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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Mar 18. 2020

코로나 드라이브.

코로나 걸려서 죽을까봐 걱정한적은 한번도 없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망해서 죽을까봐는 상당히 무섭다.

남얘기 아니고 내얘기다. 끝없는 불안함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

내일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가 않으니까. 이게 진짜 역병이다.


징징거리는걸 싫어하는 편이다. 

생각보다 오랜시간동안 나름의 위기들을 잘 넘어온 사람이다. 불평한다고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이번엔 쓰리쿠션처럼 정확히, 자로 잰듯이 명치를 맞았다. 연말과 연초를 지나 1월에 있었던 평소보다 이른 설연휴와 부가가치세의 여파로 이미 숨이 목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2월과 3월을 통째로 날려먹고 줄줄이 폐업한 점포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남 일 같지않은 불안함에 심장이 빠르게 뛴다. 동공이 흔들리고 호흡이 가쁘다. 이루고 싶었던 꿈이니 원대한 포부니 이딴건 생각나지도 않는다. 당장 다음주 거래처 결제할 금액이 얼마더라, 이번달 막아야 할 카드값이 얼마더라. 사무실 월세가 몇일남았나 택배비 정산은 얼마인가. 코로나 정책자금 대출은 금리가 얼마였더라, 나오기는 하려나. 손님이 적어 편안하시겠다니. 제정신인가. 내 일 아니면 다들 말은 참 쉽다.


처음 몇주는 밤마다 술을 찾다가 술에 취하는 것 마저 불안해져서는 불면의 밤들을 지냈다.

매출그래프는 한없이 꺾여내려가는데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가장 덜 보는 방법이다. 저축이 없던 삶을 후회한들 방법은 없다. 대한민국에서 장사하는 사람중에 저축 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되겠는가. 대출 없는 사람이 어디있으며 신용등급 좋은 사람 몇이나 되겠냐고. 장사를 선택한게 잘못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게 잘못인가? 말도안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돌다 결국 다 내탓인것 같아 서럽고 억울해서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당장 내일 망할까봐 겁이 나기를 반복했다. 사실 좀 끔찍했다.


잠을 잘 못자기 시작한 지 한달 쯤 지난 요즘은 좀 벗어나려고 노력중이다.

이 상황을 버텨내거나 혹은 그렇지 못하는 건 어차피 나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정신차리고 할 수 있는 건 할만큼 했고.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도 할만큼 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유일한 일은 너무 크게 상처받지 않도록 나 스스로를 지키는 일 뿐이다. 운좋게 살아남으면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다시 힘내서 일 할 수 있도록. 운나쁘게 살아남지 못해도 자책하지 않도록, 그래서 너무 깊은 바닥에 스스로를 파묻지 않도록 말이다. 게임처럼 리셋버튼 누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게 아니니까. 삶은 계속 흘러갈테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사무실에는 일이, 집에는 개가 버거워 거의 매일 밤마다 차로 숨는다.

그리 좋아하는 일이다. 유일한 가족인 사랑하는 하운드다. 하지만 너덜너덜한 요즘의 나에겐 모두가 버겁다. 

꼭 해야하는 일만 하고 퇴근하고, 아침저녁으로 개산책을 다녀온다. 마치 운동선수의 루틴처럼 늦은 저녁을 먹고 반바지에 후드티, 슬리퍼에 스냅백을 쓰고 괜히 눈치보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향한다. 


조금 과한가 싶었던 방향제가 이렇게 심신을 편안하게 해줄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가죽시트에 반쯤 누워 음악만 들어도 세상이 평화롭다. 배고프지 않지만 괜히 시동을 걸고 차를 끌고 나간다. 재즈건 힙합이건 상관없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선곡이 포인트다. 드라이브스루에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사들고서는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느리게 차 없는 도로를 달린다. 기름따위 핸들에 묻으려면 묻으라지. 목적없이 휘발유를 쓰고, 방금 저녁먹고 콜라에 감자튀김을 먹는다. 죄책감에 가까운 호사다. 마음먹고 도망쳐서 겨우 얻어낸 한시간쯤의 사치에 조금이나마 편안해진다. 만원 쓰고 십만원짜리 잠을 얻는다. 남는장사라는 생각에, 한번 더 마음이 놓인다. 다시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리면, 나처럼 차로 숨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통화하는 사람, 음악듣는 사람, 게임하는 사람. 방법은 달라도 나와 비슷한 이유이리라.


감기가 언젠가 낫듯이, 열이나면 언젠가 식듯이.

영원할 것 같던 이 짙은 어둠도 언젠가 그렇게 끝난다.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오늘저녁 드라이브 하면서 들은 김범수의 '지나간다' 라는 노래다.

그래봤자 감기다. 김범수가 지나간다면 지나가는게 맞다.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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