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물감에 취하다

After the Misdeed by Jean Beraud

다시, 기본으로

첫 유화를 완성하고 나니 그림에 더 욕심이 생겼습니다.

다시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어서 드로잉으로 돌아왔습니다.


펜과 지우개, 도화지. 선을 긋고, 선과 선을 연결해 면을 만들고, 명암을 넣어 2차원을 3차원으로 만들어갔습니다.

유화의 역동적인 화려함과는 달랐습니다.

흑백의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집중이 필요했습니다. 원기둥, 구, 육면체를 그리며 3개월을 보냈습니다.


다시 공부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아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는 겁니다.




수채화, 그리고 모스크바의 기억

드로잉이 지겨울 만한 때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수채화였습니다.

작품을 고르는데 뭔가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그림은 모스크바 여행에서 찍었던 성바실리 성당 사진이었습니다.

알록달록한 양파 돔과 푸른 하늘, 색채가 아름다웠던 성당이어서 어반드로잉 수채화 느낌으로 잘 어울릴것 같았습니다.


드로잉도 연습했으니 스케치는 제 손으로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도형의 기본으로 하나씩 형태를 잡아가는데 정말 어려웠습니다.

'아, 이래서 기초가 중요하구나' 실감했습니다.


투시와 원근을 표현하는 손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연필로 1차로 그리고 형태를 펜으로 보완해서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막상 수채화를 시작하니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또 찾아왔습니다.

유화와 달리 덧칠이 어려워 보정이 힘들었고, 물의 농도와 색을 맞추는 게 완전히 달랐습니다.


어릴 때 많이 해봤으니 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화보다 더 까다로웠습니다.

물감 색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무슨 색을 조합해야 할지 몰라 선생님이 많이도와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수채화는 하늘을 유화와는 다르게 아름답게 표현해주었습니다.

유화의 둔탁함과는 다른 맑고 투명한 하늘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번에 채색한 곳이 다음시간에 마르면 조금씩 채도와 명도를 조정하면서 3차원으로 생명을 불어넣어갑니다.


성당의 창문과 창틀과 양파돔의 곡선을 따라 물고기비늘 같은 타일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일은 엄청난 집중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서야 어느덧 첫 수채화 작품으로 완성하고 작품아래 이름도 남겨 보았습니다.

잘 그려서라기보다 자신에게 수고했다정도 의미였습니다.



내가 사랑한 그림을 그리다

이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선택한 작품은 Jean Béraud의 ‘After the Misdeed’(1895)였습니다.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작으로 현재 수장고에 있어서 작품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장 베로는 프랑스 화가로 벨 에포크 시대의 프랑스의 거리와 여인들을 그렸는데 저는 그중에 화풍과는 약간 다른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보는 순간,


붉은 소파에 쓰러진 여인의 슬픔을 그린 작품. 눈물이 보이지 않는데도 애절함이 느껴졌습니다.

After the Misdeed by Jean Béraud

원작이 있는 그림이라 제 스케치 실력으로는 무리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스케치를 대고 그리게 도와주셔서 1차 스케치를 완성했습니다.

막상 그리려니 붉은 소파의 색감을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드레스의 디테일과 전체 분위기를 살리는 것도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시기가 한창 일이 많을 때여서 매주 화실에 가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캔버스 앞에 자주 앉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화실에 가면 그렇게 힐링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의 바쁨과 복잡한 관계들을 다 잊고, 그저 유화의 느낌과 작품을 완성해가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번 유화는 좋아하는 원작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여러 기법들, 붓 사용하는 법, 보루 쓰는 법, 생동감 있게 살려내는 법. 배울 게 끝이 없었습니다.

배경은 작가가 자주 다니던 극장의 소파입니다. 강렬한 레드의 소파가 자리를 잘 잡아야 해서 여러번 덧칠을 해갔습니다.


드레스의 질감도 목도리의 털, 그리고 머릿결과 피부도 하나하나 숨결을 불어넣어야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주인공의 슬픔입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지만 소파에 얼굴을 묻은 모습으로도 그 분위기가 느껴져야했습니다.


4개월 만에 두 번째 유화를 완성했습니다. 2026년을 시작하는 시점에 드디어 완성했습니다.



화실, 삶의 이야기가 모이는 곳

제가 다니는 화실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선생님의 실력과 소통이 워낙 좋아서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나름 초기에 겁 없이 조인했는데, 저 같은 그림을 그려보지 않은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들어보면 이야기들이 각양각색입니다. 그림 전공자들이 다시 유화를 그리러 오는 경우도 있고, 디자인 전공자가 화실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 다니면서 퇴근 후에 시간 내서 오시는 분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려주고 싶은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 하지만 공통점은 다들 그림 그리는 것, 보는 것, 그리고 크게는 예술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는 점입니다.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은 문제 해결하고 가버렸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화실은 따스한 공기가 있습니다.


저는 그림 그리는 작업은 엄숙하다고 생각해서 말을 안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리다가도 그렇게 삶의 대화가 오갑니다. 물론 화실 선생님이 워낙 친근하고 대화를 좋아하셔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주로 수요일, 금요일 저녁반을 가는데 오시는 분들은 주로 직장 다니고 퇴근하고 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구무용가, 화장품 연구원, 전자 분석팀 등등. 저도 직장인일 때 퇴근 후 취미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데, 그분들은 그렇게 화실을 찾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각자의 삶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직장 생활의 어려움, 소개팅 이야기, 무용 작품 이야기, 여행 이야기, 미술관 다녀온 이야기. 여러 장르를 넘나듭니다.


붓질하는 소리, 연필로 도화지에 그리는 소리, 지우개로 지우는 소리만이 아닌 각자의 삶이 교차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미술 전시 다녀오면 선생님과의 대화가 더 즐거워집니다. 아저씨들 사이에서는 하기 어렵지만, 선생님은 워낙 전문가시니 작품과 작가 얘기하면 공감해주시고 설명해주십니다.


그림 그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미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가득해집니다.



2026년, 다시 드로잉부터

다시 기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로잉으로 돌아왔습니다.

신기한 게, 작년의 드로잉보다 한 뼘 성장한 게 느껴집니다. 2시간 내내 명상하듯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선생님의 도움의 손길도 뜸해지고 나 혼자 해갈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드로잉이 점점 재미있어집니다. 그렇게 그림을 보는 눈과 손가락의 힘을 키워갑니다.


AI 시대에 연필과 도화지는 점점 필요가 없어져가는데, 화실이라는 공간에서는 이 두 가지로 사물을, 세상을 그려갑니다. 지극히 아날로그적이지만 그 과정이 아름답습니다.

드로잉이 끝나면 이번에는 어반스케치를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펜화로 스케치하고 바로 수채로, 어디서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작업을요.


언젠가, 유럽 미술관에서

제가 미술관을 좋아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유럽의 미술관 풍경이었습니다.


감상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국내 전시에 와야 보는 그런 명작 앞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원작을 쉽게 만나고, 책이 아닌 그 앞에서 감상하고, 그림을 그려갈 수 있는 것.


나도 다시 유럽 미술관을 간다면, 그 미술관에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 앞에 미술 도구를 가져가서 하루 종일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내게 준 것

지금도 매주 화실에 갑니다. 여전히 서툽니다. 잘 그리지도 못합니다.

목표를 향해 달리던 삶에서 벗어나, 과정 자체를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완성도보다 붓을 쥐고 있는 순간의 집중이 좋습니다. 결과보다 색을 섞으며 고민하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초등학생 때 들었던 “소질이 없다”는 말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잘 그리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요. 그저 제 스타일로, 제 속도로 그려가는 겁니다.


첫 유화 풍경화, 드로잉의 습작들, 수채화로 그린 성바실리 성당, 그리고 베로의 슬픈 여인까지. 각각의 작품은 서툴지만, 각각의 시간은 완벽했습니다.


그림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법과 기준, 위험성 평가로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 오롯이 색과 형태에만 집중하는 시간.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이야기들.


40대에 다시 붓을 들고 물감에 취하는 이유를 이제는 압니다.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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