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승섭 Nov 22. 2019

[서평] <법의 이유> (홍성수, 2019)

‘법적 정의’ 위해 시민이 싸워야 하는 이유 

나는 2016년 세월호 특조위의 용역연구인 참사 생존학생 연구를 책임자로 맡아 진행했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들을 매도하는 데 앞장섰다. 생존학생과 그 학부모를 만나 인터뷰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해 10월 우편 한통을 받았다. 세월호 연구를 한창 진행하던 4월, 검찰청에서 내 통장 계좌를 조사했다는 은행의 통보였다. 대한민국에서 검찰은 합법적으로 당사자의 동의 없이 개인의 계좌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홍성수는 <법의 이유>에서 ‘합법적’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국가 권력의 위험한 그늘로 다가간다. 막스 베버의 말처럼 ‘특정한 영토에서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조직’인 국가는 사법권을 통해 개인을 조사하고 심판하고 처벌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법의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중 27%만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 덴마크인의 83%, 인도인의 67%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다. 매일 과중한 업무 속에서 책임감을 느끼며 법집행을 해온 대다수의 법조인은 이러한 불신이 억울할 것이다.


책은 그 이유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이들에게 유난히 너그러웠던 한국 사법제도의 과거를 넘어서, 정상적인 법 집행과정을 파고들어 질문한다. 영화는 그 질문을 교과서에 나오는 깔끔하고 정리된 사례가 아니라 복잡한 인간사가 얽혀 있는 현실에서 던지기 위한 도구다. <부러진 화살>을 통해 구체적인 법 집행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사법불신의 이유를 찾고, <소수의견>을 통해 재판의 투명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가치를 말하고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를 통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국가권력이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 가능성을 언급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법 집행의 정당성을 따지는 기준은 다름 아닌 그 법이 제정된 이유와 역사다.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미덕은 법 만능주의에 대한 경계다. 저자는 법정에는 고유 논리가 있기에 옳고 그름이 아닌 재판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역사 부정죄를 법정에서 따지는 것이 최선일지 질문한다. 사형제도가 유지되어야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응보주의와 일반예방과 특별예방의 효과를 하나씩 따지며, 사형제가 잠시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렇게 해서 결국 ‘가장 좋은 사회정책이 가장 좋은 범죄정책’이고,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법적인 처벌만으로는 범죄가 줄어들 수 없고 우리의 존엄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결론에 가닿는다.


이 책은 실용서가 아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법을 잘 알게 되어 내가 안전해졌다는 포만감이 아니라, 계속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힘겹게 이뤄낸 민주주의와 인권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인혁당의 상처를 간직한 나라에서 검찰의 계좌 조회가 6개월 뒤 당사자인 내게 뒤늦게라도 통보된 것은 국가권력조차도 무소불위로 개인의 정보를 함부로 조사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누군가의 고민과 행동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 아슬아슬한 성과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국가는 언제든 괴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아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민의 책임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18060.html


작가의 이전글 소수자의 몸 읽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