지 않았단 말인가... 망연자실. 혼자 하는 여행의 설움을 느낄 새도 없이 어찌어찌 주유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로컬 사람들은 버스 회사에 전화를 하겠다는 둥 매우 호의적이었지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통화가 제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나더러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베트남 유심을 사지 않은 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 하지만 내가 주유소 (추후에 정황으로 미뤄보건대, 공식적으로 멈추는 휴게소가 아니었고, 단지 연료를 채우기 위해  잠시 거기 멈춘 거였다. 2시간 지나서 어떤 휴게소에서 쉬어 가더라) 벤치에 앉아 맘 졸이며 기다리는 1분 1초 동안에도 버스는 쉬지 않고 달랏으로 가고 있다. 나에게서 멀리 더 멀리...




 그 생각을 하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 도움을 너무나 주고 싶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르는 로컬들을 믿고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직 한국 모바일 서비스를 중단하기 전이라 숙소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버스를 내가 묵었던 무이네 숙소에서 예약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영어를 잘하는 외국인 스탭이 리셉션에 있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화를 끊고 10분쯤 기다렸을 때 나를 버리고 떠난 버스는,  되 돌 아 왔 다. 승객들을 싣고, 내 배낭과 등산화를 싣고, 옆자리 승객이 타지 않았다는 중요한 소식을 알리지 않은 괘씸한 베트남 남자를 싣고, 승객이 다 탔는지 확인도 안 한 무책임한 운전기사는 달랏으로 가던 길에 유턴을 해서 아까 그 주유소로 다시 돌아와 주었다!  이 어처구니없고 아찔한 상황이 너무 화가 났지만, 어쨌거나 나를 태우러 되돌아온 수고를 감내한 운전기사와 다른 승객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 


"I am so sorry~~"

를 우렁차게 외치며 올라탔다. 


"그러게 널 놓고 가지 못하게 멀리 가지 말았어야지~." 

다른 여행자들의 웃음과 농담을 뒤로하고 그 베트남 남자를 (차마 째려보진 못하고) 빤-히 쳐다보면서 자리에 앉았다.



안녕, 무이네~


달랏 가는 길에 들른 진짜 휴게소








 우여곡절 끝에 달랏에 도착했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기가 느껴졌다. 스웨터와 긴 바지를 주섬주섬 꺼내 입고 예약한 숙소 없이 일단 무작정 걸었다. 여기저기 빵빵거리는 차들에, 낯설고 삭막하게만 느껴졌다. 겨우 찾은 호스텔에 일단 짐을 풀었는데, 어디 갈지 뭘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무계획으로 왔다)  너무 추운 나머지 내일 다시 무이네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미니버스가 내려준 곳은 터미널이 아니어서, 무이네 가는 버스를 어디서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허기부터 채우자!  

따뜻한 국수를 먹을만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또 걸었다. 딱히 맘에 드는 식당이 없어 한참을 걷다가 해가 지고 한참 후에 로컬 손님들로 북적이는 어느 노상 국숫집에 앉았다. 다행히 메뉴가 하나밖에 없어서 베트남어를 몰라도 주문하기 편했다.




 뜨뜻한 국물을 마시니 좀 살 것 같다. 국수를 다 먹고 일어나 어디선가 들리는 기타소리를 따라 갔다. 식당 옆옆에 손님 없는 작은 카페(들어가기 전까진 까페인지도 몰랐다)에서 누군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싶었지만 없다고 했다.


"Tea?"

"Yes, please."


차를 마시겠냐 묻더니, 보온병 하나를 통째로 내어 준다. 그리고 차는 공짜라고 한다. 주인인지 직원인지 모를 아저씨 한 분은 기타를, 다른 한 분은 베트남 노래를 한다. 따뜻한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한참 동안 듣고 앉아 있었다.



문득, 내일도 달랏에 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미토리지만 벽으로 분리돼 있고, 더블 사이즈 매트리스가 있는 이 호스텔을 고심 끝에 골랐는데, 오늘 이 도미토리에 묵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평소 같으면 쾌재를 불렀겠지만, 이런 춥고 우울한 날씨에 온기가 없는 도미토리에 덩그러니 혼자 있자니 좀 쓸쓸했다. 밤새 휘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들었다. 두 명이 자도 충분한 그 넓디넓은 매트리스에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웅크려 새우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맞이한 아침-

이불 밖으로 나와 주섬주섬 옷을 한 겹 더 껴 입고 (어젯밤에 다 입고 잘 걸) 나가서 조식을 먹을 수 있냐 물어봤다.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호스텔 보이는 라면과 바게트 중 고르란다. 몸에 한기가 돌아 라면을 골랐다.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파도 송송 썰어 넣고, 달걀 프라이도 얹은, 제법 성의 있는 라면이다. 뭣보다 뜨끈한 국물 맛!


 


어젯밤 추웠던 잠자리를 보상받는 마음으로 베트남 MSG를 호로록- 하며 호스텔 보이에게 물었다.


"여기 너~~~ 무 춥다. 달랏은 매일 이렇게 춥니?"


"응. 여긴 매일 추워."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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