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지방도시 만들기(4)
대한민국의 지역 불균형은 이제 단순한 사회적 이슈를 넘어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인구 재앙으로 변하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쏠림과 저출산·고령화라는 이중고 속에, 청년층이 이탈한 비수도권 지방 소멸은 가시화된 현실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 주도의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대응을 위해 인구감소지역과 인구감소관심지역을 지정하여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도입하여 2022~2031년에 10년간 총 10조 원(매년 1조 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운용 결과를 보면 한계가 명확하다. 예산을 '얼마나 제대로 썼는가'보다 '얼마나 빨리 썼는가'에 치중한 나머지, 단기성 사업이나 전시성 시설 건립에 기금이 소진되는 '양적 집행'의 늪에 빠져 있다. 실제 인구 유입과 정착을 끌어내는 '질적 성과'를 도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¹
이에 이재명 정부는 지방 지원 및 국가 균형 발전 정책의 방향을, 과거의 '시혜적 배분'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이 주도하고 정부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다극 체제 구축'과 '균형 성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특히 5극3특 권역별로 ‘대학(교육·인재)-연구소(R&D)-기업(고용·산업)이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 지방 주도 혁신생태계'를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뒷받침할 주된 정책수단은 다음과 같다.
○ RISE 체계의 도입: 대학이 지역의 허브가 된다.
교육부 예산의 50%인 약 2조 원의 집행권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제도로, 지자체가 지역 대학의 운영 주체가 되는 방식이다. 일례로 경상북도의 경우, RISE 체계를 활용해 대학이 없는 지역에도 캠퍼스를 신설하여 교육 접근성을 높이고, 대학이 지역 중소기업의 R&D 센터 역할을 담당하며 실제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 기회발전특구와 인센티브: 파격적 제안으로 기업을 유혹한다.
기업과 사람이 스스로 지방을 선택하게 하려면 전례 없는 수준의 혜택이 필요하다. 기회발전특구는 수도권과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한다.
먼저 조세 혜택 측면에서, 특구 내 창업 및 신설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5년간 100%, 이후 2년간 50% 감면하여 초기 비용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또한 가업 상속 공제 대상을 확대하고 한도를 철폐하여 명문 장수 기업의 지방 이전을 독려한다.
금융 및 규제 혁신 측면에서는 기회발전특구 펀드 투자자에게 9% 저율 분리과세 혜택을 제공하고, 대학 운영 규제를 완화한다. 이러한 파격적 혜택은 앞서 언급한 RISE 및 고부가가치 인프라와 결합하여 '일자리 창출-청년 정착'의 선순환을 만드는 결정적 트리거가 될 것이다.
○ 컴팩트 시티(compact city) 전략: 지역 거점들을 압축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결한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무분별한 도시 확장이 아닌 '선택과 집중'을 통한 효율성 극대화가 필요하다.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형으로 중심거점을 컴팩트시티로 개발하고 주변 중소도시를 ‘대중교통 60분 생활권’으로 연결한다.
서울이나 수도권 남부로 몰리고 있는 자원들, 즉 청년 인구, 연구 기능, 첨단 지식산업을 비수도권 지방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서울을 능가하는 매력을 장착할 필요가 있다. 그럼 서울을 능가하는 경쟁력 있는 도시는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세계 누구나 인정할만한 ‘글로벌 도시’가 되는 길뿐이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예로 전통적으로 뮌헨, 취리히, 교토 등이 있으며, 현대에는 싱가포르, 오스틴, 벨뷰 등이 있다. 이들 도시는 단순히 경제적 풍요를 넘어 삶의 질(quality of life), 교육 인프라, 그리고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지식 기반 도시’라는 특성이 있다.
이재명 정부도 앞서 말한 ‘5극3특 권역’별로 이러한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상징적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 '남부권 해양수도', ‘에너지 고속도로’ 등의 슬로건적 정책구상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을 파헤쳐 보면, 그 핵심기반이 되는 인재를 유인할 요소들이 무척 취약하다. 돈만 들인다고 지방 대학교가 ‘SKY 대학교’로 바뀔까? 지방 국립대 병원을 수도권 대형병원 수준으로 육성하여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방 환자들이 서울 5대 종합병원 대신 이들 병원을 찾게 될까? 하드웨어를 갖춘다고 우수학생과 연구인력이 수도권에서 옮겨올 것이 아니며, 급여를 높게 준다고 서울의 수준 높은 의료인력이 지방으로 내려오지 않는다.²
결국 수도권 편중의 해소, 국가경쟁력의 다극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서울을 능가하는 ‘글로벌 강소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 기반’이 먼저 마련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 및 지자체가 기획하고 주도하는 유형적 인프라(infrastructure) 투자에 앞서 해당 지역 및 국가의 철학이나 ‘소프트웨어적 앵커’(software anchor)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지방육성 정책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고유의 문화적 바탕 위에 훌륭한 교육, 연구, 의료 등 고부가가치 인프라들이 이러한 콤팩트 시티의 핵심 거점(hub)에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 모든 인프라 간 시너지가 제대로 발휘되고 행정 비용을 절감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 모델이 완성될 수 있다.
2000년 경부터 시작된 ‘한류’(K-콘텐츠)는 점차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요즘에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미 전주, 평창, 속초 등 지방 도시도 ‘한류 지도’에 올라 있어 어느 정도 비수도권 지역이 문화적 바탕을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국내 및 국외의 고급 인력이 지방으로 향하게 하려면 제조업 유치를 넘어 지식 기반의 고부가가치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인재 우수한 인재를 끌어당기는 '자석'(magnet) 역할을 하는 세 가지 핵심 분야는 다음과 같다.
○ 교육기관: SKY 대학교를 능가하는 선진국 이공계 대학교 등을 유치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보다 훨씬 현실적인 교육기반 조성이다. 정주 장벽을 해소함으로써 고급 인력, 고소득 가구를 유인한다. 글로벌 수준의 교육환경 조성은 자녀 교육 문제로 인한 지방 이전 기피 심리를 물리적으로 해소하고 글로벌 수준의 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 인재가 유입되어 지역 내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 연구(R&D) 클러스터: 대학, 지식생산 거점과 연계하여 지역 경제 수준을 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대학과 기업부설 연구소에 석·박사급 전문 인력을 정착시켜 지역 내 산업을 고도화하고, 기술 창업을 활성화시켜 지역 경제의 체질 자체를 바꾸게 된다.
○ 고급 의료 서비스: ‘서울 5대 병원’을 능가하는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국내외 우수 인력들의 정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와 고소득 정주 인구가 원하는 국제 수준의 의료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밖 지방의 부활을 위해서 선진 외국으로부터 인재, 기업, 자본 등을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앞서 충분히 설명했다. 2000년 경부터, 정부는 낙후되었거나 새로 개발한 지역에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환경과 외국인 생활여건을 개선하여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국인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경제자유구역(KFEZ, Korean Free Economic Zones)의 법제를 정비하고 총 9곳을 KFEZ로 지정하여 운영 중이나, 그 성과는 매우 지지부진하다. 전체 입주기업 중 외국인 투자기업의 비율이 7% 미만으로 그저 국내기업을 위한 산업단지에 그치고 있다. 이 구역들 중 비교적 사정이 나은 인천(IFEZ)마저 계획대로 외국 기업이나 학교, 병원 등이 들어오지 않아 그 빈 자리를 아파트 단지로 대신 채우고 있다.³ 이 같은 경제자유구역의 부진은 상당 부분 한국 사회 특유의 '강한 평등주의(egalitarianism)'와 글로벌 스탠다드의 충돌에서 기인한다. 한국의 평등주의는 나라 전체의 사회 안전망 확보에는 기여했으나, 글로벌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특구에서는 '차등화'를 가로막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작용하고 말았다. 경제자유구역 설치 법령에는 존재했으나 사회적 갈등으로 실현되지 못한 사안들은 다음과 같다.
○ 고용 의무 배제 조항 삭제: 국가유공자·장애인 고용 의무 면제 특례가 평등 원칙 위배라는 비판 속에 삭제되어 기업 운영의 자율성이 저하되었다.
○ 의료 공공성 논란: 영리병원 도입이 '의료 민영화' 담론에 가로막혀 제주 녹지국제병원 사례처럼 허가 후에도 내국인 진료 제한 등의 규제가 붙어 실효성을 잃었다.
○ 과실송금(果實送金) 허용 지연: 국제학교 수익금을 본국 법인으로 보내는 과실송금(수익금 회수)이 '교육의 시장화'라는 비난에 막혀 해외 명문 학교 유치의 걸림돌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지방 소멸 위기는 이제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단순 예산 투입과 전시성 시설 건립 방식으로는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 진정한 지방 시대는 수도권 자원의 '시혜적 배분'이 아닌, 지방이 스스로 세계와 경쟁하는 '글로벌 강소도시'로 거듭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첫째,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투자의 중심축을 전환해야 한다.
도로와 산업단지 같은 외형적 인프라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유인하는 '소프트웨어적 앵커'다. 핵심 거점에 글로벌 수준의 교육기관, R&D 클러스터, 고도화된 의료 서비스를 우선 구축하여 우수한 인력이 자발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지역 주도의 독립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지방 발전 모델은 지역민과 지자체가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할 때 가장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다. 발전 전략에 관한 의사결정은 해당 지역 내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중앙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전국 단위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 외부 세력이 지역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자제하여야 한다. 지역의 문제를 전국화 하거나 전국의 기준을 그대로 낙후 지역에 주장하는 것은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셋째, '갈라파고스 규제'를 혁파하고 글로벌 표준을 수용해야 한다.
글로벌 자본과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고용 자율성, 수월 교육, 의료 서비스의 고급화 등 세계 표준을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평등주의적 관념에 갇힌 낡은 규제를 허무는 '파격적인 차등화'가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관성을 끊어낼 유용한 도구다.
이를 바탕으로, '5극 3특' 기반의 다극 체제로 국가 경쟁력을 재편해야 한다.
서울 단극 체제를 넘어 권역별로 특화된 콤팩트 시티를 구축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혁신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이는 지방의 생존을 넘어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다층적인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 과제이다.
한마디로 줄이자면, 지방의 부활은 예산 집행의 속도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에 달려 있다. 고유의 문화적 토대 위에 국제 수준의 인프라를 얹고, 지역의 자율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담대한 설계가 필요하다.
(1) 신유호, ‘지방소멸대응기금이 인구감소지역 공공서비스 운영 효율성에 미친 영향분석’, 한국정책연구, 경인행정학회, 2024.06.
(2) 국회 입법조사처, ‘지역 간 의료불균형 해소를 위한 지역의사제 도입의 쟁점’, 2025.11.
(3) 연합뉴스, ‘경제자유구역 기업 중 외국사 10% 불과…동네 산업단지로 추락’, 2016.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