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여수의 변하는것과 변하지않는 것들

Interior with Woman, Vilhelm Hammershøi


변화를 체감하는 도시의 속도

내가 자라고 여전히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여수.


여수 엑스포도로를 따라 터널을 지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도시의 움직임이다.

우리 집은 여수 해양공원 언덕에 자리잡은 아파트 17층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러 섬들과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집 너머 산은 조금씩 깎여 새로운 관광지가 되고,

해안선은 계속해서 단장된다.

대교 위에는 설명절을 맞아 다른 밀도의

차량과 관광객이 흐른다.


딸기모찌, 두쫀모찌와 두쫀와플, 갓도너츠, 해풍쑥 아이스크림 등등

내가 어릴때는 본 적도 없는 정체 불명의 가게들은 더 세련된 이름과 디자인으로 갈아입고,

디저트와 브랜드는 유행의 언어로 경쟁한다.


익숙했던 공간이 어느 날 전혀 다른 기능으로 재정의되고, 어제 없던 장소가 오늘의 명소가 된다.

여전히 이순신광장앞에 관광객들을 줄을 서 있고, 나는 그 광경이 낮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이렇듯 연에 서너번 찾는 여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한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도시의 생존 방식처럼 보인다.


기술이 만들어내는 가속의 시대

이 변화의 중심에는 기술이 있다.


검색, 모바일, 유투브 등 기술의 변화로 여수의 맛집과 명소가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여수를 찾는 사람들은 그 집에 줄을 서서 몰린다.

집앞 카페는 영화 오세이사 촬영지로 유명해져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이제 인공지능 에이전트는 각 맛집을 서로 비교하고 더 빠른 판단과 더 높은 효율을 약속하며

일과 산업, 소비와 소통의 방식을 새롭게 배열한다.


어제의 기준은 오늘의 구식이 되고,

업데이트는 일상이 된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응답과 적응을 요구한다.

속도는 경쟁력이 되었고,

변화는 능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 가속의 흐름은 때때로

인간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를 남긴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달라지는 시간

그렇게 여수의 바깥의 속도와 대비되듯,

도시는 여전히 움직이는데, 집 안의 시간은 거의 이동하지 않는다.

회를 사러 늘 들르는 수산시장에서 바라보는 집

몇 해가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가구의 위치,

익숙한 동선, 빛바랜 장식장과 오래된 사진들.

물건들은 기능을 넘어 기억의 좌표처럼 놓여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공간.

설명 없이 이해되는 질서.

변하지 않는 배치는 말없이 마음을 안정시킨다.


상 위에 오르는 음식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어릴때 부터 먹던 명절 갈비, 문어등 해산물이 들어간 해물 잡채

너무나 익숙한 갓김치, 소금기와 매운맛이 가득한 여러 김치 등

레시피가 아니라 세월로 축적된 맛.


명절 음식은 새로운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을 반복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위로가 된다.

익숙함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형태의 안식이기 때문이다.


부모님 마음의 알고리즘과 서로 다른 속도가 공존하는 집

부모님의 언어는 시대를 초월한다

세상은 인공지능과 미래를 말하지만

부모님의 질문은 언제나 단순하다.


건강은 괜찮은지.일은 무리 없는지.

그렇게 매번 괜찮다고 해도

잊으신건지, 또 물어보신다.


기술은 달라져도 부모님의 마음의 알고리즘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아버지의 느긋함.

서로 다른 리듬이 집 안에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효율과 최적화를 강조하는 시대지만

삶은 반드시 같은 속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빠르게 움직이는 손과

천천히 흐르는 시선이 한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이 오래된 균형은 어떤 기술적 혁신보다 인간적이다.


부모님의 일상은 이어지고, 세상의 기술은 갱신된다.


변하지 않는 것의 새로운 의미

흥미로운 사실은

세상과 도시의 변화가 선명해질수록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또한 더 또렷해진다는 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정체가 아니라 기준이 된다.

빠르게 요동치는 세계 속에서

개인을 지탱하는 정서적 중심


바깥의 변화가 긴장과 적응을 요구한다면,

집 안의 지속성은 조건 없는 수용을 제공한다.

완전히 고정된 세계는 정체를 낳고, 완전히 유동적인 세계는 불안을 낳는다.

편안함은 지속성에서 오고, 생동감은 변화에서 온다.


인간은 변화에 적응하지만, 동시에 변하지 않는 질서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한다.

물리학자 김상욱교수의 AI시대의 강연에서

그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화할때 변하는 것을 따라가기보다는변하지 않는 것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이 기본이된다라고 하였다.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 행복

AI로 인해 세상은 더 빨라지고 더 똑똑해진다.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도구, 새로운 경쟁 질서.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환경이 되었고, 적응은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는 것은

속도의 우위가 아니라 마음의 안정일지도 모른다.


변하는 세계가 우리를 앞으로 밀어낸다면

변하지 않는 세계는 우리를 붙잡아 준다.

집 안의 물건들, 부모님의 음식, 변함없는 대화.


고향의 집은 그 기준을 환기시키는 공간이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돌아갈 수 있는 감각,

변하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깊은 안정.

이 오래된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감각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는 존재가

잠시 조건 없이 머물 수 있는 안식의 구조다.


그래서 깨닫게 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위로이며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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