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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손 Mar 04. 2022

집 값이 두 배가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집 값이 두 배가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올랐다'의 관용적 표현 아니고, 3억이 6억이 된 숫자 그대로 두 배. 자고 일어나면 몇 천만원씩 올라있는 집값을 보면서 처음엔 당황하고, 다음엔 분노하고, 결국 입을 닫았다. 이따위 세상에 앞으로도 계속 살아야 하는것도 분한데, 서른다섯이나 먹고도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니. 할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남들보다 조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실있게 먹고사는 스타일의 사람은 아니었고, 나의 어머니는 본인 삶의 어려움을 매일 어린 아들에게 한풀이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이 불행한 가정과 대책없는 부모의 듬직해야만 하는 첫째아들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고난과 역경' 그 자체인 집에 살았으니 당연히 좋은 동네에 살아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주변사람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빵에나 안가면 다행인 삶'. 범죄만 아니면 뭐든 해서 생존하는게 1순위인 삶. 불쌍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당연한거니까. 소문난 부자니, 존경받는 사람이니 궁금하지도 되고싶지도 않았다. 가난한 집에 태어난게 내 죄가 아니듯, 부잣집에 태어난 것도 그들이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닐테니까.


주변환경과 상관없이 '마이웨이'인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믿는구석이 하나씩 있는데, 나에게는 '노력'이 그것이었다. 멀리갈 것 없이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게될거야' 라며 열 살 짜리를 상대로 말도안되는 핑계를 대던 나의 엄마도 다 썩은 24평짜리 아파트를 거쳐 몇 년 전에는 공원 옆에 지하주차장이 달린 35평짜리 아파트를 갖게 되었으니까. 직접 몸으로 경험한 상식이었다. 못 믿을 세상에 대한 몇 안되는 믿음이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났어도, 대단한 천운이 따라주지 않아도, 열심히 살면 언젠가 삼시세끼 밥 잘 먹고 추운 날 따뜻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먹고, 실제로 그리 살면 '잘'은 아니어도, '편히'는 살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 정도는 태어나기 전부터 불공평한 이나라에서 모두에게 지켜져야 하는 최소한의 상식이어야 하지 않은가.


사업초기에 무리하게 대출받아 집을 사는 대신, 실속있게 임대아파트를 선택했던 나의 선택은 지난 몇 년간 최고의 선택이었고, 고작 몇 달만에 나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상식이 무너진 세상을 살아야하는 댓가는 생각보다 끔찍했다.


'돈 있는 인간들의 장난질에 이따위로 놀아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나라가 하는일이 아니었나. 나랏일을 하는인간들이 죄다 돈이 있어서 그런건가, 그래서 지금 그들은 이득을 보는중인가? 아니, 그 전에. 집값이 멀쩡하고, 대출도 잘 나올때 나는 왜 집을 사지 않았는가. 사무실 월세 낼 돈이면 대출이자를 갚았어야지. 그깟 일 죽자고해서 한 달에 꼴랑 몇백버는게 지금와서 뭐가 대수였다고. 대충하고 집을 샀어야지. 그랬으면 지금쯤 최소한 다행이다를 외쳤을 것 아닌가. 이대로라면 남은 일은 이 임대아파트에서 죽을 때까지 살던가, 죽을 때까지 은행빚을 갚던가 둘 중에 하나 뿐이군. 거지새끼라고 이마에 낙인이 찍히는 기분이 이런건가.'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어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부자가 아닌것만 빼고' 별 일 없이 살던 나의 일상을 뿌리부터 흔들어댔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는 특정한 몇 명을 향했다가, 불특정한 다수를 향했다가, 결국 나를 향했다. 


몇 년을 죽자고 만들어놓은 내 회사의 성장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엄마찬스로 '돈천만원'들고 집을 샀거나, 일생일대의 업적이 대출끼고 지방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해놓은 것이 전부인 '근근히살던' 인간들은 순식간에 선견지명을 갖춘 성공한사람이 되어 인생훈계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꼬라지를 한마디도 못 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던 나는 -상실감과 분노에 어쩔 줄 모르며- 언제 끝날 지 모를 매일 술먹고 매일 잠 못자는 밤을 보냈다. 깡통같은 현재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내일이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론 당신들은 관심도 없겠지. 나는 나의 삶을 부정당했다. '고작' 집 값이 두배가 되었을 뿐 이지만.


불면의 밤을 몇 달쯤 보내고 내린 결론은 '이사'였다. 

죄 지은것도 아닌데, 쫒겨나는 기분이 더러워 '내가 왜!' 를 외치지 않았던건 아니다. 하지만 이내 더러운 성질머리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중요한 건 내 기분이 풀어지는게 아니라, 내 기분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일이니까. 이 말도안되는 스트레스로부터 나를 보호해야만 했다. 

대단히 훌륭하지는 않아도 남에게 큰 피해 안 주고, 그 와중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였다. 지은 죄 없이 죄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이 상황에 내가 가진 그 무엇도 잃어주고 싶지 않았다. 단 한가지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멀리, 가능하면 빨리, 기왕이면 살아보고 싶었던 곳으로 가기로 했다. 


가서 몇 년 살고 후회할 때 후회하더라도, 그래서 다시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떠나야했다. 기계식 키보드가 소주병에 밀려난 이 책상에서, 아무도 모르게 큰 소리로 쌍욕을 내지르던 운전석에서, '어쩔 수 없지'라며 순순히 패배를 인정한 사람들에게서. 정들고 익숙한 이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놓은 것도,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서명한 것도 아닌데 가기로 마음먹기로 한 순간 명치에 숨이 터지고 미간에 긴장이 풀렸다. 살면서 내 본 소리 중 가장 큰 소리로, 맹렬히 방어기제를 발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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