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불러온 역병 위기

첫번째 지구과학 수업 (1)

by 하얀자작

집현네트워크 편저 「첫번째 기후과학 수업」(위즈덤하우스)를 읽고, 중요한 부분을 다시 정리해본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구 온난화로 대변되는 기후 변화는 단순히 기온의 상승이나 기상 이변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생존을 지탱하는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인류는 오랫동안 감염병을 우발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으로 간주해 왔으나, 이제 감염병은 수십 년간 축적된 환경 파괴와 생태적 변동의 결과물인 ‘느린 재난(slow disaster)’의 전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기후 변화는 병원체의 전파 매개체인 곤충의 서식지를 북상시키고,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를 인구 밀집 지역으로 유도하며, 수만 년 동안 영구 동토층에 봉인되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를 깨움으로써 인류를 미지의 위협으로 몰아넣고 있다.

한반도의 기후도 점차 아열대화되면서 과거 해외 유입 사례로만 간주되던 열대 감염병이 국내 생태계 내에서 토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온이 오르는 현상을 넘어, 지카, 뎅기, 황열, 치쿤구니야¹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암컷 모기들의 생존과 번식에 최적화된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4년 질병관리청의 매개체 감시 결과에 따르면, 감염병 매개 모기의 발생 현황은 전년 대비 9.9% 증가하였으며, 특히 일본뇌염을 전파하는 작은빨간집모기 지수는 전년 대비 34.8%라는 급격한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러한 매개체 밀도의 증가는 따뜻해진 평균 기온(1.4℃ 상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는 한반도 전역이 감염병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다.

이러한 변화는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해 이집트숲모기와 흰줄숲모기가 북상하며 2023년 한 해에만 130건의 지역 사회 뎅기열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이는 그에 앞선 10년 동안의 총합인 73건을 단숨에 뛰어넘는 수치다. 또한 서나일 바이러스(West Nile Virus)는 2025년 기준 유럽 14개국에서 1,112건의 인간 감염과 97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779건의 확진 사례가 보고되어 역대 최대 규모의 유행을 기록했다. 이러한 통계는 온난화가 매개체의 서식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기존 보건 체계가 예상하지 못한 지역에서 감염병 폭발을 일으키고 있음을 입증한다.


무너진 자연의 방어막


기후 변화가 초래하는 더욱 심각한 위협은 야생동물의 서식지 재편에 따른 종간 바이러스 전파, 즉 ‘스필오버(spillover)’의 가속화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연구팀의 모델링에 따르면, 향후 50년간 지구 기온이 2도 이내로 상승할 경우 포유류 3,870종의 서식지가 급변하며 약 1만 5,000건 이상의 새로운 바이러스 교차 감염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동물이 자신의 생존에 적합한 기후를 찾아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조우한 적 없는 다른 종과 접촉하게 되는 ‘최초의 만남(first encounters)’이 약 30만 건 이상 일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행 능력을 갖춘 박쥐는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핵심 매개체로 지목된다. 박쥐는 수많은 코로나바이러스와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이며, 이들이 고지대나 인구 밀집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사향고양이와 같은 ‘징검다리 종(stepping stone species)’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시 이들이 인간과 접촉함으로써 팬데믹의 도화선이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 SARS나 COVID-19의 발생 경로와 유사하지만, 기후 변화는 이러한 우발적 사건을 자연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상시적인 현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기후 변화가 산림 파괴나 야생동물 거래보다도 더 강력한 감염병 발생의 상위 위험 요인(upstream risk factor)이 될 것임을 경고한다. 인류가 숲을 파괴하고 도시를 확장함에 따라 야생동물과의 접촉 면적이 넓어지는 가운데, 기후 변화는 이들 동물을 인간의 뒷마당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미래의 감염병 대비는 단순한 방역을 넘어 기상 데이터와 생태계 이동 경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생물 다양성은 신종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자연의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 이를 ‘희석 효과(dilution effect)’라고 하는데, 종 다양성이 높은 공동체에서는 병원균을 잘 전파하지 못하는 ‘저효율 숙주’들이 매개체와 병원체 사이를 가로막아 전체적인 감염률을 낮춘다. 그러나 기후 변화와 인위적 환경 파괴로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면 환경 변화에 강한 특정 종들만이 살아남게 되며,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쥐나 박쥐와 같이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보유하고 전파하는 ‘고효율 숙주’인 경우가 많다.

미국 동부의 라임병²(Lyme Disease) 전파 메커니즘은 이러한 희석 효과의 붕괴를 설명하는 고전적 사례다. 숲이 단편화되고 포식자가 사라진 환경에서 흰발생쥐(white-footed mouse)의 밀도가 급증하면, 병원균을 보유한 진드기가 거의 예외 없이 이들과 접촉하게 되어 인간에게 전달되는 감염 위험이 5배 이상 증가한다. 반면 주머니쥐나 특정 조류와 같은 다양한 종들이 공존하는 환경에서는 진드기가 병원균을 옮기지 못하는 숙주에게 흡혈을 시도하면서 감염의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결국 생물 다양성의 손실은 자연이 제공하던 ‘생물학적 필터’를 제거하는 행위이며, 인류를 병원체의 직접적인 타격권 안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기후 변화가 생태계의 복잡성을 단순화시킴으로써 병원체의 생존 전략을 더욱 공격적으로 만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생물 다양성 보존은 단순히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인류의 보건 안보를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재인식되어야 하며, 이를 방치할 경우 인류는 스스로 만든 생태적 진공 상태에서 병원체의 파상 공세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빙하 속의 좀비기 기어 나온다


지구 온난화가 극지방의 빙하와 영구 동토층(permafrost)을 녹이면서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 미생물들이 다시 생태계로 유출되고 있다. 영구 동토층은 빛과 산소가 차단되고 pH가 중성인 상태로 유지되어 미생물이 대사 활동을 중단한 채 수십만 년간 생존할 수 있는 ‘거대한 냉동 저장고’다. 최근 과학자들은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서 약 4만 8,500년 전의 ‘판도라 바이러스’를 비롯해 13종의 거대 바이러스를 분리해냈으며, 이들이 해동 후에도 여전히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활성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좀비 바이러스’ 혹은 ‘므두셀라 미생물’³은 현대 인류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유전 형질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인류의 면역 체계는 약 30만 년 전에 형성되었으나, 동토층 깊숙한 곳에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병원체가 보존되어 있을 수 있으며, 만약 이들이 인간에게 적응하거나 기존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한다면 현대 의학으로 대처하기 어려운 신종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다. 2016년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탄저병 유행은 이러한 공포를 현실로 만들었다. 기록적인 폭염으로 동토층이 녹으면서 75년 전 탄저균으로 죽은 순록 사체가 지표면으로 노출되었고, 여기서 방출된 탄저균 포자가 주변을 오염시켜 수천 마리의 순록이 죽고 어린 소년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났다.

빙하의 해빙은 단순히 물의 공급원을 넘어 고대 병원체의 유통망으로 작용한다. 특히 북극항로 개척이나 자원 채굴과 같은 인간의 북극 활동 증가는 얼음 속에 갇혀 있던 미지의 병원체와 인간이 직접 접촉할 기회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다. 인류는 이제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시간 여행자’ 병원체들과의 치열한 교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맞서야 하나?


기후 변화에 따른 감염병의 확산은 학자 롭 닉슨(Rob Nixon)이 정의한 ‘느린 폭력(slow violence)’의 속성을 정확히 투영한다. 느린 폭력이란 폭발적이거나 가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점진적이고 축적되게 가해지는 피해를 의미하며, 이는 감염병이 사회적 취약성과 결합하여 장기간에 걸쳐 특정 집단을 파괴하는 ‘느린 재난’임을 방증한다. COVID-19 팬데믹은 겉보기에 갑작스러운 폭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수십 년간 지속된 생태계 파괴, 보건 인프라의 양극화,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한 안일한 대응이 임계점에 도달해 터져 나온 구조적 재난이었다. 기후 변화가 유발하는 감염병의 위협은 사회적으로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가난한 국가와 소외된 지역 공동체는 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에 따른 감염병 매개체 노출에 가장 먼저 직면하며, 이들의 주거 및 보건 환경은 이러한 외부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없다.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푸에르토리코에서 발생한 만성 질환 관리 시스템의 붕괴나, 아프리카 지역의 말라리아 통제 실패는 기후 변화라는 ‘느린 폭력’이 행정적 레드테이프(red tape)와 결합하여 어떻게 취약 계층의 삶을 장기적으로 잠식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간, 동물, 생태계의 건강을 하나의 유기적인 체계로 보는 ‘원 헬스(One Health)’적 관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보건부, 농림부, 환경부 등 각 부처 간의 업무 칸막이와 데이터 공유의 한계로 인해 통합적인 감시 체계 구축이 지연되고 있다. 원 헬스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처 간의 벽을 허무는 정치적 의지와 더불어, 야생동물의 이동과 기후 변동을 실시간으로 추적하여 인간의 질병 발생을 사전에 예측하는 고도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기후 변화는 새로운 질병을 퍼뜨려 인류를 위협하는 단순한 환경적 변수가 아니라, 생명체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거대한 생태적 전복의 과정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 포유류의 서식지 이동, 고대 바이러스의 부활,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상실은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인류를 향한 복합적인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이제 감염병을 우연히 찾아오는 불행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 가한 ‘느린 폭력’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필연적인 결과로 인식해야 한다. 기후 변화를 늦추려는 노력과 동시에 생태계의 회복력을 복원하고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통합적인 보건 안보 전략만이 다가올 ‘질병의 시대’에서 인류를 보호할 유일한 방패가 될 것이다.


(1) 치쿤구니야 바이러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영장류를 감염시켰는데 사람에게도 감염된다. 1950년대에 아시아까지 퍼져 에피데믹이 되었으며, 2013년과 2004년에는 다른 대륙으로 퍼지기도 했다.

(2) 라임병: 보렐리아균에 감염된 진드기에 물려 발생하는 세균성 질환으로, 붉은 발진과 함께 발열, 두통, 피로감, 근육통 등 독감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제 때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통증, 인지 장애 등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3) 므두셀라 미생물: 약 2억 5,000만 년 전 소금 결정 속에 가사 상태로 갇혀 있다가 미국 연구팀에 의해 부활한 고대 박테리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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