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로 돌아가는 과정- 늙어감 그리고 작은 노력

Death_and_Life by Gustav_Klimt

늙어가는 눈

"올해 여름 이후에 노안이 급격하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 라식 수술을 하고 근시를 교정했다. 그 이후로는 안경을 쓰지 않아서 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안경을 써도 사물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괜찮겠지 하고 가끔 필요할 때만 썼는데, 그 주기가 점점 잦아졌다. 안경 렌즈를 맞춘 지 오래라서 교체할 겸 안경원을 찾았는데 안경사는 시력 검사를 하더니 말했다.


"이제 노안이 시작되었고, 이전에 측정할 때보다 눈이 많이 나빠지셨네요."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일이 몰릴 때면 회사 다닐 때처럼 하루 종일 노트북을 붙들고 있기 일쑤였다. 퇴근 후에는 유튜브 영상에 눈을 맡기거나 작은 글씨로 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가져다준 결과였다.

G._Caillebotte_-_Jeune_homme__C3_A0_la_fen_C3_A.jpg Jeune_homme by Gustave Caillebotte

물론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눈을 지탱해주는 신경과 근육이 점점 탄력을 잃어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현상이라는 건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40대 초반부터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눈을 사용하는 습관이 노화를 촉진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눈이 버텨준 거고요, 이제 갑자기 놓아버릴 수도 있는데 그게 노안이에요."


눈은 쉬고 싶었을 것이다. 탁 트인 자연에서 저 멀리를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블루라이트가 넘치는 전자기기에 하루 종일 혹사시키고 있었다.


30대, 과장 직급으로 회사에서 콧대가 한창 높던 시기. 임원들에게 보고할 때면 보고서 글씨가 작아서 안 보인다며 쓰던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차기 사장님을 노리던 일 잘하던 임원도, 임원을 포기하고 그저 회사를 오고 가던 부장님도 똑같이 안경을 치켜올렸다.


'아, 나도 저 나이가 되면 가까운 것이 안 보여서 안경을 이마로 치켜올리겠구나. 그렇게 되면 나이가 드는 거겠지.' 음...


내게 그 시간이 다가왔다.


눈가의 주름

노안이 눈 자체의 늙어감이라면, 눈을 둘러싸고 있는 깊은 주름과 눈 밑 지방의 짙어짐은 눈 바깥의 늙어감이다.

요즘 20대 남자들은 피부 관리를 열심히 하고, 나아가 화장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남자들도 피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시대에서 남자들에게 스킨로션을 바르거나 외출 전에 선크림을 바르는 건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도 화장품 회사에 다니면서 직원 할인으로 싸게 구매하거나, 연구원이나 마케터들의 이야기를 듣고 피부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깨닫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20140205194142!Ilja_Jefimowitsch_Repin_-_Reply_of_the_Zaporozhian_Cossacks_-_Yorck.jpg Reply of the Zaporozhian Cossacks by Ilja Repin

술자리와 야근, 씻기 귀찮아서 대충 하는 세안. 이런 것들도 피부의 늙어감에 한몫을 했다. 이 중에서 눈가 피부는 특히 연약해서 주름이나 눈 밑 지방, 색소침착이 일찍 찾아온다.


어느 날 면도를 하다 거울을 보는데, '이게 뭐지' 하면서 주름을 세어 보거나 다크서클이 늘어나는 데 놀라게 된다.


올리브영에 들러 안티에이징 레티놀 함유 제품을 보니 남자들에게는 아까운 투자처럼 느껴져서, 다이소에 가보니 거의 3분의 1 가격에 레티놀과 비타민이 들어간 제품이 있어 두어 개 들고 나왔다.


내게 그 시간이 다가왔다.


늘어나는 흰머리

"이번에도 염색은 안 하시고 헤어컷만 하시게요?"


매달 한 번씩 찾는 미용실에서 원장님이 작년부터 하는 말이다.

"나이 드는데 흰머리도 나고 그러는 거죠. 누가 아저씨를 보지도 않는데요, 뭘요."


매번 너스레를 떨어본다. 그러면 고객을 놓치기 싫은 사업 수완이 발동했는지,

"맞아요. 남자가 흰머리도 있고 해야 더 중후한 멋이 있지요."


그렇게 머리까지 감고 나서 거울 앞에 앉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유독 흰머리가 많이 눈에 띈다.

옆머리에서 시작해 점점 앞머리에도 희끗희끗 보인다. 흰머리가 조금 신경 쓰일 즈음에 원장님이 한마디 더 얹는다.

Bakst_daighilev.jpg Sergei Pavlovich Diaghilev by Leon Bakst


"어쩜 이렇게 머리숱이 풍성하실까~. 요즘 남자분들 중에 탈모로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얼마나 좋으신 거예요."그렇게 원장님의 염색 권유를 뿌리치고 미용실을 나섰다.


그렇지만 내게 그 시간이 다가왔다.


변화의 물리학

노화 연구에서는 남성이 34~35세경부터 조금씩 늙어감이 진행되고, 60세 전후로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온다고 한다. 물론 이는 연구 대상 그룹에서의 평균적 통계이고, 개인의 생활환경과 습관에 따라 더 빠르게, 혹은 더디게 올 수 있다.


변화란 어느 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 바뀌는 것이고, 이러한 변화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반대로 해석하면, 에너지를 빨리 쓰면 다른 상태로의 전환이 촉진된다. 육체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Walter_Langley_-_Memories_1906.png Memories by Walter_Langley

결국 노안과 눈가 주름, 그리고 흰머리는 내가 살아온 삶이 내게 되돌려 주는 생리적 인과관계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육체의 노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이 애써 수긍하지 못한다.


다초점 안경을 쓰고, 레티놀과 아이크림을 바르고, 염색 샴푸를 쓰면 더 빨리 가려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디게 느낄 수 있다고 하니, 작은 노력을 기울여본다.


혈관, 심폐 건강, 그리고 근육량

40대 남성의 사망 원인 중 뇌심혈관계 질환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사회생활에서의 거친 생활환경과 먹고 자는 습관, 그리고 특히 스트레스의 과중이 유발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지방간은 건강검진에서 단골 메뉴가 되었다. 불어나는 체중만큼 운동량은 줄고, 뛰기는커녕 점점 편한 자리로만 가려고 한다.


여느 회사원과 비슷한 야근과 술자리, 피곤에 절은 생활. 그리고 10년간의 일과 공부 병행. 혈관과 근육, 심폐 기능은 점점 죽음을 향해 가속도를 밟고 있었다.


[근육이 연금]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피트니스장까지 가는 게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가서도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하니 변화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2024년 말부터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1주에 2회, 바쁠 때는 1회나 2주에 1회가 되더라도 꾸준히 1년 반을 넘게 했다.


물론 초기 6개월은 재활의학과 치료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만큼 쓰지 않았던 근육과 낮아진 심폐 기능, 그리고 그곳에 피를 공급해주는 혈관은 이미 빠른 노화가 와 있었다는 뜻이었다.

1821px-Gustave_Caillebotte_-_The_Floor_Planers_-_Google_Art_Project.png The_Floor_Planer by Gustave_Caillebotte

PT 선생님과 기초 운동부터 단계를 높여 고중량 운동까지 해가고 있다. 바쁜 일이 끝나면서 새해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에 집중하니 근육량과 체지방의 변화가 눈에 띄게 좋아져서 인바디 점수도 운동 초기보다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길위의 꾸준히 내딛는 발]

2026년 목표 중 하나가 러닝이다. 2024년 한창 러닝을 할 때 몸 상태가 좋았고, 그때 10km 마라톤에도 도전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러닝과 멀어졌다.

IMG_20250903_083549_117.jpg Running along the beach by Joaquin Sorolla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풀코스 30번을 완주한 정세희 교수의 유튜브 영상, 그리고 『길 위의 뇌』를 읽고 있다.


근육과 함께 필요한 심폐 기능 강화, 그리고 도파민에 중독된 뇌를 쉬게 해줄 치료제로서 러닝의 중요성을 뒤늦게 알아가는 중이다.


PT를 다니면서 트레드밀 러닝으로 달리기를 습관화해가고 있고 영햐의 추위에 호수공원 야외 러닝 4.5km를 시작했고 계속 달릴 것이다.


탄소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작은 노력

늙어가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갑자기 영화 『은교』의 대사가 떠오른다.

“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 때는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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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세포 기능과 양의 쇠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김상욱 교수의 말처럼, 죽음은 물리화학적으로 보면 탄소의 결합인 신체가 다시 탄소로 돌아가는 일에 불과할 수 있다.


자연의 법칙을 잊고 살다가, 갑자기 거울에 비친 모습과 불편해져 가는 신체 기능에 짐짓 놀라서 애써 외면하려고 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신 승리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라면,

오늘부터 근육과 심폐, 그리고 피부에 선물을 주어야겠다.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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