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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Nov 15. 2023

선생님의 칭찬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빠진 글 #1

제 주례 선생님은 고등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매년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 선생님, 제가 담임도 아니었던 선생님을 매년 이렇게 집요하게 찾아오는지 이유를 아시나요?

- 그러게. 도대체 이유가 뭔가?

- 제가 누구와 결혼을 할 지 모르지만, 그 결혼의 주례는 선생님이 하셔야 해요.  

- 자네 , 그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몇 년 후, 결혼을 준비하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저 분을 어떻게든 우리 결혼 생활에 가까이 있게 해야 해. 저 분 옆에 있으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부부가 될 수 있을거야. 주례 선생님을 하시면 더 오래 가까이 계셔줄거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지금의 제가 쓰는 마지막 대중서입니다. 그런 책인지라 작업을 하는 내내, 제 삶의 이야기 중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정리하고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에서 빠진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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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윤리 수업시간이었다. 27년전,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을 당시 선생님은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에 대해 설명하셨다. 벽에 비친 내 그림자를 보면서 그 감각의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게 아닌, 그 너머를 찾는 힘겨움과 그런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때부터 난 플라톤을 읽기 시작했다. 놀라운 인물이었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지배하는 사고방식과의 대결하고 있었다. 소피스트들의 논리는 명확하고 직관적이었다. 인간은 모두 다르고 당신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지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보편이 없는 이 세계에서 인간에게 남은 것은 각자의 욕망을 최대한으로 구현하는 길뿐이다. 정의는 강자의 논리에 불과하고 성공이 진리다. 


언젠가 늦은 밤, 선생님을 찾아뵙고 술잔을 기울이다 물었다.


“선생님, 솔직히 사필귀정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게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일 뿐 사실은 그게 아니잖아요. 현실에서는 타인을 짓밟으며 권력과 돈을 축적한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잘 지내잖아요. 일제 강점기 친일파와 그 후손들도 그렇고, 전두환만 봐도 광주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보호받으면서 풍요롭게 살았구요. 플라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에서 그런 세상을 겪으며 살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선함과 이데아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묵묵히 듣고 계시다, 읊조리듯 말하셨다.


“그렇지…. 이승에서의 시간만 생각하면 그렇지.”


플라톤이 활동하던 시기,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한 후 정치적 쇠퇴를 겪고 있었고, 소피스트들은 처세술을 배우고 명성과 부를 쌓으라 말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플라톤에게 그런 현실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서양철학사>에는 플라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난 지금도 간혹 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장을 소리내어 읽곤 한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관해서, 혹은 사악한 자가 행복하고 바른 자가 불행하게 되는 일에 관해서 엉뚱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려고 했다.” (<서양철학사>, 램브레히트 p71)


죽음은 공포스럽고, 선한 자들은 줄곧 패배하고 악한 자들은 부귀영화를 누린다. 사실이다. 플라톤은 그러한 감각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재판정에 선 스승의 모습을 묘사하며 감각 너머의 지향을 살아낸 존재를 구현해낸다. 소크라테스는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감각에 의존해 세상을 겁박하는 이들에 어떻게 맞서,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말하며 죽음을 향해 걷는다. 그 삶으로 죽음의 공포와 악한 자가 승리하는 세상에 대해 ‘엉뚱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금하는 글이 만들어진다.


2015년 12월 세월호 생존학생 연구 용역 공고가 올라왔을 때, 이 연구를 지원하는 게 맞을지 확신이 들지 않아 안산으로 찾아갔었다. 집단 분향소에 들렸고 유가족분들과 4.16연대 분들을 만났다. 당시 안산은 온 도시가 슬픔에 잠겨있었고 사람들은 냉담했다. 마지못해 세월호 특조위를 통해 연구를 발주한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 실태조사가 잘 되길 바라지 않았다.


안산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며,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선생님,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을 연구하는 용역 연구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예요. 지금 안산에 갔다가 돌아가는데, 모든 게 너무 어려워 보여요. 유가족이나 4.16 연대에서는 참사가 터지고 1년이 넘게 지났는데 정부가 이제 와서 무슨 조사를 하느냐는 분위기고, 정부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생존학생과 그 가족과 관계를 맺고 인터뷰를 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6개월 안에 하라고 하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상태예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김선생”


“예”


“김선생이 해줘."


"..."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나처럼 멀리 있는 사람이 보는 것보다 어렵고 힘든 점이 훨씬 더 많이 보이겠지.”


“…”


“미안해. 김선생이 해주면 좋겠어.”


살면서 들어본 가장 큰 칭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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