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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자작 김준식 Jun 16. 2023

포르투(Porto)의 해리포터 활용법

이베리아 반도 서부 여행

내가 5월말∼6월초 초여름에 이베리아 반도 서부를 여행하고 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와 포르투갈을 아우르는 꽤 넓은 지역을 단 몇 주 안에 제대로 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여정 중에 포르투에서 문화적 서사를 상업화한 재미있는 사례를 목격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조앤 롤링)과 인연이 있다고 말해지는 ‘렐루서점(Livraria Lello)’과 ‘마제스틱카페(Majestic Café)’에 관한 이야기이다.
 조앤은 1991년∼1993년에 영국의 가족과 헤어져 포르투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만난 현지인 남편은 그녀를 폭행하고 집을 떠나지 못하도록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시리즈 1편)의 원고를 숨기기까지 했다. 이후 롤링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이사해 싱글 맘으로 복지수당을 받으며 원고를 완성했다. 1997년 출간된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2007년 마지막 7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이르기까지 출판하여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23만명으로 한국 목포시 정도와 비슷하다. 포트와인, 아줄레주 문화, 여러가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수려한 건축물이 즐비한 구도시 전체[포르투 역사지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피스텔 톤의 오래된 건물 풍경이 관광객들의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낡고 비좁으며, 심지어 매우 더럽다.

                                                   
 "J.K.롤링이 포르투에서 해리포터 집필의 영감을 얻었는 것이 진실일까?"


포르투갈인이나 포르투갈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은 조앤이 포르투갈에서 해리포터 집필에 필요한 영감과 다양한 소재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호그와트 학교의 풍경은 렐루서점 내부에서, 학생들의 제복은 포르투갈 대학생들의 망토 차림에서 얻었다고, 그리고 첫번째 해리포터 원고는 마제스틱카페에서 썼다고.
 그런데 조앤은 해리포터에 관한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곳은 맨체스터-런던 간 열차 안이었다고 밝히며, 포르투에 머물 때 렐루서점에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단지 그녀가 포르투에 머물 때 자주 들러 해리포터의 일부를 집필했던 곳이 마제스틱카페인 것은 맞다.

내가 포르투에 머물 때,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많았지만 유독 줄을 길게 늘어서는 곳이 렐루서점이었다. 이 곳은 미리 5유로씩 내고 예약한 사람들을 길 건너편 보행로에 입장 시간대(30분 간격)별로 줄 세워 놓은 다음 그 시각에 맞춰 입장시킨다.
 이에 비해 마제스틱카페는 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작 가게 안에 들어와 식사를 하는 사람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물론 빈 자리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며칠 뒤에 이들 명소 앞을 지날 때도 그러한 광경은 여전했다.

그런데 해리포터 이후 조앤과의 인연을 내세워 인기를 끄는 이 두 업소의 경영 방식이 사뭇 대조적이다. 
 마제스틱카페는 1921년에 현재 자리에 문을 연 식당이다. 애초부터 아르누보 스타일로 장식한 곳이었다. 이 곳은 예전에 상류사회 엘리트들이 만남의 장소 역할을 하던 특별한 고급 카페였다. 내가 들릴 때 앉았던 의자는 물론 많은 물품들이 오래된 물건이었으며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20세기 중반 쇠락하던 중 1983년에 국가역사 관심 건물로 지정되었고 1980년대 이후 포르투의 대중적 명소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식당 종업원들의 복장이나 매너는 품격이 제법 있었다. 식탁 사이의 간격도 적당한 여유가 있다.
 이 곳의 음식이나 음료, 주류 판매가격은 포르투 물가에 비해 비싼 편이다(물론 같은 수준의 한국 음식 값과 비교해보면 싸다). 현지인들도 그리 자주 들릴 수 있는 곳은 아니라 들었다. 포르투의 싼 물가를 기대하고 온 관광객들은 업소 밖에서 사진을 찍거나 들어와 커피나 간단한 디저트 등을 맛보는 데 그친다.
 이 곳은 무작정 손님을 많이 받으려 애쓰지 않는 곳이었다. 그 보다는 자신들의 품격을 지키면서 손님들에게 충실한 서비스를 하려는 듯 보인다.


"렐루서점은 책방임에도 2015년7월부터 입장료를 받아… 고객 서비스는 매우 미흡"


렐루서점은 포르투갈에서 오래된 서점 가운데 한 곳이다. 1869년에 개업했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뀐 끝에 1906년부터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으면서 ‘Lello’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15년7월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이후 2016년 리모델링을 통해 서점의 facade(입구 전면)를 비롯한 건물 외관을 네오고딕과 아르누보 풍으로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이에 사용된 재원은 입장료 수입으로 충당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기본적인 내부구조가 변한 것은 아니겠으나, 우리가 보는 지금의 모습은 거의 이 때 만들어진 것이라 짐작된다. 

 

내부에 있는 2층으로 가는 나선형 계단이 해리포터 영화의 움직이는 계단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앤이 이 서점에 가끔 들렸으며 이 곳 내부를 보고 해리포터 집필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렐루서점은 이런 오해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은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판한 관광안내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여행정보에서도 잘못된 내용을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두고 있다. 정작 조앤은 이 곳에 가 본 적이 없다는 데도 말이다.

포르투갈이나 유럽 전체를 통틀어서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이 서점이 해리포터와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의 오해를 적극 해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아 본업이 아닌 관람료 수입을 크게 벌고 있다는 점은 매우 부적절하다.

서점 다움을 버리고 그냥 구경거리로 바뀐 것도 아쉽다. 그저 신기한 물건을 보여주는 전시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게다가 미리 돈을 받고 입장권을 팔며, 과도하게 몰려온 사람들을 바깥에 줄 세우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잘 작동되지 않아 고객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고객의 불만을 받아주는 소통창구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장을 통제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매우 딱딱하며 불손하다.


"화무십일홍… 해리포터 유행이 지나간 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화무십일홍’이다. 해리포터의 영향이 길게 이어지고 있지만 한 때의 유행이 사라지고 나면 이들의 운명은 각각 어떻게 될까?
 명소로서의 전통과 품격을 지키려 애쓰는 식당. 눈 앞의 매출이나 이익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이런 철학과 자세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고객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다.
 반면에 헛소문에 홀린 관광객으로부터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진실을 숨기면서도 고객을 함부로 대하는 서점. 훗날 유행이 지나간 후 이 서점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결과는 ‘불문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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