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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Mar 18. 2022

[한겨레] 정치적 갈등과 대립을 두려워 말자

북리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35360.html

변희수 하사 1주기를 보냈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있다. 며칠 후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지 12주년이 되는 3월26일이 돌아온다. 우리 곁에 떠도는 차별과 혐오, 전쟁과 폭력의 비극은 멈추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 자신이 이 비극의 희생자였다고 가정해보자. 에스에프 영화에서처럼 환생해서 다시 세상에 돌아왔다면 어찌 살겠는가? 누구나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애쓸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재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유는 단지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비극들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보건학자 김승섭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한국 사회의 차별, 혐오, 정치적 사건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 재소자의 건강 실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그의 연구는 사회적 아픔을 이론화하여 많은 독자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후속작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서는 공중보건의 역사를 통해 지식이 생산된 맥락을 검토했다. 누구의 지식이며 누구의 과학인가?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이 생산되고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온갖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연구자들은 잘못된 일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던지고 대학과 학계의 연구풍토를 비판했다.


세 번째 저작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천안함 사건의 피해자, 생존장병 58명의 삶을 추적하였다. 2018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가 이뤄지기 전까지 한국 사회는 그들의 존재에 눈감고 있었다. 침몰한 배를 두고 사회적 논의가 들끓었지만 살아 있는 장병들의 삶이 어떤지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다. 이 책은 이런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고 천안함 사건이라는 렌즈로 우리를 돌아보자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가 어떠한 곳이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천안함 생존장병의 눈으로 바라보자”고 말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천안함 생존장병이 처한 아픈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나날이 병들어갔다. 패잔병으로 낙인찍고 모욕하는 사회에서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고 있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천안함은 산업재해 사건이다.” 김승섭의 연구는 이렇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다친 장병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지지를 호소한다.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불이익에 맞서 싸우는 공감과 연대의 손길이었다. 이 책은 생존장병뿐만 아니라 소방공무원, 산업재해 노동자 등 한국 사회가 만든 피해자들의 여러 사례를 살펴본다.


아직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기지 못했다. 미래의 피해자들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무감해질수록 공동체의 삶은 황폐해질 것이다. 김승섭은 어떤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있더라도 두려워 말고 해결책을 찾자고 말한다. “저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더욱 첨예해지기를 바랍니다. 다만 그 대립이 정치적 선동으로 인한 공허한 충돌이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현실에 뿌리박은 갈등이기를 바랍니다. 그런 갈등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런 진통을 겪지 않고 생겨나는 대안은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그의 연구가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지식 생산의 이정표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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