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보고서 PDF 다운로드
인권위 연구가 발표되고 나서, 여러 기자분들이 연구의 함의를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연구 미팅으로 영국 런던에 있어, 직접 방송에 나가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연구를 하고 나서 세상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골라야 한다면, 보고서의 마지막 3문단인 아래 내용입니다. 이 글만큼은 꼭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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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노동자 효과: 건강해야만 올 수 있고 건강해야만 남아있을 수 있는 노동자들
이주노동자의 사망원인, 사망통계, 사후 대책을 연구하면서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이 도출되어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건강노동자효과(Healthy Worker Effect)'이다. 2018년에서 2022년까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사망자 수와 산재보험가입자 수 정보를 받아 연령분포를 통제하고 분석했을 때,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 위험은 한국국적노동자 대비 최소 2.3배에서 최대 3.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중 산재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 노동자와 비교하여 이주노동자의 사망률이 최소 2.3배 이상 높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는 여전히 이주노동자의 사망위험을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첫째,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대체로 입국 당시 한국국적노동자에 비해 건강한 상태다. 이주노동은 신체적·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경향이 있으며, 고용허가제의 경우 건강검진을 통과해야만 입국할 수 있다. 둘째,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면, 가족이 있는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사망이 한국에서의 노동과 관련되더라도, 본국에서 발생한 사망은 한국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건강한 노동자만 입국 가능하고 건강해야만 한국에 머무를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사망률을 한국국적노동자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실제 사망위험 불평등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언어적·행정적 장벽으로 인해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한국국적노동자에 비해 이주노동자들의 사망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실제 그 사망률 차이는 더 커질 수 있다.
- 삶과 죽음의 비실재화: Un-documented, Un-known, Un-related
또 하나의 개념은 이주노동자의 비실재화(de-realization)이다. 비실재화는 사회가 특정 집단의 구성원을 단순히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 그 존재를 사회적으로 지워버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살아 노동하는 동안에는 제도 밖으로 밀려나 미등록(un-documented) 노동자가 되기 쉽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그 원인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인불명(un-known)으로 처리되기 쉬웠으며, 사망 후에는 시신 처리과정에서 무연고(un-related) 사망으로 분류되기 쉬웠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구조적으로 이주노동자를 존엄한 삶과 죽음이 가능한 제도 바깥으로 밀어내며 그들을 ‘미등록-사인불명-무연고’의 존재로 만들거나 혹은 방치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노동을 저임금으로 감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얼굴 없는 존재로 만들고, 동료와 가족을 가졌던 한 인간의 역사를 삭제하고 그들의 죽음이 사회적으로 온전히 애도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 13개 언어로된 요약문: 지식의 생산과 유통에서 소외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본 보고서가 이주노동자의 사망원인, 사망통계, 사후 대책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은 이 한국어 보고서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아무리 중요하고 유용한 지식이 생산되어도 그 지식이 절실히 필요한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면, 그 쓸모는 명백히 제한된다. 보고서 전체를 번역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연구팀은 보고서 맨 앞에 쓰여진 요약문을 이주노동자들이 접근가능한 다양한 언어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 보고서의 ‘<표 1-3> 2023년 이주노동자의 성별 국적 분포’에 따라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수가 1만 명이 넘는 국가를 기준으로 그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국어를 포함한 총 13개 언어로 요약문을 제공하였다. 향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삶과 닿아있는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