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나를 낳고 키우면서 비로소 아빠라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보다 조금 더 젊은 나이에, 부모님은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찾았다. 그때의 두 분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지금의 나보단 훨씬 지혜로우셔서 결혼이란 게 단순히 연애의 연장선상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고, 서로의 특별함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오셨다. 결혼 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현실과 상대방의 모습이 늘상 아름답지만은 않았겠지만 적절히 포용하고 이따금씩 싸우며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셨으리라. 그리고 나와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는 '부부'에서 '부모'로 포지션을 바꾸어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을 선물해주는 것에 몰두하셨다. 결혼과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우리 남매의 유난히 낭만적인 태도는 아마도 두 분의 영향 덕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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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혼은 말 그대로 현실이어서,부단한 사랑과 견고한 신뢰로도 극복하기 힘든 지점은 존재한다. 두 분에게 그것은 '온도'에 관한 체질적인 문제였다. 살면서 그래도 적지 않은 시련을 함께 해왔을 텐데 고작 더위와 추위로 투닥거릴 일은 아니지 않나 싶지만, 당사자들에겐 꽤나 심각했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 엄마는 추위에 민감한 아빠가 엄살쟁이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보일러를 사수했다. 반면 아빠는 엄마 몰래 난방 버튼을 누르며 자신이 열녀(熱女)와 결혼했음을 뼈저리게 직감했을 테고.
그런 '열 과민증' 엄마와 '추위 민감증' 아빠 사이에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나와 동생은 점점 자라면서 각자의 기질이 뚜렷해졌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아빠 쪽을 그리고 동생은 엄마 쪽을 더 닮은 듯했다. 그래서 한겨울이면 켜켜이 껴입고 담요와 이불을 둘둘 뒤집어쓴 부녀와, 반팔 차림으로 이불을 훌러덩 걷어내기 바쁜 모자의 모습을 한집에서 동시에 관찰할 수 있었다. 아빠를 똑 닮아 추위에 사족을 못쓰는 나를 보며 엄마는 남편이라는 사람이 조금씩 이해되는 기분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연애시절의 엄마아빤 결혼 후의 현실이 이와 같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헌데 사실 범상치 않은 광경이 어디 이것뿐이었던가.
마술적 사실주의에 빠진 결혼
아침형 인간인 아빠와 올빼미족 엄마는 매일 밤마다 빨리 자자, 좀 있다 잔다- 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특히 아빠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꾸벅꾸벅 졸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엄마의 요상한 고집이었다. 불편하게 졸고 있을 바엔 들어와서 편하게 자면 되지 대체 왜 그러는 거냐며 애정 어린 잔소리를 했다.
엄마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소파에 앉아 졸긴 해도 막상 침대에 누우면 잠이 안 와 뒤척일 텐데, 잠귀 밝은 남편이 자신 때문에 잠이 깰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던 게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몇 번의 옥신각신 끝엔 그래도 꼭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하곤 하셨다. 새벽에 아빠가 습관처럼 잠이 깨어 물을 마시러 갈 때까지 엄만 말똥말똥 뜬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앤드루 와이어스, 결혼(Marriage), 1993
미국의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 1917-2009)가 그려낸 어느 부부의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제목이 <결혼>인 이유를 자꾸만 곱씹게 되는 작품이다. 더 이상 애틋한 눈빛을 나누거나 껴안은 채 잠들지 않는 부부. 그렇지만 이들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들며 함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목석처럼 꼿꼿이정자세로 잠든 이들 옆에 열려 있는 창문으론 새벽녘의 찬 공기만이 상쾌하게 명랑하다. 이제 곧 해가 뜰 것만 같은 미명 가운데 희미한 늦별 하나가 무심한 듯 반짝이고 있다.
결혼 전에 갖기 쉬운 이상적이고 로맨틱한 환상이 아닌, 결혼 후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이 그림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때론 투닥거리고 또 때론 무신경한 듯해도 어찌 됐든 결국은 한 이불 덮고 잠들고야 마는 게 부부의 세계인 걸까. 서로 마주 보고 웃거나 무언가 함께하는 장면이 아닌, 무덤덤하게 각자의 꿈속에 빠진 그림 속 중년 남녀의 모습은 다소 단조롭고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을 둘러싼 침묵의 공기에는, 오랜 시간 서로를 알고 의지하며 함께해온 세월의 무게와 체취가 더해졌기에 밀도 있는 평온함과무언의 신뢰가 가득하다.
앤드루 와이어스, 크리스티나의 세계(Christina's World), 1948
<결혼>을 비롯한 와이어스의 작품들은 아주 사실적이고 정교해서 얼핏 보면 마치 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신비로움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즉 기법 자체는 굉장히 사실적이고 세밀하지만, 그림이 풍기는 아우라는 몽환적이고 감상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와이어스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대상의 감정과 영혼까지 포착하는 치밀한 묘사력과, 자신의 의도에 맞게 사람과 사물, 풍경을 재배치하여 현실 너머의 이질감을 주는 화풍에 기인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라고도 불리는 그의 작품경향을 대표하는 건 단연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그림이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쓸 수 없는 크리스티나 올슨은 와이어스의 이웃이었다. 앙상한 두 팔로 힘겹게 땅을 짚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저 멀리 언덕 위의 허름한 집에 닿아 있다. 애써 그리로 나아가려 온몸을 비틀어 보지만 결국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삶의 고단함과 고독, 자유를 향한 갈망이 묻어난다. 그녀의 처절한 몸짓과 더불어 그녀 내면의 절망, 슬픔을 절묘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아직까지도 미국을 대표하는 그림 중 하나로 회자되고 있다.
(좌) 앤드루 와이어스와 그의 아내 벳시 와이어스 / (우) Maga’s Daughter, 아내 벳시를 그린 작품
와이어스가 이처럼 미국의 국민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아내 벳시(또는 베치, Betsy)의 공이 적지 않다. 18세의 벳시는 22살의 전업작가 와이어스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내로서 또 모델로서 예술적 조언과 영감을 주며 묵묵히 와이어스를 내조하던 벳시는 더 나아가 그의 그림을 판매하는 화상으로도 활약한다. 남편의 그림을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애썼던 그녀이기에, 와이어스의 <헬가> 시리즈는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땋은 머리 헬가의 초상, Braids(Portrait of Helga Testorf), 1979
와이어스는 또 다른 이웃인 '헬가 테스토르프'라는 독일인 여성을 테마로 15년간약 240여 점의 작품을 그렸고 어느날 이를 돌연히 공개했다. 배우자몰래 다른 여인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그린 남편을 이해할 수 있는 아내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아무리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격을 지닌 화가라 해도 이는 보통 센세이션이 아닌지라 세상은 놀라며 반문했고 갖은 추문들로 이들 부부를 괴롭혔다. 와이어스가 아내 벳시에게 <헬가> 시리즈에 대해 처음으로 말을 꺼냈을 때, 그녀가 내뱉은 첫마디는 그래서 더욱 놀랍다.
- 그 그림들, 아름답지 않기만 해 봐요!
그 뒤로도 벳시는 계속해서 남편의 예술 활동을 돕고 존중하였고, 남편의 죽음 후에는작품 보존을 위해 힘쓰는 등 끝까지 그의 파트너로 남았다. 그녀의 속마음까지 다 알 순 없겠지만, 단순히 이걸 그저 감내 혹은 사랑의 힘이라 속단할 수 있을까 싶다. 흔히들 오래된 부부 관계는 사랑이 아닌 정으로, 의리로 사는 거라고들 하더라. 그렇다 한들 그 관계가 헐겁고 느슨한 것이라 넘겨짚을 수는 없으리라. 어쩌면 이것은 마술적 사실주의에 빠진 결혼의 한 단면일지도 모를일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최근 개봉한 어떤 영화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어느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충분히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가벼운 로맨스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는 '사랑이란 감정의 마모'를 보여줘야 한다. 어쩌면 비겁하고 찌질한 모습이 나올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현실도, 와이어스의 그림 안팎 부부의 세계도 꼭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가벼운 연애나 사랑놀음과 달리결혼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마모되는' 과정까지도 감싸 안고, 그 안에서 때론 '비겁하고 찌질한', 가장 낮고 쿰쿰한 모습을 내보이기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현실을 마주해보겠다고, 상대방의 모든 명암과 그림자까지 감수해보겠다고 말도 안 되는 맹세를 하며 고집을 부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느 시가 노래하듯 굉장히 어마어마한 마법 같은 일이란 걸 알면서도.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 中
누군가 내 인생의 창을 톡톡-두드릴 때 그를 향해 활짝 문을 열어 보인다는 건 부담 없는일회성 방문과는 다르다. 그의 지금 모습뿐만 아니라 과거의 경험과 취향, 가치관 그리고 그와 함께할 그 어떤 미래와 리스크까지도 껴안아야 하니까. 이질적인 두 세계가 맞부딪히고, 부서지고, 가까스로스며들어 결혼이라는 용광로를 거친뒤서로의 일생을 오롯이 이해해가는 그 과정이, 가끔은 다소 비현실적인 현실처럼 느껴진다.
앤드루 와이어스, Wind from the Sea, 1947
언젠가 아빠에게 힘든 일이 있어 온 가족이 잠잠한 위로의 침묵으로 며칠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크게 내색은 않아도 함께 통감하며 어떻게든 아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뭉클하면서도 놀라웠다. 내 몸과 감정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끙끙 앓는 부끄럽고 어린 내 모습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면 이렇게 성숙될 수 있을까. 소중한 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 놓는 마음은 도대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엄마가 넋두리하듯 말했다.
- 내가 선택한 남자니까. 결혼한 그 순간부터, 어떤 모습과 상황일지라도 내가 택한 남자를 끝까지 지킬 거라고 다짐했어.
언제나 다정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그날은 왠지 아주 크고 힘이 센 존재로 보였다.
앤드루 와이어스, 겨울(Winter), 1946
당신이 그림에서 뭔가를 발견해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그림자다.
-앤드루 와이어스
그 뒤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면 문득 자문해보곤 한다. 나는 그의 어떤 모습이라도, 보이지 않는 질곡의 그림자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 텐가. 과연 생애를 걸만한, 내 인생을 걸고 택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려나. 언젠가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게 만드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결혼이라는 마술적 사실주의에 홀리듯 빠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