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끔 그림이 너무 잘 그려져서 무아지경으로 작업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평소에 잘 못 그리던 포즈도 슥삭 그려지고 선도 한 번에 쭉 그어지고 결과물도 좋다. 그러다 다음 날에는 손이 바꿔치기라도 당한 것인지 그림이 또 안 그려지기도 한다. 어제 내가 그렸던 그림을 보면 어떻게 내가 이런 걸 그렸나 싶다. 그럼 한숨을 푹 쉬며 어제는 잘 됐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안되나 한탄하게 된다.
어느 책에서 재밌는 걸 봤는데, 이런 경우에 한탄할 게 아니라 어제 잠시 누가 도와줬다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어제 그 실력이 나의 원래 실력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평소에는 원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림이든 글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늘 잘 될 수가 없는 것 같다.(천재라면 얘기가 달라지려나. 천재가 아니어서 모르겠다.) 글이 잘 써질 때 그림이 잘 그려질 때 일이 갑자기 잘 될 때, 그땐 요정이 도와주러 왔구나, 하고 생각하면 맘이 편하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잠재력 요정들이 가끔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즐겁고 감사한가. 나는 그저 내 삶을 잘 버티고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럼 어느 날, 나도 몰랐던 잠재력 요정들이 어느 날 불쑥 나를 도와주러 온다. 그리고 감사한 그 요정들을 키우는 것은 아마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하루하루일 것이다.