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에 딱 한번 친구들과 홍대 클럽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공부만 하던 범생이인지라, 그런 곳에 가면 어떻게 춤을 춰야 할지 어떻게 어울려야 할지 몰라 음악에 오히려 위축이 되더라고요. 뭔가 함께하고 싶은데, 모든 게 어색해서 뻘쭘하게 구석에 있다가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토록 많은 젊은이들이 클럽을 찾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서로를 만나고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그래야 하지요. 그곳이 클럽이건, 어디건 말이지요.
코로나19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이 정도로 감염력이 높은 바이러스인 줄 몰랐습니다. 2014년 기니와 시에라리온과 같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총 감염자 숫자는 3만 명이 안되었는데도 말이지요. 걸린 사람의 40%가 사망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감염이 되어 두통, 구토, 발열과 같은 증상이 생겨나게 되면,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걷기가 힘들어 침대에 누워있다 사망하기 일쑤였습니다. 증상이 심각해 감염자가 지역사회로 나오지 못했던 것이, 바이러스가 더 퍼지지 않았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2020년 5월 12일 현재 코로나19 감염자는 4백만 명이 넘습니다. 사망자 숫자도 28만 5천 명이고요.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고 난 2000년대 이후 이런 폭발적인 전염력과 상당한 수준의 치사율을 가진 전염병 유행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저와 같은 연구자들은 매일같이 전 세계에서 각국의 공동체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공동체들이 어떻게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는지를 읽고 접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 역시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지요.
간혹 콜레라로 인해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한 마을이 사라졌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던 비극적인 사건을 접하곤 했습니다. 지금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려 죽거나 일하지 못해 굶어 죽는 상황입니다. 특히 가장 약한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이 되고, 병원에 가지 못해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더 빨리 해고가 되어 말 그대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데도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말마다 서울의 한 보건소 코로나19 선별 진료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방호복을 한번 입으면 물을 먹을 수도 없고 화장실에 갈 수도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함께 일하는 간호사님께서 방호복의 신발을 감싸는 주머니의 끈이 풀려 바닥에 끌리는데, 그걸 몇 번 말씀드렸는데도 한참 동안 묶지 못하셨습니다. 그걸 묶기 위해서는 허리를 숙여야 하는데, 정말로 그 시간이 나지 않았으니까요. 저녁 늦게 진료를 마치고 방호복을 벗으며 함께 일하는 분들이 입 모아 말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래도 많이 와서 다행이에요"
이태원에서 확진자가 발견되었을 때,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새로운 환자 집단의 발생보다도 잘못된 낙인으로 인해 감염자들이 음지로 숨는 것이었습니다. 측정되지 않으면 막을 길이 없어집니다. 지금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은 인권의 측면에서 그릇된 것일 뿐 아니라, 방역을 방해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물론 이 상황을 수용하는 일은 버겁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갑갑한 시간이 또다시 계속될 것이고 부모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일은 생각만 해도 답답합니다. 초등학생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야 이미 벌어진 이 상황을 더 잘 수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바이러스는 놀라울 만큼 힘이 세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닙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불렸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이 넘습니다. 당시 세계 인구는 20억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도요. 현재 세계 인구는 77억 명입니다. 물론 바이러스도 다르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과학도 발전되었지만, 이 바이러스가 얼마만큼의 생명을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백신의 개발은 앞으로 아무리 빨라도 12개월 이후입니다. 그 시간까지 함께 아프지 않고 죽지 않고 버티는 일은 버겁습니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바이러스 유행을 만난 상황이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들은 우리가 살아왔던 습관과 어긋납니다. 삶의 관성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물리력이 있어야 하지요. 지금 우리는 함께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 행동해야 합니다.
여름이 다가오면, 방호복은 더 무겁고 갑갑해질 테지만, 저도 제 주변의 의사/간호사 선생님들도 계속 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버티다 힘들어지면, 다른 의료진분들이 찾아와 함께 해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정치적 의견도 다르고 삶의 모양새도 다르지만, 대한민국 의사/간호사는 한결같이 자신의 환자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들이고 그 생명을 지키는 일에서는 조금도 양보할 줄 모르는 이들이니까요.
우리 모두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불확실성을 품에 안고서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 어두운 시간을 견디고 함께 살아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