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지구과학 수업 (2)
집현네트워크 편저 「첫번째 기후과학 수업」(위즈덤하우스)를 읽고, 중요한 부분을 다시 정리해본다.
지난 2022년은 전세계적인 이상기후로 특징지어진 해이다. 2022년에 파키스탄 나와브샤의 기온은 섭씨 49도라는 살인적인 수치에 도달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화재로 가열된 공기가 저기압과 충돌하며 거대한 화염 기둥을 만드는 '파이어 토네이도'가 목격되었다. 유럽의 젖줄인 라인강은 심각한 가뭄으로 수위가 낮아져 화물선들이 짐을 덜어내야만 운항할 수 있는 물류 대란에 직면했다. 한국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서울은 시간당 141mm, 하루 497mm라는 기상 관측 이래 최대 폭우를 기록하며 1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이후로도 지구촌이 마주한 기상 현상들은 인류가 구축해온 문명의 임계점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지속적인 재난적 상황은 더 이상 이례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의존해온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위협하는 명백한 경고장이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위기나 재난을 우려하거나 이를 막기 위한 행동을 ‘사기극(hoax)’이나 과장된 주장으로 반복적으로 부정해 왔으며, 최근에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미국의 핵심 기후 규제를 전면적으로 없애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특히 재난과 직접 연결해서는 기후 변화가 “실제로 존재하는 위협”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부풀려진 이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은 기후·환경 다자기구와 기후 금융 프로그램에서 줄줄이 탈퇴하거나 참여를 철회하고, 기금 지원을 중단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관련 기구와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국제에너지 관련 기구에서 손을 떼고, 저탄소 전환을 지원하는 JETP(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에서도 공식적으로 철수했다. 또한 인천 송도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GCF) 이사회에서 미국 의석을 사임하고, 미국의 기여금 지급을 중단하는 등 기후 금융 지원을 사실상 끊었다.
기후 재난이 초래하는 경제적 손실은 이제 추상적인 우려를 넘어 파괴적인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뮌헨리(Munich Re)의 분석에 따르면, 기후 위기의 경제적 대가는 이미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자연재해가 만든 경제적 손실 (2025년; Munich Re)
전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약 2,240억 달러
그 중 보험 손실 약 1,080억 달러
* 대부분의 피해가 화재·홍수·강한 뇌우 등 기후 관련 극단 원인으로 발생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William Nordhaus)는 일찍이 1970년대부터 탄소 가격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기후 변화가 가져올 경제적 파국을 경고했다. 그의 분석처럼 극한의 기온은 실외 근로자의 노동 생산성을 급저하시키며, 냉방 시설 접근성이 떨어지는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타격으로 돌아온다. 나아가 2011년 태국 홍수가 글로벌 IT 공급망을 마비시켰던 사례에서 보듯, 특정 지역의 기후 이변은 전 지구적인 경제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하는 도미노가 된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정교한 과학적 메커니즘이 자리 잡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 280ppmv였던 이산화탄소(CO_2) 농도는 2022년 420ppmv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단순한 농도 상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마나베 슈쿠로(Manabe Syukuro)와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은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 대기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들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대류권의 기온 상승과 반대로 나타나는 성층권의 냉각 현상이다. 온실가스가 지표면의 열을 가두면서 성층권은 우주로 에너지를 더 많이 방출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성층권 온도는 1960년대 대비 약 2도 하강했다. 만약 온난화가 태양 에너지의 변화 때문이었다면 모든 대기층의 온도가 함께 올랐어야 한다. 즉, 성층권의 냉각은 현재의 기온 상승이 명백히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지문(fingerprint)이다. 또한 클라우지우스-클라페이론(Clausius-Clapeyron) 원리에 따라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대기 중 수증기는 7%씩 증가하며 온실효과를 더욱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러한 온난화가 역설적으로 '극한 한파'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지표면의 반사율인 '알베도(albedo)'가 낮아지고, 이는 해양의 열 흡수를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발생한 열에너지는 중위도 제트기류를 약화시키며 북극의 찬 공기를 가두던 폴라 보텍스(polar vortex)를 붕괴시킨다. 2021년 미국 텍사스를 강타한 30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는 바로 이러한 '알베도 피드백'과 제트기류의 사행(蛇行)이 결합하여 빚어낸 온난화의 역설이다.
과학적 데이터가 이토록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은 종종 과학적 사실과 괴리된다. 한국의 초미세먼지 사례는 대중이 환경 위기를 어떻게 오독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실제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 추세에 있다. 그러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6.5%는 농도가 10년 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고 믿고 있다. 언론의 의제 설정과 '중국발 스모그'라는 단편적 정보에 매몰된 확증편향이 과학적 실체보다 공포를 앞세운 결과다. 이는 기후 위기 대응이 단순히 자연과학적 데이터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정치, 경제, 심리 등 사회과학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위기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바닷속에서도 끓어오르고 있다. 인류가 배출한 과잉 열에너지의 93.4%를 흡수하는 것은 해양이다. 특히 해표면 수온이 27도 이상인 '웜풀(warm pool)' 해역은 1981년 이후 2,200만 ㎢에서 4,000만 ㎢로 두 배 가까이 확장되었다. 이는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면적만큼 뜨거운 바다가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며, 강력한 슈퍼 태풍을 만드는 무한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운명의 날 빙하'라 불리는 서남극의 스웨이츠 빙하(Thwaites Glacier)는 주변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하부부터 녹아내리며 붕괴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 빙하의 붕괴는 서남극 빙상 전체의 유출로 이어져 해수면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다. 2030년경 인천공항이 침수되고 국토의 5%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경고는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공상과학이 아니다. 물순환의 가속화로 토양은 더 빨리 마르고, 대기 중으로 올라간 수증기는 한꺼번에 쏟아지며 가뭄과 홍수가 동시에 심화되는 극단적인 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1988년 제임스 핸슨(James Hansen) 박사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기후 변화를 증언한 이후, 기후변화에 대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잃어버린 30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성장의 신화에 매몰되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얼마 없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파리협정의 1.5도 목표를 향한 파격적인 경제 시스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우리나라 한국에게는 이에 기여할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강국인 독일에 비해 일조 조건이 훨씬 유리하다. 일례로 부산 등 남부 지역의 평균 일조 시간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보다 46%나 길다. 이러한 자연적 이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윌리엄 노드하우스가 제안한 탄소세 도입과 같은 정책적 결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라는 미시적 접근을 넘어,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 구조 자체를 탈거하는 거시적 전환만이 무너진 일상을 복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기후 위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대가 미래 세대의 생존권을 담보로 벌이는 위험한 도박을 멈추겠다는 의지의 문제다. 더 늦기 전에 과학적 징후를 직시하고, 인식의 오독에서 벗어나 행동해야 한다.” 이들의 절박한 주장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기후 재난을 극복하기위한 수단으로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생산 및 소비구조를 제안한다. 그럼에도 나는 탄소중립이라는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써 원자력의 활용도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는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폭발적 성장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구동하는 데이터 센터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전력 먹는 하마이다. 중간 규모의 데이터 센터 하나가 소비하는 전력이 약 10만 가구의 사용량과 맞먹으며, 2020년대 말에는 미국 내 AI 관련 전력 소비가 알루미늄, 강철, 시멘트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합친 것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전력 수요의 수직적 상승은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지점에서 원자력의 활용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현실적인 불가피함으로 떠오르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 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발전량이 출렁이는 간헐성 문제를 안고 있어, 24시간 중단 없이 대규모 전력을 공급해야 하는 AI 데이터 센터의 요구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다. 반면 원자력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기저 부하(baseload) 전력을 상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전 세계는 원자력으로의 회귀를 본격화하고 있다. 2024년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자로 수명 연장과 신규 건설을 적극 추진 중이며, 2025년 세계 원자력 발전량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 운영을 위한 전력원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 발전소와 직접 계약을 맺거나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개발에 수조 원을 투자하고 있다.
결국 기후 위기 극복과 첨단 기술 문명의 지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재생 에너지와의 보완적 파트너로서 원자력을 에너지 믹스의 핵심 축으로 수용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과학적 데이터는 명확하다. 우리가 누리는 지능 정보 사회의 편리함이 지구의 파멸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가장 깨끗하고 안정적인 동력원인 원자력을 문명의 안전핀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