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배우는 인간관계

오늘도 한 수 ㅂㅇㄷ!

by 제이피디아

메인쿤 고양이와 함께 산지 5년이 되어가네요.


메인쿤은 미국 북부 지역의 종으로 덩치가 크고 너구리 같은 긴 꼬리를 갖고 있습니다. 털이 길고 부드러우며, 돌출된 이목구비는 잘생김을 뿜뿜 합니다. 그리고, 성격이 온순하여 고양이계의 신사라고도 합니다.


졸고 있는 메인쿤 고양이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된 건 코로나 때입니다. 지인 가게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집합 금지와 해제가 반복되며, 고양이를 제대로 케어하기 어렵게 되자 임시로 맡겼거든요. 우리 가족에게 맡겼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네요. 고양이와의 동거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동물이라면 기겁하는 사람이었어요. 동물의 머리를 쓰다듬지도 못했고, 엘리베이터에서 산책 가는 강아지를 만나면 피해 다닐 정도로 동물과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고양이가 없는 일상, 아니 우리 고양이가 없는 일상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외부 모임에 나갔다가도 고양이 밥이 걱정돼 일찍 귀가하고, 예전 같으면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고양이가 보고 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하거든요. 내 간식보다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 간식이 서랍에 잔뜩 들어있고요.


5년의 동거기간,
고양이를 통해,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 수 배워갑니다. 동물 근처에도 가지 못한 내가 물고 빨고 하는 사람으로 바뀐 건, 고양이의 묘한 매력 때문입니다.


1.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진다.
무표정한 얼굴을 C자로 말아 구석진 자리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해 한 번씩 짠할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뭘 잘못했나? 엄마가 보고 싶은가?

어떤 날엔 창가에 앉아 심각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밖을 바라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집안에만 있어 답답한 걸까?

한 번은 옷장 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아 걱정하기도 했고요. 아무리 불러도 한 번 쳐다볼 뿐 반응도 하지 않고, 최애 간식 추르를 내밀어도 올까 말까 고민을 하는 게 역력히 보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어요. 그 행동이 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고양이 스스로 감정을 정돈하는 방식이라는 것을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면 주저하지 않더라고요. 피곤하면 피곤한 대로, 생각이 많으면 많은 대로, 말없이 자기만의 공간으로 들어갑니다. 단절이 아니라 회복과 안정의 과정이라는 걸 뒤늦게 이해했죠.


고양이는 감정을 억지로 숨기지 않더라고요. 기분이 좋으면 좋은 데로, 불안하면 불안한 데로, 궁금하면 또 궁금한 데로... 단순하지만 진솔한 패턴이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억지로 친한 척하지 않고, 필요할 때 적당히 거리를 두고, 다시 가까워질 타이밍이 되면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

오래가는 관계의 리듬이지 않을까!


2. 상대를 먼저 관찰하고 행동한다.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기 때문에 강이지처럼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역시 게으른 제게 좋은 점이더라고요. 여름에는 한 달 간격으로, 다른 계절은 분기 한 번 정도 목욕을 합니다.

그런데, 매번 고양이를 욕실로 유도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집사인 저는 분명 평소와 똑같이 행동한다고 생각하는데, 고양이는 이를 귀신같이 알아채더라고요. 평소에는 세수할 때도 양치할 때도 어김없이 욕실로 따라 들어오는데, 이날만은 절대로 욕실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어요. 고양이는 말보다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패턴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을요. 표정을 숨기고 고양이가 못 알아들을 말을 해도, 평소보다 분주하게 움직인다던지, 평소와 달리 수건이나 대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 아주 미묘한 차이를 포착해, '오늘은 평소와 다르구나! 조심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거 같아요.


고양이는 상대의 행동을 관찰한 뒤 결정을 하더라고요. 추측이나 감정이 아니라, 실제 눈에 보이는 변화에 기반해 판단하는 셈이죠. 대화가 통화지 않음에도 관찰을 통해 저의 감정을 잘 읽고, 때론 위로, 때론 공감, 때론 거절을 잘하는, 눈치 백 단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는 먼저 관찰하고, 그다음에 행동해야겠다는 걸 배웠어요. 상대가 오늘 유난히 예민한지, 평소보다 말수가 줄었거나 말투가 거친 지, 혹은 괜히 밝은 척하고 있는지... 이 작은 변화들을 읽으려는 태도가 상대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고, 상대와 불편한 감정을 나누거나 언쟁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요.


고양이가 목욕의 낌새를 눈치채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듯, 사람 역시 말로 하지 않더라도 무언가를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죠. 그 신호를 포착하고 존중할 때, 관계는 훨씬 부드럽고 깊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요?!


3. 둘만 있을 때는 거침없는 애정표현을 한다.
저의 고향 어르신들은 고양이를 요물이라거나 야마리 톡 까졌다며 별로 반기지 않더라고요. 고양이의 새침함 때문이죠. 근데 늘 새침하기만 하냐고요? 아닙니다. 집에 둘만 있을 때면 거침없는 애정 표현을 합니다. 소파에 누워있으면 자기도 옆에 누울 테니 자리를 만들라고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자리를 만들어주면 옆에 폭 안겨 곤히 잠들곤 합니다.
또, 둘이 있을 때면 제 손에 그루밍도 자주 해줍니다. 고양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만 그루밍을 해준다고 해요. 손을 핥아주기도 하고, 자기 손을 내 손에 얹어 같이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제 무릎에 2~3분 딱 한 번 앉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이죠. 이때 얼마나 감격했던지!!

어머 얘가 나를 이렇게까지 신뢰하고 있구나.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


이 모습을 관찰하니, 인간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 역시 마음을 여는 방식이 제각각이지만, 진짜 좋아하는 사람, 진심으로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표현해야 비로소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을요. 말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는 알기 어렵죠.

서로에게만 보여주는 사소한 행동 -- 따뜻한 메시지 하나, 따뜻한 눈 맞춤, 가볍게 건네는 안부 같은 시간들이 쌓이며 관계가 깊어지죠.

고양이가 둘만의 시간에 가장 신뢰를 보여주듯, 사람도 소중한 이에게는 그 마음을 아끼지 않고 드러내야, 관계는 부드럽고, 더 단단하게 자란다는 사실을 새삼 배우게 되었어요.


4. 자신이 필요한 건 적극적으로 끝까지 요구한다.
가끔씩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촬영하고 있는데요. 이때, 꼭 한 번은 우리 고양이가 등장합니다. 노트북 자판이나 키보드를 밟고 지나가죠. 그래서 한 번은 PPT 전체 화면이 취소된 적도 있고, 말한 내용이 화면 자막에 실시간으로 나온 적도 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이를 저지하려다 내용에 집중 못해 엉뚱한 얘기를 한 적도 있었고요.

일만 하지 말고 자신과 놀아달라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입니다.


또, 우리 고양이는 자기 밥시간과 간식 시간을 귀신같이 알고 있습니다. 생체 시계가 있다고 해요. 토요일 오후 소파에 누워 TV를 보고 있으면, 오후 2시와 4시에 어김없이 주변으로 와 나의 동향을 살핍니다. 깨어있는 걸 알면 이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합니다. 근처로 와 '야아~~~~~~~~~옹'을 한 번 합니다. 몇 번 반복해도 줄 기미가 없으면, 근처로 와 손이나 팔을 머리로 밀기 시작합니다. 소몰이하듯이요.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살짝 무는 시늉을 하고요. 저는 결국 지고 맙니다. 서랍장을 열어 간식을 꺼내 입에 물려주죠. 집에 있는 오후 시간은 얄짤없습니다.

이런 행동을 보며 깨달은 건, 필요한 걸 끝까지 요구하는 태도는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죠. 원하면 다가오고, 필요하면 울고, 충분히 전달될 때까지 방법을 바꿔가며 신호를 보냅니다.


사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요? 아무리 배려심 많고 성실한 사람이라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타인은 우리의 기대나 필요를 정확히 모르더라고요.

열심히 하면 알아주겠지?
진심은 통한다니 기다리면 봐주겠지?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특히나 바쁜 현대인은 타인의 기대와 필요를 알기 위해 쓸 에너지가 없죠. 고양이처럼 부드럽지만 명확하게,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해야 관계가 오해 없이 굴러가죠. 억지로 참기만 하면 결국 상황이 더 틀어지지만, 적절한 순간에 분명하게 요구하면 더 건강한 균형이 만들어지다는 걸 가르쳐주었어요.




고양이와 살며 알게 된 건, 동물 간(사람-고양이, 사람-사람) 관계는 화려한 말이나 거창한 기술보다 섬세한 관찰, 작은 표현, 적절한 거리 조절이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상대를 오해하지 않기 위해 먼저 관찰하고, 진심이 있다면 표현하고,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할 때는 요구하는 것.


그래서 요즘은 저도 고양이처럼 해보려고 합니다. 상대와 적절한 공간을 가지는 여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낌없는 애정 표현, 나를 지키기 위한 예의를 갖춘 당당한 요구까지. 균형 잡힌 태도가 관계를 더 편안하고 오래 가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요.

좋은 관계란 서로를 존중하며 솔직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걸, 제 곁에서 꾸벅꾸벅 잘 조는 작은 스승에게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고양이가 편할 때 한다는 꾹꾹이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우유를 먹는 모습과 닮았습니다. 잠시 감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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