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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Mar 29. 2022

연구실 입학을 문의하는 학생에게

서울대 직업환경건강 연구실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에서 9년을 일하고, 2022년 3월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로 옮겨 일하고 있다. 사회역학/건강불평등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의 석사과정 입학 문의가 와서, 답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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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반갑습니다.  


첫째, 저는 서울대학교에서 하는 모든 연구에서 노동자 집단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서울대에 산업보건 전공 교수로 왔고,  자리에서 진행해야 하는 산업보건 분야 연구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의 삶과 건강에 대한 연구도 계속해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다만,  모든 연구를  노동과 건강을 중심에 두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여성 노동과 건강, 장애노동과 건강.처럼 말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의 노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성 노동 분야에서 몇몇 연구자들이 힘겹게 분투하고 있을 뿐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소수자들이 노동하는 환경에 대한 연구가  많아져야 합니다. 서울대에서 개설 예정인 수업  하나가 <취약계층 노동과 건강>이기도 합니다.  


둘째, 제가 9년동안 일했던 고려대를 떠나 서울대로 온 지 이제 한 달여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현재 서울대에서 새롭게 진행하고자 하는 연구는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이 없습니다. 노동자 건강을 포함해 사회역학/건강불평등 분야 전반에 걸쳐  폭넓게 연구를 진행하던 고려대 시절과 달리, 이곳에서는 노동자 건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방향성 정도이지요. 물론 노동자 건강은 사회역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고, 건강불평등의 핵심 영역입니다. 그래서, 지난번 이야기한 대로 발달 장애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연구 펀딩을 언제 어떻게 받을 수 있을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이런 지점들은 확답을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하나씩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셋째, 저는 서울대에서 데이터 분석을 하는 Dry Lab만이 아니라 시료를 채취하고 분석하는 Wet Lab을 함께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주제로 Wet Lab을 운영할지, 어떻게 그 연구를 진행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탐구 중이에요. 지금은 태아 산재법을 공부하며 여성 노동자의 근무환경과 생식독성에 관심 있는데, 이번 학기까지 여러 가능성을 탐구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에는 기후변화나 첨단산업의 직업병과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수업이 개설되어 있고 관련 주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일차적으로는 대다수의 교수님들께서 실험실에서 독성학/미생물학과 같은 Wet Lab 연구를 하고 계십니다. 수업을 듣게 되면,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거예요.


넷째, 석사과정에서 학생이 듣는 수업은 저는 행정적으로 허용되는 한도 안에서, 역학/통계와 같이 기초적인 방법론 수업을 듣는다는 전제하에, 나머지 과목은 최대한 본인이 원하는 수업을 듣기를 권장합니다. 산업보건/노동자 건강의 학문 영역이 기술적으로 분자생물학 영역에서 노출과 그 영향을 세밀하고 정확히 측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살아가는 정치/경제/역사적으로 얽힌 환경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제가 서울대에서 장기적으로 해나가고 싶은 작업이기도 하고요. 그런 시스템에 해당하는 요인들을 변화시키지 않고, 대안적인 작업환경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차분히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했으면 합니다. 만약 노동자가 아닌 다른 집단, 혹은 전체 집단의 사회역학/건강불평등을 공부하고 싶다면, 제 연구실은 추천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석사과정을 어디에서 공부할지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 될 거예요. 만약 노동에 초점 맞춰 보건학을 공부할 마음이 있다면, 여러 불확실성 속에서 도전하며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김승섭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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