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소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 정책

글로벌 지방도시 만들기(3)

by 하얀자작

인구 데드크로스의 경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자본과 인프라를 수도권에 몰아넣은 '고도 압축 성장'의 역사다. 전략적 입지 상 남부지방에 배치한 중공업 단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제조업 및 서비스업이 수도권으로 몰렸다. 물론 그 결과 국토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는 했지만, 그 폐해도 참혹하다. 국토 면적의 단 11.4%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50.4%, 지역내총생산(GRDP)의 52.5%가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비대칭적 공간 구조는 단순한 불균형을 넘어 지방의 재생산 기반을 파괴하고,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주거비 상승과 저출산을 야기하는 국가적 재앙의 근원이 되었다. 특히 2020년에 현실화된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¹ 현상을 보면 지방 소멸이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 역대 정부는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인구감소지역 지정ㆍ지원 등 방대한 예산과 정책적 수사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인구, 생산력, 자본 등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 정책들이 과연 지방의 자생적 잠재력을 보강했는가, 아니면 수치적 성과에 매몰된 연명 치료에 불과했는가?


지지부진한 혁신도시와 실패한 기업도시

2007년 노무현정부 때 출발한 ‘혁신도시’ 정책은 공공기관이라는 '핵심 시설’(anchor facility)을 지방으로 강제 이전시켜, 그 곳에 자생적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2022년 기준 10개 혁신도시의 정주 인구는 232,632명에 도달했고, 공공기관의 지역 인재 채용률은 35.2%를 기록하여 외형적 성장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² 특히 주목할 지표는 혁신도시의 평균 연령이 34.7세로 전국 평균(43.3세)보다 무려 9세가량 젊다. 이처럼 혁신도시가 젊은 층을 유인하는 데 일정 부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지표 상의 유희'일 뿐이다. 이면에는 새로 생긴 신도심이 주변 원도심의 인구를 흡수하는 ‘빨대 효과’ 때문에 지역 내 양극화가 심화되는 부작용이 숨어 있다. 수도권으로부터 기업 유치는 13.7%에 불과하며, 입주 기업의 절반(49.5%)이 동일 지역 내 이동이라는 사실은 혁신도시가 '지역 내 기업 재배치' 효과에 그쳤음을 뜻한다. 부족한 의료·교육 인프라는 공공기관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를 저해하여, 주말이면 인구가 수도권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주말 유령 도시' 현상을 고착화시켰다.


기업도시에 앞서 2005년에 시작된 ‘기업도시’ 정책은 “민간 기업들이 산업ㆍ연구ㆍ관광ㆍ레저분야 등에 걸쳐 계획적ㆍ주도적으로 자족적인 도시를 개발ㆍ운영”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울산, 여수 등 중화학공업 도시의 사례가 있었지만, 노무현정부는 이 모델을 확장하여 지식기반형이나 관광레저형으로 여러 곳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민간의 자본 참여에 의존했던 기업도시는 처참한 성적표를 남겼다. 당초 6곳이 대상지로 지정되었으나, 그 중 원주, 충주 두 곳만이 그럭저럭 완공되었을 뿐이다. 원주 기업도시는 서울에서 1시간 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른 바 ‘대서울권’³이며, 인근 원주 혁신도시와도 인접하여 정착에 성공적이었다. 충주 기업도시의 경우 중부내륙권 산업거점(자동차부품 등 제조업, 식품가공업 등)으로 성장하여 충주시의 인구가 21만명 이상으로 유지되는 데 기여했다.
이에 비해 무주(관광레저형)와 무안(산업교역형)은 투자 유치 실패로 지정이 해제되기까지 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행자가 사업을 중도에 포기함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은 그 동안 토지 거래 제한 등 각종 규제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지도 못했다.


이 두 지방 육성정책의 문제점은 「도시」를 사람이 사는 '생활 공간'이 아닌 단순한 '산업 생산 기지'로 간주한 것이다. 자녀 교육과 문화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기업의 이전만으로 인구 유입을 기대한 것은 정책적인 오만이었다.


인구감소지역 지정; 소멸지역 낙인인가?


문재인정부 때인 2021년 행정안전부는 89개 ‘인구감소지역’을 연평균 인구증감률, 청년 순이동률 등 8대 지표를 기반으로 한 인구감소지수를 근거로 지정했다. 이후 이들 지역에 대한 교육 및 청년 정착 지원, 복지 및 정주 여건 지원, 그리고 재정 및 세제 지원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등급 매기기'식 접근은 해당 지역을 낙후된 곳이라는 '행정적 낙인'을 찍어 인구 유입을 더욱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아 ‘소멸지역’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만들었다. 더구나 인구 감소의 자연적 원인인 데드크로스가 국가 전체보다 20년 가량 앞서 시작된 이들 지역에서, 단순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만으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매년 1조 원 규모로 투입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의 집행 현황은 처참하다. 인구감소지역의 기금 집행률은 겨우 31.9%에 머물러 있다.⁴ 이는 중앙정부가 '총사업비 200억 원 이상의 중점 사업'을 강조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행정 역량이 부족한 기초지자체들이 아예 착공조차 못 하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의 25% 이상이 여전히 관광 시설이나 문화센터 건립 등 투자성 '하드웨어'에 편중되어 있으며, 정작 인구 유지나 유치의 핵심인 보육·교육 사업은 축소되는 기현상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참고하는 일본의 '지방창생' 정책


2014년 일본에서는 “896개 지자체의 소멸 가능성을 경고한” 2014년 '마스다 보고서’를 보고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젊은 여성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국가 존립 위기의 핵심으로 짚어냈으며, 일본이 극점사회(極点社会)⁵로 바뀌는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이 리포트는 일본이 '지방창생(地方創生)'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한국의 인구감소지역 지원제도도 이를 참고하여 수립되었다고 본다.

이 제도의 성과 중 하나는 고향납세(ふるさと納税) 제도이다. 2008년 도입 후 기부액이 초기 대비 100배 이상(2022년에 9,654억 엔)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이는 '관계 인구'를 형성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이 제도는 한국의 ‘고향사랑기부제’의 원형이기도 하다.게다가 '디지털 전원도시 국가구상'을 통해 '위성 오피스'(원격근무) 제도를 확산하며, '이직 없는 이주'를 현실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지역사회학자 야마시타 유스케(山下祐介)는 이 지방창생 정책이 실질적 인구 증가가 아닌, 지자체들이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인근 지역의 인구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전락했다고 통렬히 비판한다. 이는 근본적인 구조 개선 없이 예산 투입만으로는 지방 육성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일 정책의 상관관계: 벤치마킹과 시행착오의 공유


한국의 지역 정책은 일본의 궤적을 충실히 뒤따르고 있다. 2023년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의 고향납세를, 인구감소지역 지정 논리는 마스다 리포트의 프레임을 직접 참조했다. 또한 기시다 내각 이후 디지털 구상은 한국의 '디지털 중심 지방발전체계(DREAM)'와 그 결을 같이 한다.

두 나라는 수도권 일극 집중과 저출산·고령화라는 쌍둥이 위기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예산을 매개로 지자체를 등급별로 세우는 '공모형 경쟁 방식'까지 공유하며, 일본이 겪은 '지자체 간 소모적 경쟁'이라는 실패를 한국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 정책 수립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적 수사와 유형물(hardware) 구축에 매몰된 현실 또한 닮았다.


지난 정책 실패가 남긴 교훈


지난 20년의 정책은 지방의 외형을 꾸미는 '하드웨어적 이식'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그 안을 채울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다. 단순히 건물을 짓고 공공기관을 옮긴다고 해서 혁신이 자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첫째, 투자의 축을 하드웨어 위주에서 소프트웨어(지역의 매력 및 인적자원) 중심으로 완전히 이동해야 하며, 이를 기획·운영할 전문 인력(local creator)을 확보해야 한다. 시설 관리에 허덕이는 지자체에 정작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기존 하드웨어를 채울 콘텐츠나 운영할 전문 인력이다. 둘째, 개별 지자체 간의 소모적 인구 뺏기 경쟁을 중단하고, 광역권 클러스터 및 생활권의 선형적 연계를 통해 규모를 갖춘 순환적 경제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체류 인구(생활 인구)를 정주 인구로 전환하기 위해 교육·의료라는 실질적인 정주 안전망을 수도권 수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

지방의 소멸은 단순히 서울 등 대도시와의 물리적 거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회의 평등'에 관한 문제다. 수도권과 지방의 교육, 의료, 문화 등 정주여건 격차가 존재하는 한, 어떤 기금도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것이다. 국토의 균형은 예산의 배분이 아니라, ‘삶의 질’의 평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방에서도 수도권과 다름없이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실패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마침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향식(bottom-up) 지역 발전 모델을 내용으로 하는 ‘기회발전특구’ 정책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이의 실현를 위해 2023.07.10.에 ‘지방시대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추후 이 구상은 ‘5극3특 전략’으로 진화되어 이재명정부로까지 이어져 구체화되고 있다.



(1)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많아져 인구가 자연 감소하기 시작하는 분기점을 말한다.
(2) 지방시대위원회, ‘혁신도시의 성과와 향후 과제’, 2022.10.25.
(3) 도시문헌학자 김시덕은 “행정구역 상 서울 뿐만 아니라, 철도와 도로망을 통해 서울과 일상적인 생활권을 공유하는 지리적 범위”를 ‘대서울권’으로 정의한다.
(4) 충남일보, ‘지방소멸대응기금 예산 사업 성과 분석집행률 보완 필요”, 2025.05.08.
(5) 인구가 도쿄 등 대도시로만 집중되면서 지방은 공동화되고, 결국 국가 전체의 재생산 능력이 파괴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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